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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키즈’, 연말연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거움이란

‘스윙키즈’는 뮤지컬 ‘로기수’에 빚진 영화다. 뮤지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로기수’ 또한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기인해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눈구멍이 뚫린 두건을 쓰고 춤을 추는 흑백사진 한 장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뮤지컬이 만들어졌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영화 ‘스윙키즈’와 뮤지컬 ‘로기수’는 흑백사진 한 장으로부터 출발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산물이다.     

영화의 배경은 1951년 거제 포로수용소가 배경이다. 뮤지컬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포로수용소의 상황을 관객에게 설명하느라 1막에서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 뮤지컬과 달리, 영화는 이를 효율적으로 압축하여 표현할 줄 알고 있었다. 그 덕에 영화에서는 로기수가 미군의 식량창고에 몰래 들어가는 장면을 원작 뮤지컬보다 15-20분 앞당겨 묘사할 수 있었다.     


사람이 무언가에 꽂히면 다른 상황을 보더라도 그가 꽂힌 상황과 연관 짓기 마련이다. 로기수가 영화 초반 탭댄스에 필이 꽂힐 때의 시퀀스는 PMC의 ‘난타’를 자연스레 연상케 만든다. 포로수용소에서 음식 재료를 썰 때의 칼질과, 다듬이질할 때의 리듬감을 영화가 묘사하는 방식은 ‘난타’의 현란한 칼솜씨를 연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뮤지컬을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윙키즈’를 관람했다면 영화에 대한 분석은 오롯이 영화 하나면 족하다. 하지만 뮤지컬을 이미 접한 상태에서 나중에 만들어진 영화를 관람한다면 영화와 뮤지컬은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스윙키즈’는 뮤지컬에서 늘어지는 전사(前史)를 효율적으로 압축할 줄 아는 센스도 있었지만 뮤지컬과 비교해서 본다면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로기수의 형 로기진에 대한 묘사다.      


극 중 인민영웅인 로기진을 묘사함에 있어 뮤지컬은 그를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입체적인 인물로 묘사할 줄 안다. 하지만 반대로 영화에서는 로기진을 묘사함에 있어 평면적인 인물로 묘사하는데 그친다.     

로기진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가를 보다 자세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면 그의 동생 로기수가 갖는 인민영웅의 동생이라는 정체성이 얼마나 책임감이 더해지는가를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었음에도 영화는 이를 놓치고 로기진을 일차원적인 인물로 그리고 만다.     


또 하나, 인민영웅의 동생인 로기수는 아무리 탭댄스가 선망의 대상이라 해도 인민영웅의 동생이라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탭댄스에 끌리려는 본능과, 인민영웅의 동생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흔적이 보이는 인물이다.      


로기수라는 인물은 인민영웅의 동생이라는 정체성이 있기에 탭댄스라는 미 제국의 문화와 거리를 두어야 함은 물론이고 경멸해야 한다. 로기수는 인민영웅의 동생이라는 그의 내적 정체성과 탭댄스를 좋아하는 댄서의 경계 사이에서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 캐릭터다.      


아쉽지만 영화에서는 초반의 로기수가 인민영웅의 동생이라는 수용소 안에서의 정체성과, 탭댄스에 끌리는 본능 사이에서 진중하게 고민하고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흔적이 휘발되다시피 한다.      


한 예로 영화는 댄스단을 지휘하는 잭슨과 로기수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제시함에 있어 연습실 같은 밀폐된 장소가 아닌 언덕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묘사하는 우를 저지른다. 영화에서 제시되는 언덕은 둘 뿐만 아니라 수용소에 수감된 북한군이 모두 볼 수 있는 높이 있는 장소다.      

모두의 시야가 보이는 공개된 장소에서 로기수와 잭슨이 춤으로 우정을 쌓는 시퀀스는 각본을 짠 강형철 감독이 로기수가 인민영웅의 동생임에도 탭댄스를 좋아한다는 이중성을 숨겨야 한다는 걸 간과한 패착이다.  

     

하나 더, 뮤지컬에서는 로기수를 연기하는 윤나무가 탭댄스를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인민영웅의 동생 로기수가 어떤 ‘과정’을 거친 다음 탭댄스의 달인이 되는가가 차근차근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로기수는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탭댄스의 달인이라는, 만들어진 ‘결과’만 보일 뿐이다.     


뮤지컬과 영화의 결이 달라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결말도 달라졌는데, 영화의 결말이 연말연시라는 시즌과 어울릴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예를 들어보자. ‘남한산성’을 언론시사로 접한 필자는 추석이라는 온가족이 관람하는 관람 타이밍과 ‘남한산성’의 영화적 무거움이 궁합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온가족이 보는 가족영화로는 너무나 영화의 결이 무거웠기에 당시 그런 의구심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한산성’은 우려대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스윙키즈’의 무거운 결말은 연말연시라는 시즌과 맞아떨어질까 하는 관객의 의구심을 극복할 수 있어야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관객몰이가 가능할 것이다.


미디어스 (사진: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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