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염원들

by 조니

Stay Hungry, Stay Foolish. 이제는 꺼내놓기 뻘쭘한 말이 되었지만 대학시절에 이 문구는 꽤 센세이셔널했다. 전공 서적 한 켠에 호기롭게 이 말을 써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쏭달쏭했다. 광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과연 나의 재능으로 그 세계에 발 붙일 수 있을지 의심을 했고 자기 비하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늘 갈망하라는 저 경구에서 미약하나마 힘을 빌리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장래희망란을 아무 생각 없이 채우는 세월을 지나 원하는 바가 확고해져 정성 들여 갈구하던 시기였다. 그런 것도 꿈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런 꿈을 꾸었다.


신입 광고기획자가 되어 첫 회식에서 팀장님과 상무님이 주는 술을 넙죽 받아먹었다. 두 손으로 작디작은 소주잔을 받드는 마음에는 회사생활의 고단함을 떠올릴 상상력이 없었다. 너무 당연한 것이고 이렇게 해야 직장인 구실을 하는 것이라 믿었으니까. 과연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의 불안함과 내가 이 바닥에 입성했다는 뿌듯함 같은 걸 동시에 떠올리며 투 플러스 등급의 소고기 한 점을 꿀떡 삼켰다. 벌겋게 취해 변기를 부여잡고 속에 든 것을 게워내며 이 일을 잘 해내리라고 의지를 다졌던 것 같다. PPT에 기가 막힌 전략을 담아내어 홀딱 반하게 만드는 일을 상상했고 첫 월급으로 무엇을 살까 고민했다. 어느새 동기 녀석도 옆 칸에서 우렁차게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도 어떤 염원 같은 것이 있었을까.


회사에서 세끼를 먹고, 잠을 자고, 목욕을 하게 되니 어느새 자취방이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회사 수면실에 누군가 술에 취해 자면서 쉬를 했던 걸 알게 되었다. 침대 시트는 훌륭하게 세탁되었지만 매트리스는 그대로 놓여있었다. 분명 섬유유연제 향이 가득했지만 이상하게 내 코에는 얕은 찌른내가 맴돌았다. 딱 그즈음에 이 세계에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더한 광고 안은 반년 째 표류 중이었고 이제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한탄이 들려왔다. 당시에 광고주와 광고제작자 사이의 갑을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해 보였다. 계급도란 게 있다면 광고주는 저 위에 있는 부류이며 이곳을 탈출해서 저곳에 가면 신분 상승이라도 할 것 같은 착각에(지금에서 보면) 빠졌다. 어느새 클라이언트의 마케터 채용 공고를 클릭하고 있었다. 면접에서 내 브랜드를 키워보고 싶다는 말을 뻔뻔하게 외쳤다.


그렇게 마케터가 되었다. 마케터가 되어 몇 개의 회사를 다녔고, 여러 프로젝트를 하며 수년을 보냈다. 역할도 조금씩 달라져 여러 입장으로 다양한 동료들을 만났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처음과 지금이 있을 테고 자기만의 어떤 염원 속에서 작고 큰 과정을 지나온다. 여러 선택지가 있었고 기회가 있었으며 애써 꾹 눌러놓고 아닌 척 하지만 후회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 순간에 그 판단이 옳았느냐를 따지는 것만큼 허망한 것이 없다. 선택의 순간이 아무리 많았던들 새로운 선택과 결정 앞에서 언제나 어리숙한 초보자가 된다. 이 불안정하다면 불안정한 내 삶에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염원을 계속 믿기로 했다. 어떤 상태가 되고 싶다, 무엇이 되고 싶다, 그것이 필요하다와 같은 소망과 욕망 같은 것들이 있다면 일단 그렇게 해보는 것도 틀리지 않고 의심이 든다면 이게 나에게 맞는 방식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다행히도 그 초보자는 초심자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다시 시작해서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들. 꽤 인스턴트 하고 경박스러운 감정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어떤 염원을 갖고 이 선택을 했고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마음 속에 적어본다. 그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꾹꾹 눌러서.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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