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기장해수담수반대대책협의회 대표
기장해수담수화. 이 글을 읽을 당신에게도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용어들이 가득한 이슈이다. 동시에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2016년 3월 기장에 있었다. 고리 핵발전소와 겨우 11km 떨어진 취수장에서 바닷물을 담수로 바꿔 지역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에 주민들은 비판했고, 버티고 싸우다 그들은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안전하게 물을 마실 권리가 주민에게 있는지, 아니면 국가가 선택하고 진행할 사무이기만 한 건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7년 만에 다시 방문했던 기장은 변한 듯 변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탈핵 잇다’는 9월 20일 오전에 김용호 기장해수담수반대대책협의회 대표(이하 김용호)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 그를 만나 3시간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장해수담수화에 대한 자료나 기사, 논문은 많지 않아 먼저 그의 지난 십여 년의 싸움을 듣고 물었다. 왜, 어떻게 이 사업을 알게 되었고, 싸우게 되었을까. 2023년 한 해 동안 ‘탈핵 잇다’를 통해 만났던 다른 사람들의 삶과 싸움처럼, 결국 ‘포기하지 않고 지역에 남아 그는 무엇을 지키고, 여전히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를 고민하였다.
그는, 그들은 무엇과 싸워왔을까? 보이지 않는 위험과 싸워야 했고, 그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전문가 혹은 누군가의 목숨이나 안전을 경시해 온 과학·기술 만능주의와 싸워왔다. 또한, 안전한 물을 마시고 선택할 주민의 행복추구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해 온 비민주적이고 행정 편의적인 사업 관행과도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 싸움의 시작은 우연히 찾아왔다.
김용호는 저녁을 먹다 우연히 뉴스를 통해 해수담수화 시설이 곧 완공된다는 것과 이후 이 시설을 통해 지역에 물을 공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함께 밥을 먹던 사람들에게도 물어보았으나 누구도 알지 못했다. 만약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본다면 우리는 ‘판에 박히고 클리셰한 전개’라고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밀양 송전탑이 그랬고, 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들이 그랬듯이 대개 누군가의 힘겹고 외로운 싸움은 이렇게 시작되곤 하였다. 건강과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을 법한 사업을 주민 동의를 구하지 않고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추진하다 결과를 그저 ‘통보’하는 국가와 정부에 대한 비판과 반대, 그렇게 김용호들의 싸움도 시작되었다.
그전까지 어떤 형태로든 물을 공급하는 방식이 바뀐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정말 우연히 알게 됐죠. 저희 체육관 다니는 아이와 같은 아파트에 살아요. 하루는 그 아이 학부모와 같이 저녁을 먹다 뉴스(2014년 11월 21일)에서 기장 해수담수화시설이 2014년도에 완공되면 이 지역으로 물을 공급한다는 뉴스를 봤어요. 같이 밥을 먹던 학부모에게 저게 뭔지 아냐고 물어보니, 모른대요. 나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누가 저 사업을 허락해서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진행한 건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적어도 2-3년 뒤에는 그 오염수가 우리나라에 올 거로 생각했거든요. 심지어는 그 오염수를 언젠간 우리가 마시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업까지. 고리원전에서 11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의 바닷물을 담수로 바꿔서 우리한테 상의도 없이 먹으라고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죠. 너무 화도 나고 궁금한 것도 많아서 월요일에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에 전화를 했어요.
2008년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기장해수담수화 사업’이란 국비 823억 원, 시비 424억 원과 민자 706억 원 등 총 1,954억 원을 투입하여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하루 45,000t 규모의 수돗물을 생산하는 담수화 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부산광역시,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광주과학기술원, 두산중공업이 참여하였다. 이 사업은 노무현 정부에서 10대 중점사업(미래 신성장 산업 육성)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이명박 정부에서 최종사업으로 확정되었다. 당시, 여수와 부산이 경합하였으나, 여수가 포기하고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이하 상수도본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부산이 단독으로 선정되었다.
