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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탈핵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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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옥 Oct 22. 2023

"후쿠시마가 '죽음의 땅'? 그곳에도 사람이 살아요.

[탈핵 잇_다] 일본인 탈핵활동가 오하라 츠나키의 이야기 

오늘 8월 24일 오전 12시 방류 직전 후쿠시마현 후타바의 바다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렇게나 날씨가 좋았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8월 끝자락 퍼붓는 비를 뚫고 오하라 츠나키씨의 집을 방문했다. 광주 구도심 아담한 주택 집에는 백일홍, 석류가 붉은 향을 피워내고 있었다. 보이차로 눅눅함을 달래고 8월 24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당일 개인 SNS에 올린 사과의 글에 관해 물었다.


역사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해 일본 정부를 대신해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저는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개인의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자기만족인 것 같아서 불편하더라고요. 그런데 후쿠시마 오염수가 바다에 버려지는 날은 너무 슬펐고 나도 모르게 '정말 죄송하다'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일본 사람이잖아요. 탈핵운동에 참여하는 일본인으로서 해양투기를 막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바다에 사는 뭇 생명들에게 정말 미안했어요.
▲  8월 24일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가 시작되기 전 후쿠시마현 후타바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 ourplanettv


지난 2023년 8월 24일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를 시작했다. 스리마일, 체르노빌에 이어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발생한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를 30년 동안 바다에 버리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다핵종 제거설비(이하 ALPS)가 모든 핵종을 걸려 줄 것처럼 선전했지만 삼중수소와 탄소-14와 같은 방사성 물질은 걸러내지 못한다. 결국 삼중수소를 제외한 29 핵종에 대해 측정·평가해 바다로 내보낸다.

탈핵신문 2023년 6월 12일자 '오염수 해양투기에 중대한 결함있다' 제하의 보도에서 미국 민간연구조직 에너지환경연구소 소장 아르준 마크히자니(Arjun Makhijani) 박사는 "도쿄전력이 탱크에 보관된 오염수 실태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미흡한 정보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마크히자니 박사는 10개씩 나눈 오염수탱크 그룹마다 1회당 30L씩, 각 탱크가 가득 차기 전 마지막 일정량에서 1회만 채취하는 바람에 샘플은 전체 탱크 수량의 20%밖에 안 된다고 주장한다. 탱크 내 축적된 침전물의 농도와 양이 샘플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뿐만 아니다. 1차 해양투기계획에 따라 지난 8월 24일부터 17일간 총 7800t의 핵오염수가 바다에 버려졌다. 2차 해양투기를 앞두고 지난 9월 21일 도쿄전략은 핵오염수 측정·확인용 탱크 C군 방류 전 시료 분석 결과 2차 해양투기 분 보관 탱크 내 오염수에서 탄소-14, 세슘-137, 코발트-60, 아이오딘-129 등 4종의 방사능 핵종이 '미량 검출됐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측정 평가 대상 핵종(29종)의 고시농도 비율 총합이 0.25로 기준치인 1 미만이므로 예정대로 바다에 투기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2021년 4월 13일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발생하고 있는 방사능 오염수 해양투기를 결정하면서 '오염수는 충분히 정화한 후 기준치 이하로 희석해서 바다로 보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어요. 희석한들 방사성 물질의 총량은 같잖아요. 핵 오염수가 정말 안전하다면 여태까지 탱크에 저장해 놓을 필요도 없었어요. ALPS로 걸러서 애초부터 농업용수든 수영장을 채우는 물로 사용하든 일본 국내에서 요긴하게 사용하면 돼요. 해양투기 말고도 육상 장기 보관이나 콘크리트로 고체화하는 방법도 있지만, 국제사회와 일본 국민들에게 온갖 거짓을 동원해 가장 쉽고, 값싼 선택을 한 거예요.


민간기업인 도쿄전력은 2023년 총 4차례에 걸쳐 모두 약 3만1200톤(삼중수소 총량: 약 5조 베크렐)을 바다에 투기할 계획이다. 탱크에 보관하고 있는 총량 134만 톤의 2.3%에 해당한다. 그러나 매일 90∼100톤씩 핵오염수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다.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향후 30~40년에 걸쳐서 해양 방류를 하겠다고 하지만, 불가능한 계획이며 실체로는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미야노 히로시 일본원자력학회 폐로검토위원장은 9월 19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핵연료 잔해(데브리)가 없는 일반 원전도 폐기에 30∼40년이 걸리는데,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지금도 핵연료 잔해가 880톤이나 남아 있다"라며 "원자로를 폐기하는 폐로(廢爐)의 시간이 얼마일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라고 우려했다.

