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트블루머] 내가 놓친 '지독한 성실'

오랜 덕목, 가장 강력한 무기.

by 레이트 블루머

성실. 誠實.

기성세대는 이 두 글자를 기억한다.

초중고 시절 학급 교훈으로 가장 흔하게 보던 글귀 가운데 하나가 '성실'이었다.

표준국어사전은 성실을 ‘정성되고 참됨’이라고 풀이한다. 내게 성실은 조금은 다르다. 무슨 일이든 정성껏 하는 것. 맡은 일을 대충 넘기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며, 자기 손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태도이다.


요즘은 성실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 않는다. 왠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너무 당연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괜히 이 단어를 꺼내면 옛날 사람 같고, 심하면 꼰대처럼 보일까 주저하게 된다.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다.


오히려 지금은 “노력의 배신”을 말하고, “너무 노력하지 말라”는 조언이 공감을 얻는 시대다. 지금 세대는 지나친 노력과 완벽주의로 자존감이 무너지기 쉽다. 이럴 때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책들도 많다. 그런 책들은 많은 젊은이에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다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잠깐의 위로로 끝난다. 특히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위로만으로는 그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다.


얼마 전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네이버 최수연 대표가 이 오래 묵은 꼰대스런 단어를 꺼냈다.

“여러분의 지독한 성실함을 믿으세요. 그건 평생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바로 엉덩이의 힘, 끝까지 집요하게 파는 성실함입니다.”

관련 기사를 읽다가 내 눈은 한동안 그 문장 위에 멈췄다. 무척 공감이 갔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느낀 것이 있다. 생각보다 성실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대개 스스로를 성실하다고 여기고, 주변 사람들 역시 기본적으로 성실하다고 생각한다. 출퇴근 시간을 잘 지키고, 늦게까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성실하다고 판단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성실은 다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파고드는 태도, 더 나은 기획을 위해 관련 자료를 모조리 찾아보는 태도, 잘 안 풀리는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붙드는 태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전에도 아주 성실한 사람은 아니었고, 지금도 완전히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정말 성실했다면 더 오래 붙들었을 것이고, 더 깊이 파고들었을 것이다.


맥도널드를 세계적 프랜차이즈로 키워낸 레이 크록은 이런 점에서 성실한 사람이다. 그는 50대 초반까지 종이컵과 밀크셰이크 믹서기를 파는 평범한 영업사원이었다. 52세에 맥도널드 형제의 작은 햄버거 가게를 발견한 뒤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무기는 특별한 천재성이 아니라, 이미 오랜 세월 몸에 밴 성실함이었다. 미국 전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사람답게, 그는 프랜차이즈 확장에서도 청결, 조리, 서비스의 기준을 하나하나 매뉴얼화하며 집요하게 시스템을 만들었다. 결국 그를 밀어 올린 것은 재능보다 끈기로 보이는 성실이었다.


그러나 성실함에는 부작용도 따른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양면성이 있다. 지나치게 성실하면 완벽주의자가 되거나 워커홀릭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대리 시절 만난 한 동료는 말 그대로 성실 그 자체인 사람이었고, 그의 성실함은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항상 새벽 일찍 출근했고, 일에 대해서는 집요하리만큼 철저했다. 그 결과 그는 남들 다 퇴직한 나이에도 대기업의 고위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그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 특히 그의 부하 직원들 중에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를 보는 나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점이었다. 만약에 그러한 힘듦을 이해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했다면 그야말로 모두가 따르고 싶어 하는 최고의 리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그렇다고 약을 안 먹을 수 없듯이, 약은 약이다. 성실함은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약이다. 가정 일이나, 회사 일이나, 비즈니스를 하거나, 학생들이 공부할 때도 성실함은 우리가 모두 먹어야 하는 필수 비타민 같은 약이다.


오랜만에 다시 떠올려 보는 단어, 성실.
결코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특히 남들보다 늦게 피더라도 끝내 자기 계절을 만들어내는 레이트블루머에게 성실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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