‘해수담수화’란 바닷물로부터 염분을 포함한 유해 물질을 제거하여 생활용수나 공업용수 등을 생산하는 과정을 뜻한다. 2010년도부터 4년에 걸쳐 공사하여 2014년에 완공된 이 사업의 목적은 낙동강 수질 악화와 수질오염 등을 대비한 대체 상수원을 확보하고, 원거리 공급체계를 개선하며, 무엇보다 미래 물 산업 메카 도시를 육성한다는 점이었다(강언주, 2016; 민은주, 2018 참고). 이처럼 사업의 목적이나 과정을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2008년에 계획되고 2010년에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여 2014년 완공되기까지 이 사업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주민은 거의 없었다.
2014년 11월 21일 저녁 뉴스를 통해 비로소 이 사업을 알게 된 김용호는 월요일에 상수도본부 관계자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월요일 오전에 상수도본부에 전화했는데, “주민들은 물 들어오는 걸 모르고 있던데. 후쿠시마 오염수도 그렇고 핵발전소도 여기 가까이에 있는데, 굳이 위험하게 해수를 담수로 바꿔 우리에게 왜 공급하려고 하냐”고 물어봤죠. 관계자는 언제부터 공사했고,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사업을 시작할 때도 우리한테 일언반구 얘기한 적 없고, 물을 공급하려는 순간에도 주민 대다수는 이것에 대해 잘 모른다. 근데, 왜 당신들이 이렇게 강요하듯이 시작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저보고 수요일에 어디 있냐고 물으면서, 저를 찾아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이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싶대요.
그러나 전화를 걸었던 김용호도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들을 만나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사업의 전문가들에 비하면 본인은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관장으로 해수담수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걱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전문가를 만나기 위해서 체육관 학부모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떤 식으로 물을 공급하겠다는 것인지 알아야만 전문가들에게 질문도 하고 그들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주어진 이틀이란 시간 동안 논문, 보고서를 찾아 읽었고 해당 내용이 있는 블로그를 찾아봤다.
해수담수화라는 게 정수기 시설과 굉장히 비슷해서, 역삼투압방식으로 필터링해서 물을 걸러낸다고 하는데. 문제는 역삼투압방식으로 인해 방사성물질을 걸러내는 정도가 논문마다 다르더라고요. 어떤 논문에서는 90%, 98%를 걸러낼 수 있다고 하는데, 100%가 아니니까 걱정이 됐죠. 또, 핵종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어떤 핵종은 80% 미만을 걸러낸다고 하고, 90% 이상도 있지만, 결국 위험물질을 100% 모두 걸러낸다는 논문은 못 찾았어요. 처음에는 ‘삼중수소’도 몰랐는데, 이 문제를 공부하다 보니 나중에는 삼중수소란 더 위험한 물질도 알게 됐죠. 블로그나 논문을 보면서 공부했고, 구체적으로 적혀있는 블로그에는 연락해서 궁금한 것도 많이 물어보면서 관계자와 만나 어떤 질문을 던질지 준비했죠.
그렇게 김용호는 자신의 전문 분야도 아닌 ‘해수담수화’, ‘역삼투압 방식’이 어느 정도의 방사성물질을 걸러내고, 주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기술인지 등을 공부하면서 전문가와의 만남을 준비했다. 수요일에 상수도본부 담당자와 방사능 관련 연구원 둘이 체육관을 방문했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김용호를 비롯한 서른 명이 넘는 지역주민이 모였다.
김용호는 그들에게 왜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는지,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에야 뉴스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되었는지 물었고, 상수도본부 담당자는 “설명회를 두 차례 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 했다는 설명회를 김용호가 알아보니 공사 중에 생긴 흙탕물에 대해 그 주변 해녀들이 항의해서 그 문제에 대해서만 설명한 정도였다. 김용호는 “그들은 ‘해수담수화’라는 사업이나 ‘물 공급’에 대한 공청회나 설명회는 한 번도 안 했고, 사실 해녀분들이 항의를 하지 않았다면, 그런 설명회조차도 안 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요?”라고 비판하였다.