핵오염수를 보관한 탱크 부지를 사고 원자로에서 반출한 핵연료 잔해 보관 장소로 활용하겠다며 핵오염수 바다투기를 결정한 도쿄전력의 계획은 2051년까지 녹아내린 원자로와 핵연료봉 그리고 콘크리트 잔해 등이 모두 제거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전제가 틀렸으니 답도 당연히 틀릴밖에.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을 향해 경제적인 면에서도 해양투기가 가장 타당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미 그 논리도 무너졌어요. 2016년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워킹그룹 '삼중수소수 테스크 포스'가 도출한 계산에서는 해양투기에 드는 비용은 최대 34억 엔이에요. 그런데 해저터널 등 공사비 약 430억 엔, 소문 피해 대책 비용 약 300억 엔, 어업인 지원기금 500억 엔 등으로 현시점에서 벌써 총 1200억 엔(한화 약 1조 원)을 넘었어요. 애초 예산의 13배인 거죠. 기간이 늘어날수록 비용도 늘어날 거고요.


핵오염수 해양투기가 후쿠시마 핵사고 수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던 국제사회를 향한 주장은 자국민들에게는 가장 싼 방법으로 설득되고 있었다. 그마저도 속임수이지만 말이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본질은 핵발전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운동이 반일감정으로 연결되는 것이 어쩌면 더 위험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식의 접근방식이 오염수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죠. 처음에는 걱정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오염수 반대 집회에서 조금씩 '탈핵'이라는 구호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오염수 문제로 한·일 일반 시민들 사이에 안 좋은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라고 생각해요. 오염수 문제를 한·일 국가 간의 갈등 문제로 바라보거나 정권 비판의 수단으로만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의 본질은 핵발전소예요. 한국도 일본도 핵발전을 추진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한·일 양국 시민들이 공통의 문제의식으로 함께 손잡고 극복해 나가는 과제라고 생각해요.


▲  지난 8월 31일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해양투기 반대집회’에 모인 탈핵대회 참가자가 ‘핵발전이 문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탈핵신문
사람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를 '핵 테러'라고 하는데 인류가 '핵'을 다루는 것 자체가 '테러'이지 않을까요?


일본인으로 한국에서 15년 동안 환경운동, 탈핵운동에 몸담아 온 오하라씨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해양투기는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핵발전 부흥정책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미국과 소련이 군비경쟁에 한창이었던 냉전 시기 핵보유국들의 핵실험은 세계적으로 2000회가 넘었어요. 중·저준위핵폐기물 해양투기도 1993년 금지되기 전까지 계속됐었고, 핵 재처리 관련 시설에서도 대량의 오염수가 바다에 버려졌어요.


군사적 핵도, 평화를 가장한 핵발전도 인류가 핵을 사용하는 한 핵테러는 이미 일상이라는 것이 오하라씨의 주장이다. 이번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가 롯카쇼무라 사용후연료 재처리시설의 핵오염수 처리를 위한 전초전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핵발전은 태생부터 엄청난 양의 방사선을 품고 있다.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순간, 방사능이 발생하고 기체나 액체 상태의 폐기물은 바다와 대기로 흘러간다.

오하라씨는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운동이 한국의 핵발전소에서도 방사능 오염수가 통상적으로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계기와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뿐 아니라 핵발전을 운영하는 모든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지요.


방사성 물질의 양이 얼마이든, 핵종이 삼중수소든, 세슘이든, 우라늄 136이든 '독'은 '독'이고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국경을 가르지 않고 시민들의 몫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본인 탈핵활동가 오하라씨

            

▲  기후위기를 실감할 정도로 광주에도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탈핵우산 속 오하라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이태옥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까지 쌓인 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다양했다. 한눈에 봐도 독서량이 상당했다.


남편 책이에요.


남편 이야기에 한국에서 탈핵 운동하는 일본인 오하라씨가 바다 건너 한국까지 온 사연이 궁금해졌다.


한국의 역동적 에너지가 좋았어요.


일본 단기대학에서 공부하던 오하라씨는 1995년 일주일 동안 홈스테이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첫발을 딛는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동안 경험한 한국이 너무 재미있고 역동적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역사도 잘 못 알고 있는 것도 있었고, 비슷하게 생겼는데도 사고나 행동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어둡고 탁한 색이었는데 한국에 와보니 알록달록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 자유로움을 추구하던 저와 잘 맞더라고요.


일본에 돌아가서 '한국으로 유학 가겠다'라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감정적으로 유학을 결정하면 안 된다"라며 먼저 직장생활을 권하는 바람에 교수님 말씀대로 단기대학 졸업 후 취직하고 섬유회사 영업 사무원으로 2년을 보냈다.

직장생활은 재미있었고 사회생활은 또 다른 배움을 주었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 오하라씨는 교토에 위치한 리츠메이칸 대학 국제관계학부 3학년으로 편입한다.


일본 대학은 3학년부터 세미나에 들어가요. 그리고 마지막 과정이 논문이지요. 세미나 주제를 고르는데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교수님이 계시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지요. 교수님도 엄청나게 반가워하셨어요. 저와 비슷하게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분이었어요.


고(故) 나카무라 하쿠지(中村福治) 교수는 오하라씨에게 한국 유학을 권하며 전남대를 추천한다.


