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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탈핵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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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옥 Sep 30. 2024

10만 명이 펼치는 야외극 탈핵퍼레이드를 꿈꿉니다

[탈핵 잇_다] 시즌2 여섯번째 이야기, 장소익(나무닭움직임연구소)대표

경주 황리단길, 탈핵으로 채우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아래 나무닭) 장소익 대표에게 퍼레이드는 일종의 거리연극이다. 역동적이고 불특정 다수의 관객과 만나야 하니 매년 같은 내용을 거리 무대에 올릴 수 없다. 장소익 대표가 연출하는 퍼레이드는 늘 참여자들과 사전작업을 한다. 퍼레이드에 사용할 소품을 만들고, 줄기와 가지를 그리며, 참여자들과 함께 판을 짠다. 그러니 퍼레이드는 매년 새로울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멈췄던 '탈핵퍼레이드'가 2024년 3월 16일 월성과 경주에서 근사하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 9월 7일 서울 강남에서 열린 기후행진을 마치고 '2024 연극 전태일' 제주공연 준비를 위해 제주로 날아온 장소익 대표를 9월 8일 6시, 제주시 조천읍 제주볍씨학교에서 만났다.


청송에서 '나무닭움직임연구소'를 운영하는 장소익 대표가 '2024 연극 전태일' 연습을 위해 머무르고 있는 볍씨학교 교정에 섰다. 메리골드와 무화가 향이 오감을 홀린다. ⓒ 이태옥


오랜만에 열린 탈핵퍼레이드였죠. 서울이 아닌 경주라서 더 좋았어요. 2023년 겨울부터 경산, 영천, 영주, 안동, 포항 등 한 사람씩, 한 지역씩 모았어요. 경상도는 해안을 따라 핵발전소가 무려 22기나 있잖아요. 2017~2019년 서울에서 했던 것처럼 마을 또는 모임 공동체별로 퍼레이드에 사용할 소품 만들기 워크샵도 하고 탈핵토크를 거쳐 3월 16일 퍼레이드로 연결하고 싶었어요. '핵폐기물통 만들기 워크샵'은 포항과 영주 등 몇 지역과 마을공동체에서 진행했는데 탈핵토크는 결국 못 했네요. 저는 탈핵퍼레이드가 장애인단체라든지, 공동체 마을, 경주제로웨이스트샵, 녹색평론 울진독자모임, 방정환배움공동체 구름달 같은 다양한 모임과 시민사회, 정당, 종교 등이 어우러지는 '울트라 공동체'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천년고도 경주와 핵발전소의 관계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존재하는 월성핵발전소 6기는 경주에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취급 받는다. 경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황리단길에서 27km만 가면 문무대왕릉을 거쳐 바닷가 마을 양남리 나아리이고, 나아리 끝에 자리한 시설이 경수로 핵발전소에 비해 약 5배의 핵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월성핵발전소이다.


993년간 신라의 수도였고 석굴암, 불국사, 동궁과 월지 등 문화유산의 고장 경주와 월성핵발전소 단지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리기 위한 '3·11 후쿠시마 핵참사 13주기 대구경북 탈핵행진(아래 탈핵행진)'이 지난 3월 16일 경주 양남면 나아리 월성핵발전소와 경주 황리단길에서 열렸다.


경주에서 탈핵행진 하기 전에 '나아리'를 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어요. 대구·경북 지역에서 경주까지 오는 데 1~2시간은 걸려요. 탈핵행진에 오는 사람들은 어차피 하루 일정으로 올 텐데 핵발전소 현장을 보고 느끼는 것이 필요했죠. 핵발전소로 인해 각종 암과 백혈병 등 병마에 시달리고, 땅과 집의 재산가치 하락으로 떠나지도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나아리 주민들과 연대하는 것이 탈핵행진의 출발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00여 명의 탈핵행진단은 오전 11시 양남면 주상절리 앞에 모여 월성핵발전소 '이주대책위 농성장'까지 순례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주상절리를 출발해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3km 해파랑길을 걸으면 월성핵발전소 앞에서 '이주만이 살길이다'고 외치는 나아리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10년째 자신의 직함이 적힌 상여와 관을 끌며 농성장을 지켜온 '월성원전인접지역주민이주대책위원회' 황분희 부위원장은 "나아리 같은 작은 시골마을은 시민단체도 없고 주민편 들어 줄 정치인도 없다. 주민들은 늙거나 병들고 사라지니 오직 믿는 것은 국민뿐이라며 신규핵발전소도 막고, 낡은 핵발전소 수명연장도 막는 데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나아리 주민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관광객들이 많이 모인다는 경주 황리단길에서 '대구경북 탈핵퍼레이드'를 시작했어요. 경주활동가들은 황리단길에 200명 모이면 많이 모인다고 했어요. 그래서 목표를 201명으로 했죠. 그랬더니 300여 명 참여한 것 같아요.

