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아홉 번째 퇴사를 했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일터로 가는 날짜를 받아두고 보름간의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다음 회사는 열 번째가 되는구나. 2009년 여름부터 시작했으니 대략 15년간 일을 했고, 평균 근속연수가 3년이 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퇴사란 행위도 꽤나 익숙해질 법 하지만 매번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동료들과 가까스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커다란 회전문을 밀고 나오면 매일 걷던 길거리의 소음이 적막이 되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보다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복잡하지만 헛헛한 마음이 차올랐다. 우뚝 솟은 회사 건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단단해 보였다.
정확히 떠올릴 수 없지만 퇴사한 날에는 꽤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고 먹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집에 와서 조용히 진라면 매운맛을 끓였다. 배가 고파서 끓인 것이 아니라 맛은 그저 그랬다. 책상 한편에 동료들이 적어준 롤링페이퍼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함께 했던 시간을 회상하고 앞으로의 안녕을 바라는 다정한 말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좋은 말과 아름다운 얘기 사이에서 그간의 기쁨과 슬픔, 미움과 분노 같은 것들이 꼭꼭 숨어있는 것 같다. 다만 그런 것들은 애써 캐어내지 않으려 한다. 돌이킬 수 없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다 보니 가끔 우스갯소리로 이직의 신이니 왕이니 하는 얘기도 듣는다. 내가 버티지 않겠다고 마음먹어 그만하고, 밥벌이를 해야 하니 다시 시작했을 뿐인데 그런 타이틀로 포장을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사회 통념상 평생직장이란 관습이 여전히 크게 남아있는 것도 같아 어쩌면 돌려 까기 같은 걸 수도 있으려나. 어이구 또 이직하니! 같은 뉘앙스로. 실제로 양가 부모님들께는 이직을 고하기가 송구하다. 뭔가 이 녀석이 회사에 적응을 못하고 방황하고 있구나 같은 인상을 주는 것 같아서. 실제로는 항상 응원해 주시지만 역시나 매번 소식을 전하기 어렵다.
이직을 하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라면 한 회사에 오래 잘 머무르는 것도 역시나 기술이어서 둘 사이에 우위는 없는 것 같다. 다만 반대급부에 대한 갈망은 조금 있는 듯하다. 나는 왜 한 회사를 오래 못 다니는 가를 고민하고 있던 차에 10년 전에 함께 입사했고 여전히 그 회사를 다니는 친구는 나는 왜 회사를 옮기지 못하는 가로 울상을 짓고 있더라. 둘은 형태를 달리하지만 결국 회사원이란 속박 안에서의 것들이라 그 한계가 명확하고 슬프다. 그 친구에게는 그곳에서 잘 버티어내고 있고 존경스럽다는 응원 비슷한 말을 건네주었다.
퇴직과 이직 사이의 시간에 휴식, 재충전이란 이름을 붙여두지만 실은 조금 고달프다. 해결하지 못한 것들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이 이리저리 뒤섞여 마음을 어지럽힌다. 해결하지 못한 것들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것들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다. 나는 무슨 짓을 했나, 무엇이 부족했나,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말끔하게 답을 정리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이직을 완수하면 좋으련만 매번 물음표만 쌓아두고 허둥대다가 새로운 회사의 출근일을 맞이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를 수 있을까. 아홉 번의 퇴사를 마무리하며 그간 일터에서 있었던 일과 마음, 그리고 여러 생각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부디 그것들이 회환과 후회의 산물이 아니라 앞으로의 길을 걸어 나갈 수 있도록 등 뒤에서 살포시 밀어주는 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