삥땅치는 영감탱
결혼하기 몇 년 전부터 이미 같이 살면서 생활비를 반반 내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공용 통장에 똑같이 얼마씩 넣고 그 돈으로 식료품도 사고 전기요금 같은 공과금도 해결했다.
그러다 올해 초 남편이 건강에 적신호가 와서 근무시간이 더 적은 일로 옮기게 되었다. 당연히 버는 수입도 반토막이 났다.
지금까지는 공용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는 알아서 쓰고 저금하는 걸로 노터치 정책을 고수해왔는데, 이제 남편의 수입으로는 본인의 기본 생활비와 미래 학업을 위해 공부하는 과외비도 겨우 내는 수준이 되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돈으로 여러가지 공과금과 생활비를 먼저 충당하게 되었다.
내 월급으로 필요한 곳에 먼저 쓰고 나면, 남편이 월급을 받아 고정비를 지불하고 남은 돈을 나에게 이체를
해주기로 했다.
지난 달엔 과외비를 내느라 남는 돈이 없어서 생활비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달엔 좀 남으니 생활비를 주겠다고 했다. 아마 30만원 정도.
그리고 어제의 대화.
남편: 돈 남은거 이체해줄게. 얼마나 필요해?
나: 뭘 얼마나 필요해야, 있는거 다 줘야지. 지난 달에도 안줬잖아.
남편: 한 30주면 되나?
나: 장난해? 식비만 50만원 넘는데 뭐라는거야. 빨리 있는거 다 줘.
남편: 알겠어, 30 보낼게.
나: ?? 지금 말하는거 보니까 30보다 더 있는거 같은데? 다 같구와.
남편: 오케이, 34 보낼게.
나: 야금야금 삥땅칠 생각하지말고 다 보내라. 인터넷 요금도 내야된다고. 낼 돈이 한두개가 아니야.
남편: 보냈다 34.
나: ?? 장난하니? 삥땅쳤지. 다 안갖구와?!
가뜩이나 바쁜 시기라 집까지 노트북을 가져와 야근을 하고 있는데 쓸데없이 입씨름거는 남편에게 슬슬 짜증이 나려던 찰나..
남편: 8천원 남았다. 좀 주라! 나도 좀 쓰자!
.. 뭐 얼마..?
농담하나 싶어서 핸드폰을 뺏어 은행 어플에 들어가보니 정말 잔고에 8불이 남아있다. 8천원 정도.. 심지어 일반 계좌와 저축 계좌를 합쳐서..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난 또 돈 빼돌리는 듯이 얘기하길래 뭐 십만원쯤 떼먹은 줄 알았는데 겨우 8천원 남겨먹으면서 저렇게 눈치를 보다니.. 장난을 치고 싶었던 건지 눈치를 본 건지.. 8천원에 입씨름을 하게 하다니. 참나 어이가 없다.
눈물없이 볼 수 없는 남편의 비상금.
귀엽고 짠해서 용돈 좀 보내주고 넘어가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