두 번째로 김용호는 ‘역삼투압 방식’에 대해 질문했다. “내가 많은 논문을 읽어봤는데, 이 방식으로는 완벽하게 방사성물질을 걸러내는 것이 어렵다고 하더라. 99%까지 설명한 논문은 있지만, 그렇다면 1%의 핵종은 어떻게 되는 거냐”라고 물으니, 그들은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김용호는 “저선량이라도 내부 피폭이 되면 위험하다고 하더라. 극소량이라 할지라도 외부피폭보다 내부 피폭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데, 우리는 그러한 위험할 수도 있는 물을 마시는 거 아니냐.”라고 날이 선 질문을 다시 던졌다. 전문가들이 ‘안전하다’라고 말하는 근거는 과학이라기보다는 신화 혹은 허구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이어 김용호는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하였는데, 특히 그 글을 작성했던 블로거와 연락해서 알게 된 ‘스트론튬-90(스트론튬(Strontium)은 원자번호 38번, 원소기호는 Sr로 자연에 존재하는 스트론튬은 크게 위험하지 않고, 뼈 성장을 촉진하며 골밀도를 증가시켜 스트론튬 화합물이 식품 보조제와 골다공증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산업용 화학물질로도 다양하게 활용되기도 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방사성 동위원소, 바로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핵분열에서 생성되는 스트론튬-90이다. 스트론튬-90은 인체에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 방사성핵종의 하나로 인체에 들어가면 칼슘과 함께 뼈에 모여 장기간에 걸쳐 장기를 상하게 한다. 스트론튬-90은 반감기가 28년 정도고 바다로 방출될 경우 해양 생물체에 쌓이게 된다. 그 수산물을 음식으로 섭취하게 되면 피폭(방사성 물질노출로 인한 피해를 입는 것)될 수 있다. 체내에서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몸 안에 쌓여 골수암과 백혈병과 같은 병에 걸릴 수 있고, 유전적 돌연변이 등 동식물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이라는 물질을 물어보았다.
연구원도 세슘, 라돈에 대해서는 설명했는데 방사성핵종 전부에 대해서는 잘 모른대요. 어떤 핵종이 그럼 핵발전소 부근 바다에 있냐고 물으니, 그것도 모른대요. 저는 “스트론튬-90이 특히 몸에 들어가면 뼈를 부식시켜서 위험한 방사능 핵종이라고 들었다. 그 물질에 대해 어떻게 검사를 하고 만약 있다면 어떻게 걸러낼 수 있는지 말해보라”라고 물으니, 그것도 설명을 못하더라고요.
김용호는 무엇하나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다시 물었다. “스트론튬-90이라는 방사성물질이 있는지를 검사하는 것 자체가 3개월에서 6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검사 자체도 우리나라에서는 두 군데 정도에서만 할 수 있고, 그 물질이 있는지 없는지 조사할 수 있는 전문가도 10명 미만밖에 없다는 데 이게 맞느냐”라고 물어보니, 처음에는 모른다고 하다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용호는 다시 “역삼투압방식으로는 스트론튬-90을 89%만 걸러내고, 나머지는 걸러낼 수 없다는 논문이 많은데. 그렇다면 10%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냥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물었다.
그때 분위기가, 부모들이 “미친 거 아니냐, 이게 말이 되냐”라면서 술렁이기 시작했어요. 이틀 공부한 저보다 전문가라는 저들이 사실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거죠. 처음에는 “전문가도 아닌 우리가 뭘 알겠어”라고 생각하면서 체육관에 오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나름 이틀 동안 밤새가면서 준비했는데, 그 질문들이 그분들이 잘 모르는 부분을 잘 찔렀던 것 같아요. 전 이분들이 제가 물어본 질문에 대답을 다 잘할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니까, 체육관이 술렁였던 거죠. 학부모들도 “이거 좀 문제가 있다, 이상하다”라고 느꼈고, 저도 오히려 전문가들이 아무 답을 못하니까, 더 걱정되었던 거죠.