2000년이 5·18민중항쟁 20주년 되는 해였어요. 전남대로 유학 가면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며 꼭 서울에 있는 대학이 아닌 전남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오하라씨는 2000년 전남대 사회학과 교환학생으로 유학 생활을 시작한다. 사회학과 사회조사실습 수업에서 조별 과제를 위해 우연히 구성된 팀의 한 남학생과 오하라씨는 화순 한천면 등지를 돌며 1945년 이후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관련 사회조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둘은 가까워졌고 결혼을 약속했다.


자기 신념을 지키며 평생 운동하면서 살겠다는 이 남자가 멋있더라고요. 일본 대학에서 볼 수 없는 갈라파고스 희귀생물 같은 존재였어요.


남자친구는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하고 오하라씨는 일본으로 돌아가 나머지 학업을 마친 뒤 다음 해인 2002년 한국으로 돌아온다. 국경을 넘은 장거리 연애가 결혼으로 열매를 맺고 아이도 낳았다


돈은 꼬박꼬박 벌어오더라구요.(웃음) 남편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아이가 4살이 되었을 무렵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진 오하라씨는 2007년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에 공채로 들어간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남편과 주변 사람들도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 사람들 삶이 멋지게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지만, 그때는 그랬어요. (웃음)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에서 맡은 업무는 회원 관리와 회계, 소식지, 환경교육 등이었다. 애초 오하라씨가 생각했던 것과 업무 영역이 달랐고 외국인이 단체 활동가로 근무하는 것은 생각보다 장벽들이 많았다.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선배 동료들로부터 배우며 많은 일을 해냈다.


광주와 가까운 영광에 핵발전소 6기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크게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어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엄청난 큰 충격을 받았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있는 광주에서 불과 35~50km밖에 안 되는 곳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고 내가 사는 곳에서 탈핵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오하라씨는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알고 싶었고,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한국에 알리며 본격적인 탈핵운동을 시작한다.

영광 한빛핵발전소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졌고 연대기구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아래 광주전남행동)이 만들어졌다.

광주전남행동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거의 매년 탈핵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탈핵영화제도 열었고 탈핵 피켓팅과 서명운동 등도 꾸준히 진행했다. 또한 '한빛핵발전소대응호남권공동행동'과 연대해 한빛핵발전소 대응활동도 벌이고 있다. 오하라씨는 현재 광주전남행동 교육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광주전남행동에서 나온 카드뉴스나 집회 웹자보를 보면 '잘 만든다' 싶었는데 오하라씨 작품이라니 놀랍고 반가웠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 동안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면서 일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정말 많이 배웠어요. 하지만 여러 환경운동 중에서도 탈핵에 특화된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커지더라고요.


탈핵운동만 하고 싶어요


▲  오하라 씨는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발간된 탈핵신문을 모아두고 있다. 탈핵신문곁을 지키는 반려견 멍멍이.


2013년 광주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팀에서 오하라씨가 진행한 사업은 교보재단에 공모해 800만 원을 지원받아 후쿠시마 청소년들을 광주로 초대하는 일이었다. 후쿠시마 청소년들이 직접 겪은 핵사고의 경험을 나누고 한·일 청소년들이 꿈꾸는 미래에너지를 그려보는 프로그램들로 채웠다.


후쿠시마 한일 청소년 캠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기획하고 운영한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어요. 여러 어려움도 있었지만 큰 성취감을 느꼈고, 앞으로 더 탈핵에 집중해서 활동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광주환경운동연합을 퇴직한 후 특정한 단체에 속하지 않고 일종의 프리랜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오하라씨는 현재 탈핵신문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월 1회 지면으로 발간되는 탈핵신문에서 오하라씨는 일본의 탈핵동향을 전한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무엇보다 후쿠시마 관련 소식을 글로 정리하고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탈핵신문은 2012년 6월에 창간되었고 저는 윤종호 전 편집국장의 제안으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탈핵신문 활동에 참여했어요. 탈핵신문은 일본에서 발간하는 반원전신문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다고 해요.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벌어지는 탈핵 소식을 공유하기 위해 탈핵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편집위원이나 통신원이라는 형태로 참여해 함께 만드는 신문입니다.


많을 때는 약 5000~6000부 인쇄해 환경단체나 개인 구독자들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늘 적자를 면치 못해 재정적 어려움이 따랐지만, 꾸준히 응원해주는 독자들의 후원금이나 때로는 각종 상금으로 현재까지 발간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4월부터 12월까지 내부 정비를 위한 휴간 기간을 거쳐 2018년 12월 복간준비 1호를 발간, 2019년 3월 23일 탈핵신문 미디어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재창간했다.


협동조합을 설립하면서 편집국장이 울산에서 활동하는 용석록 국장님으로 바뀌었고 저도 사무국 일을 부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넘겼어요. 지금은 운영위원과 편집위원을 맡으면서 주로 일본 소식과 영광 한빛핵발전소 소식에 관한 기사를 써요.


