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2의 후덕죽 셰프
최근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인 흑백 요리사 시즌 2를 봤다. 대한민국의 최고 요리사들의 요리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심판진과 베테랑 요리사들, 그들 사이 게임의 승패 같은 요리 이야기도 볼만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고수들의 삶과 그 태도에 대한 에피소드가 내겐 더욱 인상적이다.
베테랑에 속하는 20인 중에 유독 내 눈에 띄는 셰프가 있다. 후덕죽 셰프이다. 이름이 얘기하듯 그는 화교 출신이다. 우리 정부가 단일 민족이라는 민족 교육에 집착하던 그 시절,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학교 다니고 사회생활하는데 결코 쉽지 않았을게다. 나무위키 등에 따르면, 초중등학교 시절 부모를 잃고 고아로 여기저기 떠돌이로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되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끼니가 해결될 수 있고, 부모님이 중식당을 경영하는 것을 어릴 때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반도호텔 중식당을 거쳐,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의 셰프가 되었고, 놀랍게도 조리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유명 호텔의 임원이 되었다. 신라호텔에서 이사와 상무를 거친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전설 그 자체이다.
그는 평생 한 길만 걸은 사람이다. 지금이야 요리사를 셰프라고 하며 전문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후덕죽 셰프가 젊은 시절에는 요리사라고 하면, 그것도 중식 요리사라고 하면 매우 천대하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후덕죽의 결혼식에 신부 부모와 가족들이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 한길만 팠다.
그의 중식은 남달랐다. 신라호텔 팔선의 세프 시절. 그는 한국에 생소했던 '불도장'을 한국화하여 대중화 시켰다. 200여 가지가 넘는 중식 메뉴를 직접 개발하는 등 남다른 열정과 혁신이 그를 오늘의 자리로 이끌었다. 그가 개발한 중식 메뉴에 대하여 후진타오와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은 중국에서 먹는 중식보다 더 훌륭하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흑백 요리사 출연 셰프 중 그는 가장 연장자이다. 칠십 대인 그가 지금도 요리를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의 겸손함이 아닐까 싶다. 흑백요리사2에 출연하면서 그가 한 말에서 그의 겸손을 엿볼 수 있다. "'중식대가(中食大家)'이니 '최고지존(最高至尊)'이다, 사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거든요. 그냥 이제 일반 조리사 직원들하고 같이 조리하는 것, 그것이 이제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체전에서 그가 맡으려고 한 소스를 다른 후배 셰프가 맡고 싶어 하자, 바로 그에게 양보하고는 마늘을 다지는 등 거기에 필요한 재료까지 손질해 주는 넓은 마음. 70대 최고령 전설적인 셰프가 주방 막내의 일을 하는 데에서 그의 그릇 크기를 볼 수 있다.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이다. "축구를 하면 누구나 골을 넣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두가 공격수가 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수비수가 돼 골문을 지켜야 한다. 내가 하겠다고 했다. 주방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그는 칠십 대 중후반이다. 모두 은퇴하고 세월만 보내기 쉬운 나이에 그는 지금도 현역이다. 그야말로 존경스러운 레이트블루머이다. 최종 3위로 탈락하면서 그가 한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57년 동안 했던 요리 인생이, 요리가 썩지를 않았구나. 아직까지도 내가 할 수 있구나. 너무 이제 흐뭇하고, 마음은 이제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후배가 올라가니까."
나는 그 장면에서 오랫동안 피는 꽃이 연상되었다. 인생 중반기 이후 성공하는 사람을 레이트 블루머라고 한다. 레이트 블루머에 그치지 않고 인생 후반부까지 그 성공을 지속해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늦게 피는데서끝나지 않고 그 꽃을 인생 후반부까지 피어가는 사람에 대한 용어는 따로 본 기억이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을 롱 블루머(long bloomer, 늦게까지 피는 꽃)라고 부르고 싶다. '밀레니엄 벨'처럼 서리가 내릴 때까지 피는 꽃, 후덕죽 셰프는 롱블루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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