보통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성’, ‘과학자다움’을 근거로 일반시민 혹은 주민들의 우려와 걱정을 그저 ‘기우’라고 여기거나 ‘괴담’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누가 전문가인가? 무엇을 전문성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건강과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이틀간 준비했던 김용호가 던진 질문에 ‘전문가들’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고, 오히려 불신만 키웠다. 주민들의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체육관에 온 다른 한 분도 질문을 던졌는데, ‘소석회’라는 물질이 있어요. 이 물질은 나쁜 걸 정화시키는 기능을 하는데. 그 물질을 역삼투압 방식의 마지막 단계인, 정화되기 직전에 넣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분이 ‘그걸 마지막에 넣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전문가들이 ‘미네랄을 첨가하기 위해 넣는다’고 했어요. 역삼투압 방식에선 모든 물질을 다 거르니, 미네랄이나 몸에 좋은 성분도 걸러내서 마지막 단계에 ‘소석회’를 넣어 다시 미네랄을 첨가한다고 말했어요. 근데, 보통 소석회는 처음 정수할 때에 넣지, 마지막에는 절대 안 넣는다고 해요. 보통은 소석회를 처음에 넣어서 부유물을 띄어서 걸러내기 위해 넣는 거지, 마지막에 넣는 건 해수담수화 시설에서 처음 시도하는 거라서, 그걸 우리가 마셔도 되는 건가 의문도 들었어요.
전문가가 다녀간 이후, 위험과 불안이 해결되고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아무것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그들, 전문가들과 해수담수화라는 기술에 대한 불신만 커졌다. 결국 전문가들은 김용호가 이틀 동안 공부하면서 궁금하고 걱정했던 것에 대해 아무것도 대답지 못했고, 오히려 ‘위험, 불안 그리고 전문성에 대한 불신’만 증폭시킨 것이다. 김용호는 전문가들과의 첫 만남이 어쩌면, 우리가 10년이 넘도록 싸우게 만든 그들의 첫 번째 실수이자 가장 큰 패착이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주민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대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을 시작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김용호가 논문과 기사를 찾아 읽으면서 보이지 않던 위험들을 알아가면서 싸움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6살 된 아이 때문이었다.
금정구에 살다가 기장군으로 이사 와서 체육관을 운영했어요. 근데, 제 아이는 부모인 나를 따라 이곳에 와서 위험한 물을 마시게 되는 거잖아요. 만약 제가 해운대에 살았다면, 제가 만약 그곳에서 일했다면 아무런 걱정 없이 물을 마시며 건강하게 살았겠죠. 저는 하필 제가 기장에 왔고, 기장군이 해수담수를 제공하기 때문에 꼼짝없이 그 물을 마셔야 하는 저의 아이가 가장 걱정되고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제 가족, 제 아이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아이와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공부할수록, 김용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들을 하나둘씩 알아갔다. 처음에는 스트론튬-90을 그리고 역삼투압으로는 걸러낼 수 없는 또 다른 방사성핵종인 삼중수소라는 물질 또한 알게 되었다.
삼중수소는 2-3대에 걸쳐 장기적으로 영향이 나온다고 하니까, 걱정되는 거죠. 물론 누군가는 ‘막연한 불안함’이라고 말하면서 호들갑 떠는 것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우리가 매일 먹고 마셔야 할 물로 인해 내 아이의 유전자가 변형되거나 손상될 경우, 그런 변화와 위험은 한순간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잖아요. 갑자기 서서히 나타날 경우를 대비해서 ‘조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거죠.
김용호의 걱정과 불안은 자신의 가족과 아이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사실 기장이 고향이 아닌 그가 기장으로 이사 온 것처럼, 김용호는 다시 안전한 곳으로 이사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당장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기장을 떠나기보단 남아서 싸우는 것을 택했다.