탈핵신문은 2022년 7월 100호 발간을 달성해 창간 10주년을 맞이했다. 홈페이지를 개편해 기사 접근성을 높이고 독자 확대를 통한 재정 안정화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2023년 9월 현재 114호까지 발간된 탈핵신문 독자모임이 대전, 울산, 부산, 경주, 대구, 청주, 광주 등에서 진행 중이다. 2022년 5월 탈핵신문은 '탈핵신문 읽기모임을 시작하세요'라는 공지를 올렸다. 독자모임 후기나 인증샷을 올리면 다과비 5만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벼룩의 간'이라도 내어줄 테니 탈핵신문이 널리 유용하게 활용되길 바라는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갑을 열고 개인 구독을 신청했다.

지난 6월 탈핵신문에서 제작한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실 10문 10답' 소책자가 탈핵신문 발간 이래 처음으로 흑자를 안겨줬다. 반핵의사회·탈핵신문 운영위원인 박찬호 선생님과 용석록 탈핵신문 편집장, 오하라씨가 의기투합해 만든 소책자가 1쇄 1만 부를 넘어 최종 4쇄까지 찍었다.


탈핵신문은 한국에서 탈핵이슈만을 다루는 유일무이의 신문이에요. 탈핵신문이 아니면 다뤄지지 않은 중요한 기사들이 있고, 앞으로도 탈핵신문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속해서 발행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요.


윤석열·기시다 정부의 핵발전 부흥정책


2023년 8월 현재 전 세계 32개국에서 총 410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인류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핑계로 핵발전을 사용하게 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났어요. 일본은 1965년 상업용 발전소로 도카이 핵발전소를 처음으로 가동한 이후 70~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했어요. 후쿠시마 사고 전까지 핵발전 부흥기였죠.


후쿠시마 사고 발생 당시 일본은 총 54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었다.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 핵발전소 보유국이었다. 태평양전쟁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되어 많은 사람이 비극을 겪었던 일본에서, 활성단층으로 지진이 빈발하는 일본이 기저 에너지원으로 핵발전소를 선택한 것은 핵재처리에 대한 열망을 피해 설명하기 어렵다.

1993년 시작해 31년간 건설, 중단을 반복하던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사용후핵연료재처리' 시설이 2024년 준공식을 할 예정이란다. '사용후핵연료재처리시설'은 핵발전소에서 다 쓴 핵연료봉을 가져다가 재처리해서 다시 쓸 수 있는 핵연료를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고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국제원자력기구(아래 IAEA) 그로시 사무총장이 7월 4~6일까지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마지막 날 일본 본섬 북쪽 끝 롯카쇼무라 핵재처리시설을 방문한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IAEA 헌장 제2조는 IAEA가 핵에너지 사용을 '촉진하고 확산하는' 진흥기관임을 명시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후 일본에서는 핵발전 확대 정책에 일정 정도 제동이 걸린 것처럼 보였어요. 핵발전소 반대 여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2013년 9월부터 약 2년에 걸쳐 실질적인 '핵발전소 가동 제로'를 경험하기도 했어요. 핵발전소가 멈추면서 핵발전 없이도 사는 삶을 경험한 거죠.


일본 정부는 핵발전소 재가동을 일정 정도 규제하는 기준을 만들었고 핵발전소의 수명을 40년으로 제한하는 법적 제도가 도입되어 노후핵발전소를 중심으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핵발전소 총 15기를 폐로했다. 그러나 오하라씨는 2023년 현재 일본 사회는 후쿠시마 핵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기시다 정부는 올해 4월, 핵발전 재가동과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은 'GX(그린트랜스포메이션)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어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탈탄소정책을 명분으로 내세워 또다시 핵발전 확대 정책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거죠.


GX법안의 핵심은 핵발전소 운전 기간 연장이다. 현행 '핵발전소 운전 40년 원칙(1회 20년 연장 가능)'은 유지하지만, 재가동을 위한 안전 심사나 법원 가처분 명령 등으로 정지된 기간을 40년에서 제외해 실질적으로 60년을 넘어서 가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세계적으로도 60년 넘도록 가동하는 핵발전소는 없다. 일본의 기존 핵발전소 내에서는 가동 후 40년 이내에서도 설비 열화에 의한 트러블이 상당수 일어나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는 경고가 심상치 않다.

"핵발전소를 60년 넘게 가동한다는 것은 인류에게 미지의 영역이며, 중대한 사고를 용인하는 정책"이라는 후지모토 야스나리 '원수폭(원자력수소폭탄)금지일본국민회의' 공동의장의 말이 머지않은 미래의 일 같아 걱정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각지에서 핵발전소 재가동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들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국 2023년 8월 현재까지 총 12기가 재가동했고, 허가받은 5기도 재가동을 준비 중이에요. 규제위원회 적합 기준 심사에 신청한 원자로가 10기나 되요.