대구경북 풀뿌리 공동체들이 참여한 ‘대구경북 탈핵퍼레이드’는 볼거리, 할거리 등이 풍성했다. ⓒ 나무닭움직임연구소

나무닭의 삼두매, 황새, 흰목물떼새, 열목어, 대지의 여신을 앞세우고 직접 만든 핵폐기물 깡통을 짊어진 사람들이 뒤를 이었다. 핵오염수를 상징한 생선뼈와 하회탈까지 대열을 잇고 탈핵퍼레이드의 상징인 노란나비족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바투타카 연주단과 풍물패 등이 어우러진 탈핵퍼레이드에 "너희들은 전기 안 쓰냐"는 고리타분한 시비 따위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탈을 쓰고 걷는 이도, 장다리를 타고 날개짓 하는 황새들도, 핵폐기물통을 어깨에 맨 사람들도 황리단길을 찾은 경주시민과 관광객들도 흥겨운 퍼레이드의 주인공이었다.


후쿠시마와 세월호가 만든 연극 '물의 기억'


경북 청송에서 환경과 노동을 주제로 한 연극을 만들고 공연하던 장소익 대표가 핵발전소에 관심 두게 된 것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도 지구온난화, 멸종위기종 등에 관심이 많았던 장소익 대표는 황금박쥐, 황새, 귀신고래, 사양노루, 흰사슴 등이 출연하는 환경연극을 만들고 공연했다. 광우병을 주제로 한 연극을 올리면서 소 인형도 30개나 만들었다. 그때 만든 황새, 삼두매는 지금까지도 잘 나가는 인형들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핵발전소 문제가 어렵잖아요. 체르노빌, 후쿠시마, 방사능에 대해 알아가면서 2014년 초부터 핵발전소 관련된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해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져요. 그래서 나온 연극이 '물의 기억'이에요. 후쿠시마핵발전소가 냉각수 문제로 폭발했고, 세월호는 바다에 침몰했잖아요. 두 이야기의 공통점을 물로 엮은 거지요.


'나무닭' 연극 프로젝트는 시민참여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워크숍 등을 통해 연극에 쓰일 소품을 만들고, 장다리를 신고 인형 연기와 춤을 연습한다. 지역공동체 구성원은 기획자가 되고 연기자도 되고, 소품과 무대를 만들기도 한다.


'물의 기억'은 상주 백원초, 대구 도도연극과교육연구소, 서울 성미산학교, 안동, 강릉 등 5개 지역공동체가 참여, 제작한 100인의 야외극이다. 각 지역에서 만들어낸 장면을 모아 하나의 연극으로 만들어 낸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은 더 드라마틱하다.


후쿠시마 핵사고의 냉각수와 세월호 침몰사고를 ‘물’이라는 공통점을 엮어 만든 ‘물의 기억’은 5개 지역 공동체가 참여했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


물의 기억은 후쿠시마 아이의 편지로부터 영감을 받았어요. 2012년 후쿠시마 1주기 때 후쿠시마에서 피난 나온 11살 소녀가 '나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데 암담하더라고요.


