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살이1 '옷 순환 어플 사용기'
내 통장으로 5,742원이 입금됐다. 옷들을 정리한 뒤 들어온 돈이다.
얼마전 새 옷이 도착하니 비좁아 터져나가게 생긴 옷장을 정리해야 했다. 5년 전부터 새 옷을 안 사 입는데 새 옷이 도착했다니?
실은 나와 체형이 비슷한 남도 사는 친한 후배가 옷장을 털어 괜찮은 옷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한두 계절이 지날 즈음 그에게 더는 필요치 않은 옷들, 하지만 상태가 괜찮은 옷들을 내게 보냈기 때문이다. 내게 건너오는 순간 그의 헌 옷은 나의 새 옷이 된다. 한 달 전 동네 친구도 언니들의 옷가지까지 모아 한 보따리 안겼다.
마른 체형의 친구는 내게 맞을 만한 것만 골랐으니 버리든 입든 알아서 하란다. 4계절 다양한 옷들로 구성된 옷 보따리를 열어 거울 앞에서 신나게 입어보고 계절별 아이템 15벌을 골라 옷장을 채우며 10여 벌의 옷가지들을 모아 동네 ‘초록의류함(의류수거함)’에 넣었다. 남도에서 올라온 겨울옷들까지 옷장에는 4계절 새 옷들로 다시 채워졌다.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묵혀왔던 헌 옷들을 골라 박스에 담으니 ‘초록의류함’에 공짜로 버리기엔 아까운 옷들이다.
‘초록의류함’ 옷들 중 5%만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아프리카, 동아시아, 남미 등 개발도상국 나라들로 수출된다. 무역을 가장해 옷 쓰레기를 떠 넘기는데 일조하는 셈은 아닐까. ‘초록의류함’에 옷을 욱여넣을 때마다 여물 대신 쓰레기 옷을 욱여넣고 우물거리는 아프리카 아크라의 소들이 떠올라 꺼림칙했었다.
얼마 전 미리 휴대폰에 다운로드하여두었던 의류순환 어플인 ‘리클’을 켜고 첫 거래를 튼다. (알아보니 ‘차란’ 등 의류순환 어플이 여럿 있었다.) 서울, 인천, 수도권은 직접 수거하고 그 외 지역은 택배 수거 체계이다. 직접 픽업하는 지역은 수거키트를 제공하지 않으니 박스나 큰 비닐에 담아서 문 앞에 두란다. 택배 수거를 신청하면 최대 40kg까지 넣을 수 있는 수거키트를 최대 3개까지 제공한다. 수거를 위한 최소양은 성인의류를 기준으로 모자, 가방, 신발 등 20개 품목 이상이다. 아이들 옷은 성인 옷 20벌 이상이 되면 추가할 수 있다.
계속 옷장 한편에 꼭꼭 숨어있을 것 같은 옷 몇 벌을 더 골라 23벌과 신발 2켤레를 넣으니 박스 3개 분량이다.
인터뷰를 찾아보니, IT 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리클’ 대표는 20kg 이상 되어야 헌 옷 수거업체를 이용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현실에 무게보다 ‘옷의 개수’와 ‘모바일’을 이용한 ‘문 앞 수거’라는 장점을 내세운 의류 순환 틈새시장을 노려보기로 했단다.
‘수거신청-수거일정 알림-수거확정-수거’까지 2~3일이 걸렸고, 무게와 검수를 거쳐 수거신청 9일 후 매입가격을 알려왔다. 내가 보낸 헌 옷은 총 13.5kg.
기본 매입은 kg당 300원으로 3,342원, 쓸만한 옷들을 골라 재판매하는 플러스매입은 2,400원에 책정됐다. 이번 의류순환으로 소나무 120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는 안내 문자와 함께 총 5,742원이 입금됐다.
현금이 아닌 포인트로 지급 받을 경우 1.5배 가격이 책정된다. 사용주기를 늘린 옷의 온·오프라인 스토어 재판매로 소비자를 유입하는 판매전략으로 읽힌다.
플러스 의류는 꼼꼼한 검수와 세탁과정을 거쳐 온·오프라인 스토어에서 재판매되는데 명품과 제법 비싼 브랜드의 옷들이 상당하단다.
종류별, 브랜드별로 온라인 스토어에 올라온 상품들은 이미 대부분 SOLD OUT, 판매가 끝난 상품들이 많았다. 상품 후기도 새 옷 같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3백4십8만여 명이 넘는 리클 주 이용자가 20~30대라니 패스트패션 주역에서 순환패션으로 건너오는 중인가 보다.
세계 사람들이 1년 동안 구매하는 옷이 5,600만 톤이고, 1초마다 쓰레기 트럭 1대 분량의 옷이 버려진다. 순환으로 되돌릴 수 있는 옷 5%보다 보다 버려지기 위해 만드는 옷들이 대부분이다.
의류산업 폐기물이 비행기와 배로 인한 이동보다 더 많고 전체 탄소배출의 10%를 차지한다. 옷은 제조과정에서 표백과 염색으로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매립과 태우는 과정에서 땅과 하늘을 어지럽힌다.
2019년 스웨덴 청소년 기후행동을 이끌었던 그레타 툰베리가 “의류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기후행동으로 새 옷을 사 입지 않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16세 소녀가 평생 새 옷을 입지 않겠다는데 충분히 새 옷을 누려온 오십 줄의 내가 못 할 건 또 뭔가 싶어 그레타 툰베리를 따라 그럭저럭 새 옷을 안 산지 5년이 됐다.
주변에 안 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인 전 국민의 중고거래 앱을 외면해온 게으른 내가 ‘리클’을 이용한 가장 큰 이유는 최대한 재사용, 재활용율을 높이겠다는 약속 때문이다. 비대면 수거체계도 꽤 매력적이다.
후기에는 판매금액이 너무 짜다는 불만도 종종 보인다. 그래서인지 ‘리클’은 ‘정리’가 아닌 ‘판매’가 목적이라면 수익성이 더 좋은 개별 중고거래를 권하고 ‘정리’와 ‘순환’에 뜻이 있는 소비자들만 이용하라고 안내한다.
나처럼 얻은 옷을 또다시 되돌림 하는 ‘게으른 의류주의자들’에게 커피 한잔 값까지 더해주니 고마울밖에.
이제 또 계절이 바뀌는 듯하다. 봄 옷장 털이 한 번 더 해야겠다.
리클아, 헌옷 줄게 현금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