일본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ISEP)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전력회사가 핵발전소의 안전 대책에 투입한 금액이 5조8912억 엔에 달한다. 2021년 발표된 일본의 제6차 에너지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20~22%까지 높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너지정책이 거꾸로 가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2023년 8월 현재 총 25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3기 신규핵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2021년 기준 8.29%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청정에너지와 탄소시장 분야에 관한 독립적 분석, 데이터, 뉴스를 제공하는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태양광발전 설치량은 연초 전망치에 20GW를 더해 340~360GW로 상향 조정됐다. 세계 태양광발전 수요가 빨라지면서 3~4년 후면 연간 500GW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93기의 핵발전소를 운영 하는 미국과 53기에 더해 신규핵발전소를 21기나 더 짓겠다는 중국이 전체 태양광발전 설치량의 50%를 차지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2022년 중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30.7%로 핵발전 비중 4.7%보다 훨씬 많다.

핵산업 진흥을 목표로 윤석열 정부는 올해 1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30.2%(185.2TWh)에서 21.6%(134.1TWh)로 대폭 낮췄다.

10차 전력기본계획을 발표한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11차 전력기본계획을 수립해 노후핵발전소 18기 수명연장과 신규핵발전소 추진 등으로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32.4%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한·일 양국의 핵진흥정책은 재생에너지의 진척을 저해하는 요인임이 분명하다.


후쿠시마는 핵부흥을 위한 전시장


후쿠시마는 복섬(福島)이라는 뜻이다. 벚꽃이 흐르러지게 피고, 어장은 풍부했고, 땅은 기름졌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전쟁이 아닌 사고로 16만 명이 피난하는 사례가 있을까?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긴급 사태 선언을 해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핵발전소 내부상황이 아직도 끔찍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에요.


녹아내린 핵연료(데브리)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격납용기를 지탱하는 페데스탈이 위태롭기 짝이 없는 1호기 격납건물 붕괴도 걱정이다. 3·4호기 건물 상부의 사용후핵연료 2101개는 수조에서 꺼내기가 완료되었지만 1호기 392개, 2호기 615개는 아직도 건물 상단 수조에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진도 6강의 지진이 다시 일어나면 격납건물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후쿠시마 앞바다는 여전히 크고 작은 지진이 이어지고 있다.


후쿠시마 부흥을 기치로 내건 일본 정부는 광대한 삼림지대와 들판은 그대로 둔 채 생활공간만 오염된 흙을 긁어내고 새로운 흙을 덮는 방식의 제염작업을 마치고 피폭량이 연간 20mSv(밀리시버트)라며 주민의 귀환을 촉구하고 있어요.


방사선과 핵을 이용하는 조업자, 사업소 경계의 주민들의 허용치도 연간 1mSv(밀리시버트)가 넘지 않는데 귀환자들에게 20배의 피폭량은 어떤 근거로 괜찮다는 것일까? 연간 20mSv(밀리시버트)라는 허용량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긴급 시 피폭에서의 허용량이지, 사고 이후 피난과 해제에 관한 방사선량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피난민들의 귀환을 촉진하기 위해 주택지원이나 생활지원금을 끊으며 귀환을 재촉했지만 사고 당시, 11개 시정촌에서 피난한 8만8000명 중 1만6000여 명이 귀환 해 귀환율은 18%에 그쳤다. 아동과 학생의 수는 과거에 비하면 10% 미만이다.

후쿠시마 부흥은 핵발전 진흥의 바로미터이다. 그러니 핵사고는 재건 가능하고 나아가 부흥할 수 있음을 전시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근처로 이사하면 최대 한화 2천만 원이 넘는 돈을 지원한다고 9월 13일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주변의 12개 지방자치단체로 이사하는 이들에게 가구당 최대 200만 엔(약 1823만 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단 이주 후 5년 이상 거주하고 취업 등을 해야 한다. 이주 후 5년 이내 창업하면 400만 엔(약 3647만 원)내에서 75%의 경비를 지급한다. 피난민들보다 가난하고 돈이 급한 사람들이 후쿠시마 귀환자 대열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부흥이라는 명분으로 전혀 다른 도시를 꿈꾸고 있어요. 미국 워싱턴주에 위치한 도시 핸퍼드(Hanford)가 모델이에요.


후쿠시마 이노베이션 코스트


핸퍼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을 생산하던 지역이다. 인류 최초의 핵무기가 제조된 맨해튼 프로젝트의 산실이기도 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8기의 원자로를 더 지어 핵실험을 위한 핵무기 제조를 계속했다. 핸퍼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방사능 폐기물 저장고가 되었고 노후 저장탱크에서 흘러나온 액체와 기체 방사능물질로 직원과 주민들은 사고와 암, 백혈병 등에 시달리고 사망이 속출했다.


핸퍼드는 이후 군사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을 유치해 지역을 되살렸다고 홍보하고 있어요.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로 인구도 증가했어요. 기반은 군수산업이에요. 핸퍼드 같은 군사도시를 모델로 가짜 후쿠시마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가장 위험한 지역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보이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가장 큰 문제에요.