사실 저야 다시 안전한 곳으로 이사 가면 그만인데. 체육관 아이들이 눈에 밟혔던 거죠. 내 자식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잖아요. 그 아이들을 두고 내 몸이 떠난들 나는 괜찮을까, 교육자로서 양심에 대해 고민했죠. 제가 이 아이들한테 뭐라고 했냐면. “관장님이 이 싸움이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다. 이 싸움을 내가 이길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무 큰 공기업, 대기업과 싸워야 하니까. 하지만, 싸우다 싸우다 싸우다 끝까지 한 번 해볼게, 그런데 도저히 안 된다고 하면 여기서 떠나는 게 제일 좋은 거 아니겠나”라고 말을 했는데, 아이들이 학부모들에게도 얘기했나 봐요. 그래서 그분들이 제 말을 진정성 있게 생각한 것 같고요. 그 이후에 저희가 정보도 교류하려고 만든 밴드에 많은 주민들이 가입하면서 싸움도 진행이 됐죠.
2006년 12월, 건설교통부는 미래 가치를 창출할 국가 10대 전략 산업의 하나로 해수담수화를 선정하고 광주과학기술원에 해수담수화 플랜트사업을 발족시켰다. 부산시, 광주과학기술원, 국토교통부 그리고 두산중공업 등이 참여한 사업단은 기존 열을 이용한 증발식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역삼투압 방식의 해수담수화 신기술을 개발하고 테스트베드(실증단지)를 만들어 세계 물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중동의 기업 혹은 국가들이 실제 이곳을 방문하여 시설이 어떻게 가동되는지에 대한 샘플이 필요했고, 원활한 수출을 위한 테스트베드로서 이 사업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4년 11월 시설이 완공될 즈음 부산시는 기장해수담수화 시설의 담수를 해운대 송정동과 ‘기장군 일부 지역’에 수돗물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장군은 철마면, 기장읍, 정관읍, 일광읍, 장안읍 등 4읍 1면으로 이루어졌으며 2023년 10월 기준으로 총 179,08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기장군 홈페이지 참고). 그러나 김용호는 기장군에서 수돗물이 공급되는 곳은 전체가 아니라 세 개 읍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철마면과 정관읍은 제외’되었다고 말했다. 철마는 따로 물을 공급하는 곳이 있지만, 정관은 보다 정치적인 이유로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정관은 81,933명으로 전체 기장군 인구의 절반 정도가 살며 젊은 층이 사는 ‘신도시’로 ‘건드리면 안 되는 지역’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즉, 인구도 적고 주민의 연령층이 높은 기장, 일광, 장안읍에만 위험한 물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지역 안에서도 불평등한 처사라고 비판하였다.
우리는 마루타가 아니다. 우리를 실험에 쓰지 말라고 말했어요. 찾아보니 해수담수시설은 국내에서는 섬에만 주로 설치해서 활용하고 있고, 육지는 여기 기장에만 유일해요. 물론 이곳은 낙동강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굉장히 멀고 관도 낡은 것도 사실이에요. 이해는 하는데, 우리가 납부하는 수도요금으로 취배수관 관리를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게다가 기장군 안에서도 공급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누는 것도 너무 불평등하잖아요.
김용호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2008년 처음 계획했을 당시, 기장에서 11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고리 핵발전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사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며, 특히 “고리핵발전소는 1급 기밀시설이라서, 얼마나 많은 기체, 액체 방사성물질이 배출되는지, 어떤 핵종이 포함되는지에 대한 정보도 받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주민들이 ‘보이지 않는 위험’을 말하며 불안하다고 말할 때마다, 군과 상수도본부는 “보험을 들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거나, “스트론튬-90에 의해 이상이 생기면 그 인과관계를 주민들이 입증해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주민들을 안심시키기보다는 더욱 분노하게 했다.
물론 같이 싸우는 주민 안에서도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니, ‘그냥 위험한 물 먹지 말자’ 정도로 단순하게 말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사안을 주민들이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위험한 물 먹기 싫다”. 뭐 이렇게만 주장하면 되지 않겠냐는 거였죠. 물론 그것도 좋은 싸움의 방식이 될 수 있죠. 근데 저는, 내가 잘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주민 대표로서 내가 잘 모르고 아무런 반박도 못 하면 전문가는커녕 주민들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나는 내가 더 잘 알고, 모르더라도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했죠. 특히 주민들과 만든 단체의 대표이기도 했으니, 제 전공이 아니었지만 죽기살기로 공부했어요.