장소익 대표는 후쿠시마 피난 소녀의 편지로 시작해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 소녀의 편지 '제가 여러분이 죽이려는 아이입니다', 체르노빌 사고로 대머리가 된 소녀 이야기들을 엮어 1인극 '대머리 소녀'를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전쟁과 핵무기 그리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안방까지 들어온 핵발전의 본질은 제국주의의 욕망이고, 그로 인한 피해는 가장 힘없고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


2021년 8월 청송에서 열린 국제환경연극제 폐막작으로 100인의 야외극 '물의 기억'을 다시 올린 장소익 대표는 공연 한 번으로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물의 기억'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변화에 주목한다.


연극을 마치고 돌아가면 어떤 생활을 할지 모르지만, 연극을 준비하고 동안 핵발전소와 전기에 대해 몸으로 체감하게 되잖아요. '물의 기억'이 탈핵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탈핵으로 놀아볼 결심


지난 3월 경주 탈핵행진 이후 대구경북 지역 사람들과 친교와 교류가 생겼어요. 한여름에 열린 청송 '국제환경연극제'에 경주 제로웨이스트샵 사람들이 와서 플리마켓을 열었고 가족과 함께 연극제를 보러 오기도 했어요. 그 더운 날 아이들은 나무닭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온몸이 땀에 젖어도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해서 부모를 난처하게 하기도 했어요. 탈핵행진의 다음을 기약하는 자발적 교류가 생긴 것 같아요.


장소익 대표는 2014년 '물의 기억' 공연 이후 핵발전소 인근 지역이나 탈핵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경주, 울진, 영덕 등에서 탈핵퍼레이드를 진행했다.


한울핵발전소가 있는 울진에서 탈핵퍼레이드를 하는데 사람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라고요. 지금도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놀람과 의아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퍼레이드를 보던 눈빛이 기억나요. 울진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들이잖아요. 게다가 멸종위기종의 모습을 한 대형 인형들이 뛰어다니니 놀라기도 했을 거예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80여 개의 시민단체와 종교, 정당 등으로 구성된 '핵없는세상을 위한 탈핵공동행동'은 2012년부터 3월이면 시청, 신촌, 마로니에 공원 등지에서 후쿠시마 기억 행사를 열었다. 장소익 대표가 '물의 기억'의 영감을 받았던 후쿠시마 소녀의 편지는 2012년 서울광장 앞에서 열렸던 후쿠시마 1주기 행사 때 초청받아 온 '아베 유리카' 양의 이야기였다.


장소익 대표는 2016년 탈핵퍼레이드를 서울에서 해 보자는 몇몇 환경단체의 제안에 '10만 명을 모을 때까지 최소 10년은 탈핵퍼레이드를 하겠다'라고 마음먹고 2017년 '3·11탈핵퍼레이드 추진단(아래 3·11추진단)'과 행사를 기획했다. '3·11추진단'은 각 단체, 모임, 마을별로 '핵폐기물통 만들기' 워크샵을 진행하고, 장다리 인형극을 펼칠 사람들과 거리극을 준비했다. 준비 과정 자체가 탈색퍼레이드였고, 만들어 둔 소품은 다음 해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3월 11일을 기준으로 일주일 정도를 탈핵주간으로 삼았어요. 탈핵이 생활문화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 경주, 울산, 울진, 영광, 대전에서 지역주민들과 '핵폐기물통' 등 각종 소품을 만드는 워크샵과 탈핵토크를 하고 3월 11일에 맞춰 서울로 진군해서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과 탈핵퍼레이드를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다음 해부터는 부산, 경주, 울산, 울진, 영광, 대전 등 지역으로 차례로 몰려가서 '핵발전소 폐쇄하라'라는 목소리를 크게 내고 싶었죠. 그런데 지역을 조직하는 일이 어렵더라고요.


