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탄생

서울여자 도쿄여자 #05

by 김민정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한 잔 탑니다. 인스턴트 커피일 때도 있고, 원두 커피를 내리기도 합니다. 커피 믹스도 좋아합니다. 저는 지긋한 사람이 아니어서, 어느날은 인스턴트를 어느날은 커피믹스를 어느날은 원두를 선호합니다. 어느날은 신맛이 좀 나는 커피가 맛있게 느껴지고 다른 날은 쓴맛이 강한 커피가 입맛에 맞습니다. 커피의 향은, 뱃속에서 꿈틀거리던 욕망을 입으로까지 끌어올리기도하고, 어느날은 밖으로 이미 터져나온 욕망을 가라앉히기도합니다. 커피는 오묘합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커피. 저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쓴맛과 신맛의 조화라. 저는 커피를 가난한 세대의 산물로 여겼습니다. 마실 것이 커피 밖에 없던 엄마 세대의 유물이라고. 그런데 회사에 다니면서 커피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한 번 손을 대자 뗄 수가 없었어요. 취재에 나갔을 때 가장 무난하게 시킬 수 있는 메뉴가 커피였고,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약간의 휴식을 취할 때 역시도 커피가 가장 무난했습니다. 커피 한 잔이 책상 위에 있어야 그제서야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커피의 향에는 글을 쓰게 하는 묘한 매력도 있습니다. 어디 글뿐일까요? 공사장의 인부들에게도, 방송국에서 편집을 하고 있을 저희 남편에게도, 어딘가에서 트위터를 하고 있을 익명의 사람들에게도 커피는 하루를 살게 하는 작고 작은 축복이 아닐까요?


여하튼 엄마의 하루는 커피로 시작합니다. 그게 어떤 커피든 하루가 조금 행복해지는 시간입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삶이 참 고단하단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 고단함을 달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친구가 커피더군요.


출산의 아픔이야 자주 듣는 얘기지만, 엄마의 삶이 무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세 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해야해서 늘 잠이 부족하다는 것도, 밥을 먹을 때도 아이를 안고 먹거나 아니면 5분 안에 그릇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도, 화장실에 가서도 아이가 울까봐 조마조마해야 하며, 아이가 뒤집기를 하면 혹시나 떨어질까봐 불안에 떨어야하며, 걷기 시작하면 넘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아이를 잡아야한다는 사실을요. 화장실에 가도록 훈련을 시켜야 하고, 자동차가 올 때는 멈춰서라고 타일러야 하며, 먹기 싫다고 뱉는 채소를 어떻게 하면 더 먹일 수있을까 그 크나큰 과제를 감내해야 하는 게 엄마의 몫이란 걸, 몰라도 한참 몰랐습니다. 아빠의 몫도 있겠지만, 엄마의 일은 아빠 몫의 서너배는 되었습니다.


밤잠을 설치며 무려 세 아이를 키우면서도 제가 엄마라는 자각은 그다지 하지 못했어요. 저는 저에게 엄마라는 역할이 하나 더 늘었다고만 여겼습니다.


집 근처에 20살 때부터 다니던 치과가 있어요. 원장 의사는 지금은 60대가 되셨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치과 검진에 간 날 원장 의사가 절 보고 “어머니”라고 너무나 쉽게 부르는 거예요. 그전까지 저는 원장 의사에게 “김 상”이었습니다. 김 상이던 제가 어머니로 불리다니!


저는 제가 엄마란 사실을 약간은 감추고 싶었습니다.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을 왜 감추고 싶냐고요? 왜일까요? 엄마라고 불리거나 엄마의 굴레를 제 자신이 아닌타인에 의해서 획득하게 되는데 대한 거부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여하튼 그날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인으로부터 “엄마”라고 불렸습니다. 김민정이 아니라. 그날부터 저는 생물적으로 엄마일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사회에 내보내기 위해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다시금 정리합니다. 인사하기, 때와 장소에 따른 옷 고르기, 손수건과 티슈 챙기기, 칫솔질과 머리 감는 법.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전수해나가는 게 부모의 역할이란 걸 엄마라고 불린 후, 조금더 절실히 깨닫습니다. 사회적인 엄마의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과제자 목표라고.


아무리 그래도 “엄마”라고 불리다니!

좀처럼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저는 꾸준히 김민정으로 불리고 싶습니다. 제가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도. 어떤 직업이나 역할이 아니라 그저 이름으로. 이름으로 불리우고 이름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럼 또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떡진 머리로 수유를 하고, 그러고도 좋다고 웃고 있는 그런 엄마. 그런 엄마의 모습도 김민정이란 개체의 일부임이 분명합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신맛 쓴맛 조화로운 커피가 좋을것 같아요.


도쿄 여자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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