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
마지막 씬에서, 앤과 에비게일의 눈빛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가, 순간 공허해진다.
공허한 눈빛은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되다가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니는 토끼들과 오버랩된다.
권력을 탐했고, 더 나은 삶을 바랐던 사라와 에비게일의 마지막은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었다.
더 원하고, 더 바라고, 만족하지 못하는 두 인간 군상의 대립은 결국 서로를 파멸로 치닫게 하고 만다.
늘 여왕의 곁을 지켜왔던 사라 제닝스에게 에비게일 힐의 등장은 예상치 못한 위협이었다.
둘의 갈등은 단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지만, 동시에 권력을 위한 불필요한 탐욕이었던 것이다.
에비게일은 강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생존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의지와 반하여 노예로 팔려나갔던 에비게일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비게일과 여왕의 관계는 사라가 떠난 후엔 도리어 의미가 없어진다. 사라가 함께 있어야 비로소 에비게일의 존재의 의미가 부여됐던 것이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로 지속된다. 여왕은 초조한 에비게일을 그저 권태기를 맞이한 연인처럼 대한다.
마치 잃어버린 무언가를 오래 전에 포기한 듯, 다정하지만 애정 없는 눈길로.
여왕은 '누가' 옆에 있는 것보다, 아무나 옆에 있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무나 곁에 둔다고 해서 그녀가 느끼는 고독함은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한 나라의 통치자이기에 필연적으로 견뎌내야만 했던 고독함을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곁에 누군가를 늘 자리하게 함으로써 견디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노력이 실패했음을 스스로 증명해낸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권력과 생존의 관계는 딱히 다르지 않다.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을 가져야 하고, 더 많은 힘을 가진 자들만이 더 나은 생존의 방식을 거느린다.
그러나 더 많은 힘을 가진 것에는 늘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채워질 수 없는 공허감까지, 전부 힘을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왕관의 무게다.
여왕이 불행한 것은, 그녀가 여왕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이들은 친절하고 호의적이지만, 그 호의는 그녀가 오직 '여왕'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다.
여왕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 에비게일과 사라마저도, 결코 진실된 사랑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힘을 가진 자들이 그 누구보다 공허함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심지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이들조차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힘의 세계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