2018년 후쿠시마 7주기 '핵쓰레기 너머 나비날다'는 일명 '핵깡통 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3·11추진단'은 핵발전소와 핵시설이 있는 지역주민들과 만든 10㎝도 안 되는 노란핵깡통에 주민이 쓴 편지를 담아 청와대와 각 지자체 등에 보내는 공익목적의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모든 진행 과정과 행사 취지 등은 인터넷을 통해 공유했고 영광, 대전 탈핵단체가 '소형 핵깡통'을 공공기관에 발송했다. 몇몇 기관에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조사 당시 "협박 의도로 보이지 않으니, 민원으로 처리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며칠 후 태도를 바꾼 경찰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원불교환경연대 2명, 대전 '핵재처리실험저지 30km연대' 활동가 1명 등 3명을 기소했다. '3·11추진단'과 해당 단체는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이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고 대법원에 상고까지 했지만 결국 2020년 2월 대법원에서 기각돼 1심 판결이 확정됐다.


'핵폐기물 택배'는 공론과 관심을 불러일으키자는 기획이었어요. '모형 핵깡통'으로 그런 사달이 날 거라고 생각 못 했죠. '모형 핵깡통'에 그렇게 난리를 치면서 실제 존재하는 수백 톤의 핵폐기물에는 왜 겁을 안 내는지 모르겠어요. '3·11추진단'이 결의하고 진행한 일인데, 3명의 활동가가 유죄판결을 받아 총감독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2019년 8주년 후쿠시마 행사 '가로질러 탈핵'은 국회에서 시작해 광화문까지 8.1km를 걷는 장거리 탈핵퍼레이드로 진행됐다. '에너지 전환'은 결국 정치가 풀어야 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책임을 알리고 책임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2019년 3월 8일 탈핵퍼레이드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8.1km를 걷는 퍼포먼스를 안내하는 장소익 대표 ⓒ 3·11탈핵퍼레이드추진단


핵발전소 문제는 정리될 수도, 정리할 수도 없는 문제예요. 핵발전소가 다 문을 닫는다고 해도 이미 쌓여있는 핵폐기물은 어쩔 거예요? 탈핵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거죠.


장소익 대표는 탈핵퍼레이드를 하면서 3000명까지 숫자를 세어 놓았다고 한다. '퍼레이드에 10만 명이 모이면 탈핵이 된다'라고 생각하는 장소익 대표는 내년 탈핵퍼레이드를 경주에서 더 크게 해볼 생각이다.


황리단길은 500명만 모여도 꽉 찬다고 해요. 3000명이 모이면 경주가 탈핵으로 메아리칠 거예요. 영광에서 수천, 수만 명이 모여 '수명연장 취소'할 때까지 몇 날 며칠을 탈핵 퍼레이드하면 뭔가 되지 않겠어요?


장소익 대표는 연극은 라이브여서 힘이 있다고 한다. 대안과 저항을 모색하는 다양한 공동체들이 모이고 쌓여 저마다 탈핵을 뽐내는 퍼레이드를 만들어 보자고 한다. 인디언 기우제처럼 그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연결하다 보면 '10만 탈핵대오'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라고 무심한 표정으로 말한다. 별일 아니라는 듯한 표정과 확신에 찬 그의 말에 '10만 탈핵 대오'가 눈에 아른댄다.


발견과 변형


장소익 대표가 탈핵퍼레이드를 기획할 때 신경전을 벌였던 것이 무대와 음향이었다고 한다. 무대를 세우고 중간, 중간 차량을 배치해 대오를 이끌고 선동을 하는 것에 돈과 공력을 들이는 것이 못마땅했다. 이미 행진대열에 나선 사람들은 탈핵이나 기후위기에 공감하기 때문에 나오는 건데 우리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기 위해 마이크와 차량과 무대를 만들어야 하냐는 것이다.


환경연극은 공연무대를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고, 발견한 환경을 활용하거나 변형하는 거예요. 우리 전통문화가 그렇거든요. 풍물이나 마당극을 떠올려 보세요. 무대를 설치하거나 음향이 거창하지 않아요. 무대 위와 아래가 나뉘면 주도자와 참여자의 관계가 수직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선두가 행진을 지휘하고 대오에 있는 사람들은 그 지휘에 따라 걷는 일방적 행사는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무닭움직임연구소와 영국의 '핸드메이드 퍼레이드극단'이 합작으로 제작·공연한 '2017 청송 도깨비 사과축제' 사전행사인 '사과아씨의 여행'의 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한 해 동안 고생한 농민들이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군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개최한 마을 축제 '사과아씨의 여행'은 10월 말 일주일 동안 청송군 8개·면 소재지를 순회했다.


