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루는 초록했나요?
새해맞이 5일 단식을 했다. 전 단식 3일, 본 단식 5일, 후 단식 14일 일정이다. 보식 5일째 미음과 흰죽에 질려 냄비 챙겨 죽집을 찾아 나섰다.
밥과 죽, 미음, 된장국, 동치미, 효소로만 13일을 지내고 나니 몸은 가벼워지고 피부도 맑아졌다. 정신은 또렷해지고, 찬 공기와 햇살만으로도 온몸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매년 단식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전·후 단식 실패로 도로아미타불이 되곤 했다.
코로나로 갇힌 일상, 새해맞이 단식은 안성맞춤 수행처였다. 51명이 초대된 ‘공복의친구들’ 단톡방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질문과 답, 경험담이 오갔다. 후 단식이 시작되니 떡볶이는 언제부터 먹을 수 있는지, 커피는 언제나 가능한지를 묻기도 하고, 질환 관련 문의와 경험담을 나누기에 하루가 바쁘다. 어떤 이는 아침 일찍 명상과 풍욕을 하고 어떤 이들은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뜨개질을 하며 느려진 몸과 마음을 마음껏 누린다.
1㎞ 남짓 걸어 야채죽을 시키고 냄비를 내미니 주인아저씨 눈이 커진다. 이내 내민 냄비에 죽을 담고, 플라스틱통에 담긴 김치와 양면을 주섬주섬 챙긴다. 반찬은 됐으니 죽만 달라고 해서 받아들고 몇 걸음 떼니 해바라기 씨앗을 넣은 호떡 냄새가 코를 사로잡는다. 집에 있는 아들 생각에 호떡을 주문한다. 일회용 컵은 됐고, 종이봉투만 담아달라고 해서 외출할 때 챙긴 소창주머니에 담았다. 호떡 아저씨의 숙련된 손은 멈칫 했고 “손님 같은 분이 간혹 있다”는 아저씨의 말이 너무 반갑다. 떡볶이집이나 식당, 심지어 횟집에서도 ‘용기’ 내어 ‘용기’를 내밀어보았더니 덤까지 푸짐히 얹어준다. 그 마음 또한 따뜻하다.
용기와 장바구니를 챙기는 번거로움이 쓰레기를 담아오지 않았다는 뿌듯함으로 보상받아서인지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통을 한 개 더 가져왔더라면 종이봉투도 안 쓸 텐데 살짝 아쉽다.
점심으로 색 고운 야채죽을 먹고 천연수세미에 고체주방세제를 묻혀 설거지를 했다. 자연에서 얻은 수세미는 쓸수록 놀랍다. 부드럽고, 잘 닦이고, 잘 마른다. 마로 만든 수세미와 번갈아 사용하는데 둘 다 기름진 것이 없으면 세제는 사용하지 않는다.
소창 핸드타월은 손을 닦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김포교당 ‘재활용 공방’에 소창 행주와 소창 수건도 주문해두었다. 얼마 전 친구가 수건을 건조기에 말려보았더니 먼지와 머리카락이 많이 나와 깜짝 놀랐다는 말을 들은 터라 소창 수건이 더욱 기다려진다. 단식기간 중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던 터라 화장품 원료인 들기름을 얼굴에 발랐다. 고소한 냄새 한가득하더니 10분도 안 돼 참기름 냄새는 날라가고 촉촉함만 남았다. 검색해보니 일본에서는 먹는 화장품오일로 냉압착 생들기름이 인기란다. 우리나라에도 판매하고 있다니 놀랍다.
한 달 전에 선물 받은 헤나샴푸 바는 거품도 충분하고 오래 쓴다. 고체치약 입에 물고 녹이며 대나무 칫솔로 양치질을 한다. 3개월이면 자라는 대나무로 만든 칫솔은 요즘 인기 아이템이다. 얼마 전 휴지도 대나무 휴지로 바꿔 걸었다.
강추위에 미뤘던 빨래더미를 세탁기에 넣고 생협에서 사온 구연산가루를 세제통에 넣었다. 빨래할 때 미세플라스틱이 제일 많이 나온다니 옷도 천연섬유로 바꿀까 싶다. 전자렌지와 전기밥솥은 삼발이와 압력밥솥, 도시락 보온통으로 해결한 지 오래다. 정수기는 주전자형 정수기를 사용한다.
유엔이 발표한 국가별 수질지수를 보면 한국의 수돗물은 핀란드, 캐나다, 뉴질랜드에 이어 세계 8위, 미국수도협회 정수장 평가에서는 최고등급인 별 다섯 개를 받았다. 플라스틱 생수병 때문에 수돗물을 먹거나 끓여 먹는 친구들이 주변에 꽤 있다. 베란다에 미니태양광 달기는 아직 미션항목에 남아 있다. 오랜만에 햇살 가득 비추니 청소기 대신 빗자루, 걸레 들고 주말 대청소 한바탕해야겠다.
1월 22일자
출처 : 한울안신문(http://www.hanulan.or.kr)
http://www.hanula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64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