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에게 더 잘해줬던 반전 이유

야무진 꿈꾸는 영감탱

by 재키


브런치를 열심히 해보려고 기껏 매거진까지 만들었다가 오랫동안 뜸했던 이유. 몇년간 준비해온 공부를 마무리하는 국가시험이 있었다.


간단히 배경을 설명하자면, 한국에서 졸업한 대학 졸업장이 안타깝게도 캐나다로 넘어오면서 백프로 인정을 못받아 다시 학교를 다니며 부족한 학점을 채우고 자격증 공부를 하느라 몇년을 팔자에도 없던 주경야독하며 바쁘게 살았다.

그게 무려 5년.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다 퇴근해서는 밀린 과제와 시험공부를 하느라 집안일은 커녕 남편과 여유롭게 앉아 밥한끼 제대로 못하는 날이 많았다.


밥과 빨래 뿐만 아니라 공부를 하면서 더욱 예민해진 나의 성격을 받아내는 것도 오롯이 남편의 몫이었다.

키보드를 부술듯이 두드리며 게임하는 남편 뒷통수에 대고 ”시험기간에는 게임 좀 안하면 안되냐“고 성질을 낼 때마다 남편이 작은 목소리르 복수를 다짐하듯 읖조리곤 했다.


- 시험만 끝나면 진짜.. 후 두고보자.


그런 남편을 보면 안쓰럽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론 ‘시험 끝나면 집에서 종살이 하듯 살게

되겠군..‘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어쩌면 나보다 내 시험의 끝을 더 기다렸을 남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9월, 3일간의 시험이 끝났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원하는 만큼 실력발휘를 못해 속상한 탓인지 시험장을 떠나기도 전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같이 공부한 친구와 술을 진탕 먹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울었다.


나이 먹고 열살도 더 어린 친구들과 공부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워서인지 뭔지 남편은 시험이 끝난 후에 그렇게 벼르고 있던 본인의 노고에 대해 전혀 생색을 내지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평소보다 더 잘해주는게 아닌가?

퇴근하는 길에 먹고 싶은게 있냐고 물어보더니 12시간을 일하고 와서도 피곤한 기색없이 내 저녁을 만들어줬다.

평소 같으면 먹고싶은 메뉴를 말해도 ‘그건 손 많이가서 안된다’며 핀잔을 주더니 이젠 오히려 ‘그것만 해주면 되? 다른건?’이라며 뭐든 해줄 기세였다(!).

이게 다가 아니다. 평소엔 낯간지러워서 못한다는 애정표현도 자주 하고 말도 하기 전에 내게 필요한 물을 슬며시 떠다 주기도 했다.


뜻밖의 호강이 너무 만족스러워 이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으나.. 오히려 너무 잘해주니 불안해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호강에 겨워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나: 시험 끝나고 왜 이렇게 잘해줘?? 시험 끝나면 복수할거라고 나 부려먹는다더니??

남편: 그냥 말만 그렇게 한거지.

나: ?? 그럼 진짜 그냥 잘해주는거야? 나 고생했다고?


남편의 알듯말듯한 표정. 그리고 나온 뜻밖의 대답.

남편: 그때는 진짜 그런 생각이었지. 근데.. 이제 공부 다 끝났으니까 시험만 붙으면 연봉도 오를거고.. 잘하면 진짜 나 조기은퇴시켜줄거 같아서 잘해줘야겠다 싶었어.



이야.. 역시 내남편.

잔머리의 고수이자 어떻게하면 하루를 더 편하게 살수있을까 고민하는 타고난 베짱이.

내가 공부하는 걸 몇년이나 봤더니 지금까지는 과연 저 공부가 끝나기는 할까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막상 진짜 결승점에 도달하는 걸 보니 ‘이제 드디어 마누라 덕 좀 보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어떻게 저렇게 두뇌회전이 희안한 분야에만 빠른지 참 의문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은퇴는 꿈도 꾸지 말라고,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엔 안된다며 오늘의 유치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집에서 쉬라고 하면 영원히 쉴 사람이니.. 부지런히 밖으로 내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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