주민들은 한국, 영국 예술가들과 마을별 사전워크샵을 통해 새, 별, 달, 거북이, 소, 돼지 등 다양한 '등(랜턴)인형'을 만들었다. 읍·면별로 마을 축제가 열리는 날, 마을 사람들은 '등(랜턴)인형'을 머리에 쓰고 불을 밝혔다. 한해 농사를 갈무리한 농촌 마을의 까만 밤이 온통 생명들로 반짝였다. '등(랜턴)인형'에 몸을 맡긴 주민들은 아픈 것도 잊고 풍물패가 이끄는 대로 한바탕 축제를 즐겼다. 아직도 반짝였던 청송의 어느 밤 마을풍경이 뭉클함으로 남아있다.


그해 20만 명이 청송 도깨비 사과축제를 보러왔다고 해요. 2016년 제주 칠머리당영등굿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제주도 영등할망 설화를 마을 축제로 만들었죠. 심사위원들도 세계적인 수준의 축제라고 평가하더라고요.
2018년 대구에서 열린 컬러풀축제에 나타난 사과아씨와 노란나비들. 마을과 사람, 이야기를 엮어 퍼레이드 경연대회에서 1등을 했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

나무닭이 2009년부터 시작한 '국제환경연극 프로젝트'와 '공동체와 함께하는 환경연극'은 예술가 집단만이 아닌 지역주민, 청년, 문화 활동가들을 끌어들여 하나로 묶어 협업하게 한다. 예술가와 주민 또는 일반인들과의 간격을 줄이고 연극으로 끌어들인다. 장소익 대표와 나무닭은 '우리모두가 예술가이다'라고 부추긴다.

'탈핵퍼레이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예술프로젝트, 탈핵퍼레이드


대학시절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희극을 공부하며 무대극에 미쳐 살던 장소익 대표는 국내외 연극판을 돌고 돌아 2008년 연고 하나 없는 경북 청송에서 폐교 하나를 빌려 공공성과 예술, 공동체와 연극이라는 주제를 걸고 '나무닭움직임연구소'를 열었다.


'나무닭 누리집'에는 나무닭 움직임 연구소는 몸의 움직임, 마음의 움직임, 소리의 움직임, 사회의 움직임과 탈, 꼭두, 그림자, 신화 등에 깃들어있는 제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제의연극, ritual theatre'을 창작하고 공연한다고 설명한다. 연구는 개발되고 학습된 각종 워크숍을 보급하고 지속적인 실험으로 성과를 민중에게 되돌리는 의미라고 한다. 탈핵퍼레이드 전 과정 또한 그러했다.


탈핵은 문명의 전환과 연관된 삶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문화·예술과 결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몇몇 사람들의 정치적 의제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이죠. 탈핵은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닌 공공의 일이니, 공유지를 넓혀야 해요. 탈핵퍼레이드를 준비하면서 깃발을 들지 말자고 했어요. 깃발은 소속감을 발휘하지만, 깃발 없는 일반인들을 소외시켜요. 깃발 없는 일반인들이 공감과 동의만으로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해요. 되도록 글씨도 안 쓰면 좋겠다고 했어요. 등에 짊어진 핵폐기물통을 보고 "뭐지?", 날개를 펄럭이는 나비의 날개짓을 보고 "왜?"라는 질문을 떠올리는 열린 상상력이 발현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공공퍼레이드와 소품제작은 '공동체예술'이라는 장소익 대표는 3월 11일을 기준으로 4개월 전부터 탈핵퍼레이드를 준비한다. 참가자와 공동체를 모으고 탈핵문화학교를 열어 소품제작 워크샵과 탈핵강좌를 진행한다.


탈핵퍼레이드는 결과물을 공유하고 연결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축제의 장이다. 마을주민이 참여하고, 마을설화를 엮어 최고의 지역축제를 만들었던 것처럼 탈핵퍼레이드도 최고의 공공예술프로젝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장소익 대표의 '10만 탈핵대오 양병설'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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