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사연을 소개해주는 라디오에서 어느 로또 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로또 부부? 처음엔 운이 좋아 부자가 된 커플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로또 부부란 아무리 복권을 사 모아도 하나도 맞지 않는 로또처럼 전혀 성격이 안 맞는 부부라고 한단다. DJ가 읽어주는 사연 속 남편의 "우린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요"라고 하소연하는 대목이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는데 생각 해보니 웃을 일이 아니었다. 정작 하나도 맞지 않는 대박 로또 부부는 그 집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이지 않는가.
아내와 내가 다른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특히 집의 목적과 용도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달라서 서로 의견이 일치되는 경우가 드물다. 남들 다 있다는 안마의자 중고라도 하나 들이자 하면 아내는 아래층에 소음 피해 주니까 곤란하다고 한다. 비가 와도 운동할 수 있게 실내 자전거 한대 사자 하면 비 오는 날은 그냥 쉬라고 한다. 나는 집의 다목적화를 꿈꾸는데 아내는 법정스님의 선방처럼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고 싶은 모양이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투덜대면 아내는 "나중에 큰 집으로 이사 가면 그때..."라며 단서를 남긴다
실제로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도시에서 큰 아파트를 구하기는 어려우니 아내도 은퇴 후엔 교외의 너른 전원주택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시 이사를 가게 되면 시골로 가서 정원도 가꾸고 바비큐도 구워 먹으며 인생을 여유롭게 즐기면 어떻겠냐고 떠보았더니 그런 전원생활은 혼자 가서 즐기라며 딱 잘라 말한다. 아니, 큰 집이 좋다면서... 이쯤 되면 이웃에 대한 소음 배려나 공간 부족으로 매번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남편 자체가 싫은 것이다.
어쩌면 권태기가 찾아온 로또 부부에게는 배우자는 따로 살수도, 같이 살 수도 없는 계륵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관심사가 같은 중년 부부가 근교에 집을 짓고 자신들의 로망을 실현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 물론 우리도 처음부터 로또 부부였던 것은 아니었다. 아내를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니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장르가 같아서 취향이 맞는 사람을 이제야 만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20년 결혼생활 중에서 몇 곡이나 나란히 소파에 앉아 함께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생선의 머리와 꼬리 중에서 어디를 더 좋아하는지 처음 만났을 때 물었어야 했다.
집 :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가 생활하는 곳
의식주에 대한 관심이 패션이나 먹을거리에서 집으로 이동하는 추세를 반영해서인지 티브이에서도 개별 시청자의 상황에 부합하는 맞춤형 주택을 찾아주는 프로그램들이 제법 눈에 띈다. 이제 곧 다자란 아이들도 제 길 찾아 떠날 텐데 무뚝뚝한 아내와 둘이서 평생 살아야 할 집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집의 사전적 설명처럼 집이란 결국 부부의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어떤 집"이라는 건축구조보다는 그 공간을 어떤 관계로 채울 것인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집에서 배우자가 아닌 반려자로서 아내와 살다보면 20년 동안 잘 안맞았던 로또도 5천원짜리라도 당첨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언제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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