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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n 17. 2016

삶이 막막할 때

서울여자 도쿄여자 #04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문득 삶이 막막할 때가 있어요. 중학교 시절에 하루하루가 막막했고, 고교시절엔 한 시간 한 시간이 막막했습니다. 대학에 가야한다.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 가야 하는지. 저는 공부가 좋았습니다. 모르는 걸 아는 게 좋았고, 많은 지식을 가진 교사들이 교단에서 이야기 하는 걸 듣는 게 좋았습니다.


따분한 표정의 때론 고지식해보이는 교사들도, 잘 들어보면 그들만이 아는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는 다른 학생들이 낙서를 하거나 쪽지를 쓸 때도 교사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은 모두가 자신이 가진 어마어마한 지식을 풀어놓습니다. 그건 좋은 의미에서 자아도취의 상태였고, 어마어마한 지식 중 눈꼽만큼이라도 얻고 싶었습니다.


왜 공부를 하느냐. 꼭 무엇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리석은 시절이었어요.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닌데, 공부로 무엇이 되어야한다는 생각까지 못했어요. 무엇이 되기 위한 공부는 속물의 발상이라고 여겼습니다. 10대 시절 저는 그렇게 홀로 공부에게 동지애를 느끼며, 의리를 지켰습니다. 나는 너를 도구로,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고.


그러다가 정말로 대학생이 되었어요. 매일같이 화장을 하고 가장 예쁜 옷을 입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일본에서의 대학생활의 첫 관문은 친구 사귀기였어요. 저는 일본어를 고등학교 때부터 배웠습니다. 일본어 교과서에는 존댓말만 나와요. 그래서, 반말을 하면 너무나 어색한 거예요. “잘 지냈니?” “잘 지내?” “잘 지냈어?” 어떤 어미를 쓰면 좋을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밝히고, 일본어가 부족하다고 미리 말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하나 덜어놓자, 친구를 사귀기가 좀 쉬어졌어요.


그 다음 관문은 리포트였습니다. 일본어로 타이핑을 해서 메일로 리포트를 제출하는일은, 우선 일본어 자체도 어려웠지만, 일본어로 타이핑을 할 수 있어야했고, 무엇보다도 리서치와 문장 구성에도 힘을 실어야 했습니다. 리포트 기간에는 친구들과  학교 도서관에서 밤을 새며 리포트를 썼습니다. 구 소련은 왜 붕괴했는지 대해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대해서, 과거의 마녀사냥과 젠더론에 대해서, 아시아의 영화 속의 여성들에 대해서,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때로는 C언어와 자바로 게임을 만들어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과제는 넘쳐났지만,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푹 빠져지냈습니다. 시험이 없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연구하고 리포트를 쓰는 일은신나는 일이었어요.


즐거움의 끝, 취업의 압박이 찾아왔습니다. 일본에서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어요. 이럴 거면 확실한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교대나 의대를 선택할 걸. 아니 우리 학부 바로 옆에 있는 간호학부에 갈 걸. 저는 성적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선택의 폭은 얼마든지 있었는데, 대학 입시 때는, 대학과 직업을 관련시켜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실은 저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이를 테면 소설가. 그렇지만 소설가가 되겠다고 말하는 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뭘로 먹고 살려고?” “너한테 그런 재능이 있니?”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나는 가수가 되겠어. 나는 탤런트가 되고 싶어. 그런 말을 하기가 꺼려지는 것처럼. 소설가가 되겠다고 말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국 그렇게 말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나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그게 제 꿈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한 잡지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후로는 방송 리서치, 잡지 기재 등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저는 요즘 막막합니다. 막내가 태어난 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너무너무 막막해요. 글을 쓰는 일을 간간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려면 취업을 하는 쪽이 경제적으로유리합니다. 젖먹이를 비롯해 세 아이를 키우는 마흔 여자. 과연 취업이 가능할까요?


수유를 하다가도 번뜩 정신이 납니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아이가 원하는 걸 뒷받침 하기 위해선 경제력 여부가 중요할 텐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마음이 무겁습니다. 의사, 교사, 간호사, 공무원, 미용사, 메이크업아티스트, 보육교사, 대기업 사원. 모두가 부럽습니다. 자격증이 있어서 일손을 쉬어도 다시 취업할 수 있는사람들이 부럽고, 저는 왜 그런 길을 가지 않았는지 후회도 합니다.


아이를 키웁니다. 아이의 살결은 만져도 될까 싶을만큼 보드랍습니다.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평화로움이 마음 한가득이 됩니다. 그렇지만 더불어 아이를 안고 어떻게 살면 좋을지 마흔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걱정입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역시나 변함없이 문득 삶이 외롭고 두렵습니다. 어쩌면 그게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고민인지도 모르겠어요.


왜 태어났는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그런 고민만 하다가 마흔을 다 보내버린 것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고민들이 있어서 저의 살이 풍요로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바람이 불겠죠. 글을 쓰면서 시간이 나면 이력서도 넣어보고 아이도 키우고 또 그렇게 살 것입니다. 하루는 길고, 일년은 짧은, 이 모순을 가득 끌어안고 되든 안 되든 가는데까지열심히 가보겠습니다. 가다 보면 길이 생기리라 믿으면서.


도쿄 여자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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