‘공부하는 주민’과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하는 전문가’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2015년 12월 다시 한번 수돗물을 강제로 공급하겠다는 ‘통보’를 통해 더욱 극한으로 치달았다. 김용호가 처음 기장해수담수화 사업을 뉴스를 통해 알았던 것처럼, 해수담수화를 다음 주부터 통수(공급)하겠다는 것도 뉴스를 통해 들었다. 어디에도 소통과 협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날인가 전전날에 수도관을 청소했는데, 우리가 청소를 못 하게 하면서 싸웠어요. 수도관을 청소한다는 건 곧 물을 공급하겠다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근데 정말 금요일 오후(2015년 12월 4일)에 다음 주 월요일(12월 7일)부터 물을 공급하겠다는 뉴스가 떴어요. 뉴스를 확인하고 나서 후, 저는 급하게 부산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의원장한테 전화를 했어요. 근데, 2015년 상수도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상황에서, 상수도본부는 그냥 강행하겠다고 뉴스를 내보낸 거죠. 예결위 의원장은 모든 기장군 시의원을 오라고 해서 또 난리가 났어요. “왜, 우리 예산안이 결정이 안 난 상황인데, 이건 우리를 무시하는 거 아니냐.”라는 거죠. 그래서 실제로 예산을 삭감시켰어요. 상수도본부가 아예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예산을 반토막 냈던 거죠.
주민 동의나 상의 없는 사업의 강행은 주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고, 200여 명의 주민은 군청을 방문하여 군수에게 “왜 먹기 싫다는 걸 자꾸 먹으라고 하냐.”, “기습적인 통수 결정을 막아달라”고 전달했다. 그러나 군수는 “검토하겠다.”라는 말만을 되풀이하였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 등교 거부를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자는 말이 나왔다. 통수하겠다고 말한 12월 7일 월요일, 1,000여 명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고 300명이 넘는 기장 주민들은 버스를 동원하여 시청을 방문하여 항의하였다.
당시 등교 거부는 정말 큰 결심 없이는 할 수 없었어요. 이 사업을 갑자기 뉴스를 통해 알게 된 것처럼, 저희의 질문이나 불안 무엇하나 해소하지 못한 그들은 다시 ‘통수’를 통보한 거잖아요. 그거에 대해 저를 포함한 주민들이 정말 분노를 많이 했죠. 정말,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분노이자 결의’라는 의미로 등교 거부를 하게 되었어요. 우리 동의 없이, 우리와 아이들에게 강제로 위험한 물을 먹이면 우리는 무엇이라도 할 각오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거죠.
등교 거부와 시청을 항의·점검한 이후 부산시는 해수담수를 공급하겠다는 통수 결정을 잠정적으로 연기하였다. 주민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추운 겨울임에도 촛불집회와 피케팅을 통해 해수담수 공급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위험한지를 알려 나갔다.
부산시가 깜짝 예고했던 강제적인 물 공급은 예산이 반 토막이 나고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결국 통수하겠다는 결정을 연기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해수담수 공급의 문제는 정부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장주민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주민투표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2015년 12월 18일, 기장군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주민투표 결의안을 채택했고, 주민들은 부산시에 ‘주민투표대표자증명서 교부신청’을 했다. 하지만 부산시는 수돗물을 공급하는 것은 국가주도의 사업이자 권한이기 때문에 부산시에 권한이 없다며 주민투표를 사실상 거부하였다. 기장군수와 부산시장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 주민들은 ‘민간주도의 주민투표’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리하는 명부를 받지 못했기에 ‘기장해수담수공급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약 2만여 명의 인명부서명을 직접 받았다.
주민투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수도사업본부와 이 사업을 지지하는 주민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2016년 3월 19일 주민투표를 했다. 총 유권자 59,931명의 26.7%인 16,014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89.3%(14,308명)의 주민이 공급을 반대하였다.
