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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n 17. 2016

80세의 육아 도우미

서울여자 도쿄여자 #03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다카시마 할머니는 여든이 넘으셨습니다. 정확한 연세는 말씀하시지 않으시는데 “벌써 여든이 넘었다.”라고만 말씀하십니다. 고운 피부에 이마가 넓고 오똑한 콧날의 소유자이십니다. 목소리도 어찌나 고운지 전혀 나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다카시마 할머니는 둘째 아이의 육아도우미입니다. 일본은 육아도우미가 흔하지 않아서 구하기가 매우어려워요. 대부분은 퇴직한 여성들입니다. 50대-60대가 많습니다. 경제적 이유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게 답답해서 또는 아이가 좋아서 하루 한 두 시간 아이를 보는 도우미도많습니다. 


다카시마 할머니는 아이가 좋아서 아이를 봅니다. 매주 수요일은 친구들과 좋아하는 가부키를 보러 가야하셔서, 수요일은 쉬는 날입니다. 막내딸과 사위와 손자들과 함께 살고 있으세요. 사위는 일본의 유명한 배우입니다. 주연급 베테랑 남자 배우로 형사 드라마의 단골 형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시마 할머니는 육아 도우미일을 꾸준히 하십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우리 하루(저희 둘째)가 내 마지막 아이가 될 거야.”라십니다. 다카시마 할머니는 저희 둘째가 좀 크면 육아도우미를그만 두실 생각입니다. 무릎에 무리가 왔기 때문이지요.


할머니는 50세에 도망치듯 집을 나왔습니다.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아키타에 사는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2차 대전 후, 아키타에서 문방구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그 문구점의 손님은 대부분 주변의 학교였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교재와 체육복을 단체로취급했고 벌이도 좋았습니다. 열명쯤 되는 직원을 거느리고 같이 배달을 하면서 아이를 셋 키웠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눈 감아 주었고, 치매가 온 시아버지를 모셨고, 몸이 아픈 시어머니도 모셨습니다. 시어머니를 보내고 일년 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주일 후, 다카시마 할머니는 “장 좀 보고 올게요.”란 말을 달랑 남기고 상경했습니다. 도쿄에 사는 막내딸네집으로 도망을 친 거예요.


“왜 나왔는지 모르겠어. 그냥 장바구니 하나 들고 전철에 탔는데. 무슨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야. 나오려면 지금이다 싶었거든.”


내내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눈 감아주었던 건, 남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시부모님을 그냥 둘 수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카시마 할머니는 “할일이 모두 끝났다.”며 돌아섰다고 합니다. 더이상 당신에게 나를 바치지 않겠다는 결심도 동시에 했다네요.


다카시마 할머니가 결혼한 막내딸네서 지낼 무렵, 사위는 단역 배우였고 막내딸은 암에 걸려 투병을해야했어요. 할머니는 막내딸을 간호했고, 딸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60세가 되었지요. 할머니가 60세가 되던 해, 오사카를 중심으로 고베한신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1995년이었어요.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할머니는 그날로 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결혼하기 전, 홋카이도에서 간호대학을 다녔던 할머니. 간호사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고베 지역으로 날아가 지진으로 부상을입은 사람을 돕고 싶었지만, 나이를 고려해, 도쿄의 한 병원을 찾아갑니다. “한신고베 대지진을 보고, 저도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어 찾아왔어요. 저는 간호사입니다.” 그날부터 할머니는 산부인과의 간호사로 일을 시작합니다. 60세에 처음 근무하는 병원. 매일 아이를 받고 산모를 케어하는 일에 할머니는 보람을 느꼈고, 그 일을 75세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시간이 날 때 육아 도우미로 지냅니다. 다행히도 사위는 큰 배우로 성장했고 막내딸도 건강히지내고 있습니다. 다카시마 할머니는 누누히 말합니다. “여자도 일을 해야 한다”고요. “일이 있어야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고요. 할머니는 자신이 아키타에서 도망치듯 나와 일을 하고 살 수 있었던 건, 가족과 더불어 자신에게 간호사 자격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드라마를 봤어요. 그 시절에도 김혜자 씨는 엄마로 열연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울 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그 드라마의 김혜자 씨처럼 이혼히 정답일까요? 다카시마 할머니처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정답일까요? 


수많은 여성들은 어떤 선택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어떤 선택을 하든 살아가게 되겠지요. 가족을 위해서 또 자기 자신을 위해서. 다카시마 할머니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습니다. 그가 유명인이건 아니건. 누구나가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요. 저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온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남기는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지만, 실은 누구나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다카시마 할머니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전 저희 둘째를 마지막으로 육아 도우미를 은퇴하신후, 요즘은 산책과 가부키에 푹 빠져 계십니다. 


도쿄 여자 김민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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