'후쿠시마 이노베이션 코스트구상'이란 핵발전 사고로 막대한 피해를 받은 지역의 재생 프로젝트다. 후쿠시마현 태평양 해안가 지역인 하마도리를 중심으로 15개 기초자치단체에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폐로 산업, 최첨단 기술, 연구단지 등을 모아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후쿠시마 부흥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각종 기술개발 사업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본 군사 기술개발과 산업육성에 깊이 연결돼 있다는 것이 문제예요. 예를 들어 각종 재해와 관련된 대책이나 인프라 설비 구축을 위한 로봇 개발이 진행되는 '후쿠시마 로봇 테스트 필드'에서는 육·해·공 로봇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요. 일본 경제산업성과 미국 국방부 공동으로 재해 대응 로봇 공동 연구를 하는 거고, 단순 산업단지가 아니라고 봅니다.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후쿠시마를 경제적 부흥으로 몰아붙이며 핵산업 부흥을 군사전략과 연계하려는 일본의 속내가 뻔히 보인다고 말하는 오하라씨는 '부흥'이라는 오염된 단어 앞에 걱정이 깊어진다.


한빛 1·2호기 수명연장 막아야죠


▲  지난 8월 25일 영광예술의전당 앞에서 열린 한빛 1·2호기 수명연장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오하라 씨  ⓒ 오하라 츠나키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한빛핵발전소 수명연장 반대 광주·전남 1만인 서명운동'을 했어요. 광주전남에서 1만 명 서명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론이 예전 같지 않더라고요.


2016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6개월 동안 진행한 '잘가라 핵발전소 10만인 서명운동'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오하라씨는 광주전남행동 회원들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기아자동차, 금호타이어 등 현장을 찾아다니며 '한빛 1·2호기 수명연장 반대' 서명을 받았다. 1만 명 목표치를 훌쩍 넘은 1만4392명의 서명지를 지난 1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다.

서명운동을 계기로 연대단체들과의 관계도 단단해졌다. 28개 광주전남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광주전남행동은 2월 9일 열린 2023년 총회에서 한빛 1·2호기 수명연장 반대,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 대응, 탈핵학교 개최, 방사능방재 지도 만들기 등 각종 탈핵 현안에 대처하기로 결의했다.


핵발전 진흥을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고리 2·3·4호기에 이어 지난 6월 한빛 1·2호기 수명연장을 결정하면서 영광뿐 아니라 호남권 탈핵 운동에도 빨간불이 켜졌어요.


윤석열 정부는 취임 첫해인 2022년 12월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현 정부 임기 내 수명연장 심사가 가능했던 10기 핵발전소 외에도 8기(2차 수명연장 포함)의 수명연장의 길을 열어놓았다.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차례로 멈춰 설 예정으로 수명연장 절차를 밟기에는 늦어버린 고리 3·4호기, 한빛 1·2호기와 심지어 지난 2023년 4월 수명이 다해 멈춰 선 고리2호기까지 수명연장 대상에 올려놓았다.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위해서는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제38조, '원자력안전법 시행규칙' 21조, '국내외 최신 운전경험 및 연구결과를 반영한 기술기준을 활용하여 안전성을 평가'하고 '운영허가 이후 변화된 자연환경 및 부지특성 등을 반영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또한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중대사고 시나리오를 반영해 주민피해, 건강영향, 보상대책 등을 포함한 사고관리계획서가 승인되어야 한다. 운영 기간만큼 늘어나는 핵폐기물 처리를 위한 방안도 고려되어야 한다.

안전 심사와 설비개선 등 수명연장과 재가동을 위한 각종 심사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3~4년이 걸린다. 2025년 재가동을 목표로 한 고리2호기 수명연장의 졸속처리는 기본값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부산·울산 지역주민들이 고리2호기 수명연장이 중대사고에 대한 심사도 없고 최신기술 반영도 미흡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는 사실상 묵살된 듯하다.

고리2호기 수명·위험연장은 한빛 1·2호기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빛 1·2호기는 다수의 사건, 사고 기록과 격납건물 철판 부식과 공극으로 '중대사고 발생 위험이 가장 큰 핵발전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의 노후핵발전소 수명을 연장 방침에 따라 한수원은 지난 6월 이사회의에서 한빛 1·2호기 수명연장을 결의했고 첫 절차로 '주기적 안전성평가보고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 제출했다.

한빛핵발전소 방사선비상계획구역 28~30km 안에 위치한 지자체는 전남 영광·무안·함평·장성, 전북 고창·부안 등 전남·북 6개 지역이다. 8월 25일 한수원은 방사선비상구역 지자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설명회를 시작했다.


한빛1호기는 2025년 12월, 2호기는 2026년 9월 수명연장 만료될 예정이에요. 예정대로 수명을 종료해야죠. 핵발전소를 하나, 하나 꺼나가는 과정이 탈핵운동라고 생각해요. 한빛 1·2호기 수명연장은 반드시 막아야 해요.


