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직장에 와서 다시 생각하는 좋은 제도들
올 여름 이직을 하며 나는 네 번째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모든 회사들이 다 만족할 만한 사내 문화와 제도를 갖추고 있었고 그런 시스템 덕분에 일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일본에서 얻은 첫 번째 직장을 제외하고 이후 이직한 세 개의 회사는 전부 외국계회사이고 첫 번째 회사 역시도 팀원들이 모두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일본 회사의 문화와는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다섯 개 정도 좋았던 점들을 꼽아보고자 한다.
아침 9시 45분이 되면 각 팀원들은 각자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데에 모여 어제 한 일과 오늘 할 일에 대해서 공유하고, 혹시 일의 진행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거나 모르는 것들이 있으면 팀원들에게 묻는다. 45분인 이유는 출근하고 나서 한 숨 돌리고 어제를 되돌아보고 오늘 일을 생각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고, 일부러 애매한 시간에 설정함으로써 미팅에 대한 자각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목에도 강조했듯 스탠드업 이후에 갖는 "팀원들끼리 커피 미팅" 이다. 이 커피 미팅은 비공식적인 미팅으로 우리 팀에만 있었던 문화인데, 스탠드업이 끝나면 모두 사내 카페로 함께 가서 커피 한 잔과 빵을 사서 아침을 먹으면서 2-30분 정도 어제 있었던 일이나 개인적인 일들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처음에는 커피 한 잔 사러가자로 시작했던 것이 매일 정기적인 행사처럼 자리잡았고, 새로운 팀원들이 와도 함께 커피 마시고 빵 먹으면서 이것저것 상대방에 대해 묻기도 하고 친해져서 같은 팀 사람들끼리 일하기가 정말 편했다. 특히 팀원들의 국적이 다 다르고 영어를 쓰고 있지만 아무도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었을 때, 일하면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그 다음날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다보면 오해도 풀리고 상대를 이해하기도 쉬웠다.
처음 이 제도를 들었을 때는 '회사에서 밥을 주다니 어지간히 일을 시키나보다' 해서 별로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회사에 다니고 보니 이 점이 참 괜찮았다. 특히 매번 요리를 스스로 하거나 외식을 해야하는 독신 직원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감사한 복지제도였다. 매일 다른 음식이라 조금 질릴 것 같을 때는 외식을 하면 되니 돈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제일 좋았던 것은 카페테리아가 교류의 장이 되었던 것인데, 나의 경우에는 원래 마케팅 팀에 있다가 개발 팀에 이동하고자 했을 때 팀장과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면접을 보기도 했고, 함께 일하던 유관부서의 사람들이나 동기들과도 교류하기 쉬웠다. 가끔 카페테리아에서 LGBT 등 커뮤니티들이 파티를 하거나 새롭게 입사한 사람이 오면 팀원 모두가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단순히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통의 장소가 있고 그곳에서 사내의 여러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덕분에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하는지 혹은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회사에서 무제한으로 유급휴가를 쓸 수 있다니 이게 무슨 꿈만 같은 일인가 싶을 것이다. 이 제도는 미국 스타트업에서는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내가 쓸 수 있는 환경일까에 대해서는 처음 입사할 때 많이 의문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제도를 통해 엄마의 투병기간 동안,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도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이 회사에서 있을 때는 엄마의 투병과 나의 우울증이 겹쳐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을 때여서 쉬고 싶을 때 쉬었고 (거의 3주에 한번은 쉬었던 것 같다...) 오히려 쉬어서 그랬는지 일할 때는 정말 집중해서 일했고 성과도 나쁘지 않게 낼 수 있었다. 다른 동료들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무리하기보다는 그냥 쉬는 것이 분위기 상 허용되어서 다들 좋은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무제한 유급휴가를 주는 대신에 내가 할 일과 성과는 제대로 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COVID-19가 시작되고 나서 나도 회사가 아닌 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집에 제대로 된 책상과 의자가 없었고 회사에서는 널찍한 모니터를 썼지만 집에는 작은 모니터 하나밖에 없어 일하기에 불편한 환경이었다. 회사에서는 종업원들이 일하는 환경에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 리모트 워크를 할 때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도록 비용을 보전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그 돈으로 책상과 의자, 모니터, 조명을 샀고 이직 후에 다른 회사에서 또 리모트 물품 지원 비용을 받아서 맥북을 사서 일하고 있다. 리모트 워크가 되고 집에서 일하면서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았지만 환경이 좋지 않아서 매번 어깨와 허리가 아프곤 했었는데 제대로 물건들을 갖추고 나서 일하니 생산성도 향상되고 무엇보다 내 방이 근무 공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다가 집의 인터넷 비용도 지불해주는 회사가 있었다. 종업원들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회사가 적극적으로 서포트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겪었던 좋은 문화는 동료들과 팀에게 감사하는 제도가 있거나 그러한 분위기가 있는 문화이다. 이전 직장 중 한 곳에서는 정기적으로 팀원들끼리 회식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비용을 지불한다던지 혹은 분기마다 팀원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작은 선물이나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회식은 대체로 부어라 마셔라 류의 그런 회식이라기보다는 다 같이 도쿄의 맛있는 식당에 가서 음식과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프라이빗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사실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내가 회사에, 팀에 속해있다는 기분을 느끼기가 어려웠던 때가 많았다. 하루는 유럽에서 택배가 와서 이게 무엇인가 하고 받았더니, 내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는 액자를 받아서 박장대소를 했던 기억이 있다. COVID로 팀원들이 모이지 못하니, 캐리커쳐를 그려 팀 단체 사진을 찍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이 팀의 일원이구나 하는 소속감을 느꼈었다. 연말에는 팀의 목표를 달성한 기념으로 피자 박스가 배달된 적도 있었다. 안에는 피자를 시켜먹을 수 있도록 바우처가 들어있었는데, 그 팀은 매년 연말에 목표 달성을 축하하며 다 같이 회사에서 피자를 먹는 문화가 있었지만 COVID로 할 수가 없어 각자 집에서 시켜먹을 수 있도록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
또 동료들이 서로에게 피드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도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평가기간에 가장 날카로워지고 당연하게도 평가에 신경쓰게 된다. 하지만 평소에도 서로에게 피드백을 하면서 어떻게 일했다면 더 좋았을지도 알 수 있었고, 그리고 무엇을 도와줬을 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어서 어느정도 평가에 대해서는 미리 이 정도 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알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고 팀 안에서 안정감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에서 꼽은 다섯가지 좋은 문화는 결국 종업원인 내가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이 제도 덕분에 회사에서 일도 열심히 할 수 있었고, 다른 동료들에게 배우면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이기도 했다. 혹시 내가 팀을 만들거나 회사를 꾸려 리더가 된다면, 이런 제도들을 다시 돌아보면서 종업원들에게 자율을 주어 그들 스스로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고, 그것에 대해 보상 (감사이든, 물질적인 보상이든)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