기장해수담수화 문제는 방사능물질이 있는지 없는지,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만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물론, 그렇게 공급되는 물이 얼마나 안전한지도 중요하죠. 그러나 저희에게는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데 그걸 강제로 우리에게 공급하겠다는 시와 상수도본부의 비민주적인 태도와 방식이 더 큰 문제였죠. 그걸 주민투표를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많은 주민이 우려하고 반대하고 있다, 강제적으로 공급하지 말라는 것을요.
그러나 주민투표 이후에도 부산시와 상수도본부는 주민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외면하였고, 오히려 해수담수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기장해수담수화 수돗물 순수365’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부산시에서 개최되는 각종 회의와 행사, 축제에 2015년부터 2016년 4월까지 총 76만728개를 배포하였다. 기장멸치축제를 비롯한 각종 축제와 체육대회, 마라톤대회, 무료급식소와 청소년캠프까지 다양했고, 시음행사까지 진행했다(부산녹색당 논평 참고). 그러나 2017년 4월 부산고등법원은 “담수화시설 건설사업을 통해 부산 기장군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사업은 자치사무에 해당하고 수돗물 공급에 관한 사항은 주민의 건강과 위생에 직결된 문제"라며 "담수화 수돗물 공급사업이 국가사무로서 주민투표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민투표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 교부신청을 거부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설령 담수화시설 건설사업에 따라 담수화 수돗물을 공급하는 일이 국가와 지자체 공동사무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주민들이 스스로 마실 물을 선택할 자유는 헌법 제 10조에 규정된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라며 "지방자치법과 주민투표법은 주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자체의 주요 결정사항을 주민투표 대상으로 하면서도 예외적으로 국가의 권한과 사무에 속하는 사항을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은 주민투표제도 취지와 기본권 보장, 절차권 보장 측면에서 볼 때 주민투표 대상이 맞다"라고 밝혔다(머니투데이, 2017-04-27 참고). 즉, 마실 물을 선택하는 것은 국가와 지자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행복추구권’, 즉 건강하고 안전한 물을 선택할 권리라는 점이었다.
2016년 12월 19일,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은 ‘수돗물 선택제’를 강조하며, “기장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에 따른 주민 간 갈등을 해소하고 물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민의 의사에 따라 원하는 주민에게 해수담수화 수돗물을 공급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사업비 93억 원을 들여 기장읍, 장안읍, 일관면에 해수담수화 수돗물 전용관로(9.7km)도 설치하였다. 그러나 2017년 11월 5일, ‘수돗물 선택제’를 발표한 지 1년이 되어서도 신청한 마을이나 상업시설은 단 한 곳도 없었다(서울경제, 2016-12-19; 뉴스1, 2017-11-05 참고). 이에 대해 김용호는 “부산시가 안전에 대한 주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권을 강조하고 인센티브를 주면서 해수담수를 공급하려던 계획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기장해수담수화 사업의 목적은 계속해서 바뀌면서 표류하기 시작한다. 수돗물 선택제에 이어 식수 공급이 아닌 ‘공업 용수’로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는데, 군 내 장안산단과 명례산단 등 산업단지와 고리 핵발전소 등 다량의 물이 필요한 곳을 대상으로 해수담수를 공업용수로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노동자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공업용수로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어떤 전문가들은 그게 더 위험할 수도 있대요. 공업용수는 기계를 식히거나, 정제하거나. 식힐 때 사용할 텐데, 이때 나오는 증기가 공장이나 지역에 퍼져서 일종의 방사능 비를 내리면 전 지역 자체가 초토화될 수도 있다는 거였죠. 그렇게되면 광범위한 방사능 피폭이 될 수 있고, 농수산물에도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산단 쪽에서 난리가 난 거예요. 노조에서 반발을 하고 비판하는 기자회견도 열었죠.