핵을 넘어 생명과 평화의 아시아로

▲  9월 22일 ‘2023 반핵아시아포럼’ 참가자들이 월성핵발전소 앞에서 9년째 ‘이주대책 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장을 찾아 ‘핵없는 세상’을 외치고 있다.ⓒ 반핵아시아포럼


지난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대만, 베트남, 인도, 일본, 한국, 태국, 튀르키예, 필리핀 등 8개국 탈핵 활동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부산-울산-경주·삼척 등지에서 '2023 반핵아시아포럼(NNAF, No Nukes Asia Forum)'이 열렸다.

핵무기와 핵발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손잡은 아시아 사람들의 네트워크 '반핵아시아포럼'은 자국 내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한계에 다다른 일본 핵산업계가 아시아 각국에 핵발전소 수출로 물꼬를 트기 위한 국제연대를 강화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아시아 탈핵단체들이 국제연대활동을 제안하면서 시작된다.

1993년 6월 26~7월 4일까지 일본에서 열린 1차 반핵아시아포럼은 8개국 30명이 참가해 핵발전소 현지 및 주변 도시 총 28곳에서 집회를 열었다. 1994년 한국에서 열린 2차 반핵아시아포럼에 36명의 일본 활동가들이 참여해 영광·고리·울진 등 핵발전소 투쟁 현장과 핵폐기장 저지에 성공한 고성, 청하 등지에서 어민, 농민들과 집회를 열었다. 2차 포럼 직후 한국사회에는 '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반핵운동본부'가 결성됐다.

반핵아시아포럼 홈페이지에는 반핵아시아포럼 30년의 역사가 정리되어 있다. 오하라씨가 한국어로 번역한 '반핵아시아포럼 30년사'는 대만 제4핵발전소, 필리핀 바탄핵발전소, 인도 쿠단툴람핵발전소, 인도네시아 무리아핵발전소, 태국 온카락연구로, 튀르키예 시놉핵발전소 저지투쟁과 일본, 한국의 다이나믹한 탈핵운동까지 아시아 탈핵운동과 국제연대가 이뤄낸 감동의 역사를 담아냈다.

일본에 있는 '반핵아시아포럼' 사무국은 아시아 각국의 탈핵운동을 공유하는 소식지를 매월 발행하고 오하라 씨는 한국 탈핵운동을 소개하며 한·일탈핵운동의 소통자로 역할하고 있다. 30주년을 맞은 '2023 반핵아시아포럼' 외국 참가자 29명과 5박 6일 전 과정을 함께 한 오하라씨에게 소회를 물었다.


일본 사무국을 맡은 사토 다이스케씨가 늘 하시는 말이지만 '반핵아시아포럼'의 정신은 현장을 기반으로 한 연대이자 교류입니다. 30년 동안 아시아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오랜 기다림 끝에 4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반핵아시아포럼이 또 새로운 연대와 활동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5박 6일 동안 진행된 포럼은 호시탐탐 핵발전을 추진하려는 세력에 꾸준히 맞선 온 태국, 베트남, 튀르키예, 필리핀 등 아시아 민중들의 탈핵투쟁이 소개됐다. 특히 2025년 5월 마침내 핵발전 제로, 탈핵에 도달하는 대만 사례와 21기의 핵발전을 운영하면서도 20기의 신규핵발전소 건설계획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도 탈핵운동 여성리더쉽에 대한 이야기로 감동을 더했다. 또한 핵발전 부흥 정권에 맞선 한국과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수명연장·재가동·고준위핵폐기물 반대 투쟁과 핵발전과 핵무기가 한뿌리라는 것을 일깨워 준 핵무기와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의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저는 주로 일본 참가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월성핵발전소 앞에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황분희님과 주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또한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갑상선암공동소송에 대한 관심도 높았어요. 핵발전소 반경 10km 내에 5년 이상 거주하는 주민 618명이 2015년에 제기한 갑상선암 공동소송은 2022년 1심에 이어 지난 23년 8월 2심에서도 패소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소아갑상선암에 걸린 사람들이 도쿄전력을 상대로 소송 중입니다. 일본 참가자로부터 핵발전과 저선량 피폭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활동에 힘을 모으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어요. 3번 싸워 모두 이긴 삼척원전백재화기념탑 앞에서 체르노빌 사고로 희생된 뭇 생명을 기리는 엘름댄스도 큰 울림을 주었어요.


아시아 각국의 지난한 핵발전소 저지 투쟁의 배경은 국내에 핵발전소 추가건설이 어려워진 한국과 일본이 핵발전 기술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오하라씨는 그래서 더욱 반핵아시아포럼이 강고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소형모듈형 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 개발도 마찬가지예요. 소형모듈형 원자로는 말 그대로 작은 원자로를 모아서 300MW 미만의 원자로를 만든다는 거예요. 국제 핵마피아들이 SMR을 위험도, 핵폐기물, 불평등 등 기존 핵발전이 가지는 문제점을 모두 극복한 새로운 기술인 양 위장하면서 국제적 연대를 공고히 하고 있어요. 이런 움직임에 단호하게 대항하기 위한 아시아 민중들의 연대가 더욱 필요한 시기입니다.