고리 핵발전소에도 냉각수 등 다량의 물이 필요하니 공급하겠다고 했으나, 공업용수로 쓰기에 비싸 성공하지 못했고, 부산이 아닌 울산공단에 수요가 있다면 공급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마저도 지역노동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결국 ‘물 공급’을 위해 목적과 이유를 뒤늦게 만들고 바꾸려던 계획은 주민, 산업단지, 핵발전소 등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주민의 동의 없이 밀어붙이다 실패한 ‘묻지마 유치 사업’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2014년 시작된 싸움도 10년이 지났다. 결국 김용호들은 위험한 물의 공급을 막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물론, 최근 부산시는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기장해수담수화 시설의 활용방안’을 다시금 고민하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기장해수담수시설 재추진에 ‘식수공급’을 포함시킨 부산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도 2023년 6월에 진행했다. ‘건강하고 안전한 물을 마시기 위한’ 10여 년의 싸움이 끝난 듯, 끝나지 않았지만 김용호는 긴 시간의 싸움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었다.
사실 전업운동가가 아닌 일반 주민으로서 활동하고 싸우다 보니 힘든 점도 많았어요. 여기는 제가 가르치고 일해야 하는 곳인데, 제가 한 번씩 시간을 못 지키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도 많았거든요. 저녁 시간이 체육관은 가장 바쁜데, 그때 상수도본부나 군수와 대면이 있을 때 전 대표로서 무조건 나갔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제 활동에 대해서는 이해는 하지만, 정작 관장으로서는 체육관을 등한시 한다는 말도 퍼지고, ‘이제 체육관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더라, 처음부터 다른 체육관 생각했다’라는 말에 더 힘이 빠지기도 했어요. 또 누군가는 내가 마치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 싸움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거든요. 그저 내 아이, 이 지역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나 사람들을 위해 질문하고, 싸우고 공부해왔던 것인데. 어떻게 보면 지난 10년 간의 싸움은 참 허탈하고 힘들고, 또 제 개인적으로는 무너져내린 부분도 많았던 것 같아요. 물론 후회하진 않지만 회의하게 되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아무나 이렇게 싸우는 게 아닌가 봐요.
힘들고, 개인적으로 오해도 받아 왔던 10여 년간의 싸움이지만, 머리가 아닌 몸으로 위험에 다가섰기에 길고 힘든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김용호는 “깨끗하고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모두 똑같잖아요.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시설을 반대하는 우리를 사회에서는 ‘님비(Nimby)’라거나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것이 맞는 건가요? 저는, 오히려 서울이나 수도권 등 위험하고 더러운 시설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님비’고 깨끗한 곳에서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만약, 어떤 시약을 떨어트렸을 때 방사능이 이 물(샘플)에 있는지 없는지 나타나면, 그런 약품이 나온다면 제가 지금 싸우고 있는 것이 모순이 될 수 있겠죠. 아니면 제가 반대하고 질문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이 속 시원히 해결하고 답할 수 있었습니까? 그랬다면 저도 잘 모르는 문제들을 공부하고 어려운 논문들을 읽진 않았을 겁니다. 근데, 방사능 자체가 무색, 무미, 무취잖아요. 겉으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저희 들은 최소한 우리의 안전과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던 것이에요. 근데 그러한 안전 혹은 위험을 미리 알아채거나 담보할 수 있는 기술이 전혀 없고, 그냥 ‘믿으라고만 하잖아요’ 그게 과학인가요, 미신인가요.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공부할수록 그 위험과 불안, 문제들이 하나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올가 쿠친스카야(2014)는 ‘비가시성의 정치학(the politics of invisibility)’이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체르노빌 사고 이후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위험과 함께 살아가고, 싸우는 사람들을 기록했다. 그는 위험을 드러내고 사회에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은, 방사성물질을 비롯한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위험’과도 싸워야 하지만, 자신들의 목소리와 싸움을 다시금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드는’ 과학자, 전문가, 정부 집단과 싸우는 등 이중의 비가시화(double insivible)와 싸워왔다고 말했다.
김용호들의 싸움도 그랬다. 지난 10여 년,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이나 위험과 싸워야 했던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그들의 불안과 질문을 과학과 전문성의 이름으로 ‘괴담’, ‘무지’ 혹은 ‘기우’로 여기는 사람들과 싸워야 했고,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관심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목소리를 내며 이 문제를 알려 나가야 했다. 그들의 싸움을 우리는 이중, 삼중의 비가시화된 위험들과 싸우며 ‘건강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권리’를 쟁취한 사람들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