미국 핵폭탄 개발부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까지


5년 동안 윤종호, 오하라 츠나키, 박찬호 선생님이 번역한 <방사선 피폭의 역사> 번역서가 2020년 3월 11일 출간됐다. <방사선 피폭의 역사>는 미국 원자력폭탄 개발의 역사부터 핵산업계가 방사선 영향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핵 개발을 추진해온 속임수의 역사를 담아낸 책이다.

공학자인 나카가와 야쓰오 박사가 병석에 누워서까지 검토하고 보완해 그의 사후 1991년 일본에서 출간된 <방사선 피폭의 역사>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2011년 8월 증보판을 출판했다. 이 책의 번역기획은 2015년으로 거슬러 간다.


한국에서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의 갑상선암공동소송이 시작되었을 무렵, 당시 탈핵신문 편집국장이자 '핵없는세상을위한고창군민행동' 운영위원장인 윤종호씨의 제안으로 시작됐어요. 일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투하로 인해 저선량피폭에 대한 연구가 오래전부터 진행되었고, 체르노빌 핵사고 이후 반핵의 입장에서 분석한 책과 자료들도 많이 나왔어요.


이공계 관련 책이다 보니 전형적인 문과생인 오하라씨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윤종호씨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기 힘들었다.


1991년에 일본에서 발간되었으니 조금 오래된 책입니다. 체르노빌 핵사고를 계기로 쓰여진 책인데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일본 사회에서 다시 저선량피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1년에 증보판이 출판됐어요. 일본에서 방사선피폭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읽거나 읽지는 않더라도 들어본 적은 있는, 방사선피폭과 관련해서는 원서와 같은 책이에요.


이 책 1장 '서문을 대신해서'에서 저자는 "인류가 쌓아온 문명의 수준과 풍요로움의 기준은 항상 약자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이 책은 '핵'의 힘으로 세계를 장악하려는 지배자들이 여러 이해관계 세력들과 결탁하면서 피폭의 위험성을 은폐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그 피해를 강요해온 역사를 낱낱이 밝힌 책입니다. 피해자들은 항상 목소리를 내왔고, 작은 목소리가 모여 큰 목소리로 확대되어가는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죠. 피해자들의 운동을 뒷받침하는 용기 있고 정의로운 과학자들이 항상 존재했다는 것도 이 책을 번역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엘리스 스튜어트, 고프만, 탱플린, 스턴글라스, 버텔, 맨큐소 같은 과학자들이죠.


책을 번역하면서 "저자 나카가와 야스오씨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라는 오하라씨는 이 책에 숨어 있는 메시지처럼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계속 알아내고 싸워나가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행동하길 바란다.


일본사회와 후쿠시마를 더 알고 싶어요

▲  오하라 씨는 “핵산업계와 싸우기 위해서는 방사능피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 이태옥
한국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겠지만 저는 대학 다닐 때까지 경제대국 일본의 좋은 점을 보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 확실히 일본사회가 달려졌다고 느껴요. 일본 젊은이들이 활기가 없다고 하는데 그건 젊은 친구들 탓이 아닐 거예요. 후쿠시마 핵사고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사회 전반적인 우울과 포기라는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어요. 일본인인 저도 일본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핵발전소 지역과 도시에서의 탈핵운동 내용과 역할이 다를 수 있고, 사람에 따라, 지역마다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탈핵운동도 관점과 내용이 다를 수 있는데 상대에 대해 무심히 혹은 맹렬히 내뱉는 말들이 때론 상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후쿠시마는 죽음의 땅'이라는 말이 그렇고 '일본 사회가 늙었다는 말' 등이 대표적이다.


핵사고가 났어도 떠나지 못하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있잖아요. 죽음의 땅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해요. '주장'에 사람 또는 생명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운동으로서 가치가 있는 말인지 살펴봐야 해요. 일본사회가 초고령화 사회인데 당연히 사회운동 하는 분들도 나이가 들었잖아요. 오히려 평생 사회운동을 놓지 않고 늘 현장에 나타나는 분들이 더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사회가 늙었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마음이 좀 복잡해져요.


'후쿠시마 오염수 일본이나 먹어라' 같은 구호를 들었을 때 필자와 오하라씨의 감정의 간극이 얼마나 벌어졌을지 이제사 짐작이나마 해본다. 내가, 우리가 내뱉었던 주장과 구호에 혐오와 차별, 선정성은 없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마키우치 쇼헤이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경향신문 칼럼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서 후쿠시마 주민들에게는 이제 '분노'보다 '포기'의 감정이 지배적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12년 동안 피폭 걱정은 오로지 후쿠시마현 주민들만의 몫이었다"라는 그의 말이 마음의 빚이 되었다. 


후쿠시마를 더 다녀보려고요. 후쿠시마에 대한 객관적 사실, 진실 등을 한국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어요.


오하라씨가 전해줄 후쿠시마의 진실과 일본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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