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리뷰] ‘사자’ 퇴마물로 포장한 하품 유발자

‘사자’는 얼핏 보면 용후(박서준 분)의 성장담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중상을 입은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해 믿음을 잃은 용후가 바티칸에서 파견된 구마 사제 안신부(안성기 분)를 만나 잃어버린 믿음을 일정 부분 회복하는 성장담 말이다.     


‘사자’를 엄밀하게 살펴보면 용후의 성장엔 관심이 없다. 용후에게 진정한 성장이 일어나는 걸 바랐다면 서사 진행에 있어 어린 시절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하는 과정이나 혹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살려달란 기도가 왜 신에게 응답받지 못했나에 대한 해답이나 힌트가 영화 가운데서 용후에게 주어져야 했다.      

하지만 ‘사자’는 이런 부분에 있어 일절 관심이 없다. 용후가 어린 시절 믿음을 잃게 만든 상실의 회복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사자’는 외양적으론 신의 힘을 빌어 악을 물리치는 신본주의 영화로 바라볼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인본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빌런과 대적할 때 용후가 누구로부터 힘을 얻는가를 잘 살펴보라. 용후가 빌런과 대적할 힘을 갖는 궁극적인 원천은 신의 권능이 아니다.     


용후의 손바닥엔 그 옛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자국인 성흔(Stigmata)이 있다. 관객은 용후의 손바닥에 나타난 성흔이 용후의 성장을 도울 것이란 예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자’ 속 성흔은 그저 퇴마를 위한 수단일 뿐, 왜 성흔이 나타났는가 혹은 성흔이 용후의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시킬 단서가 될 것인가에 대해선 도무지 관심이 없다.      


‘사자’는 ‘검은 사제들’처럼 정통 퇴마물로 진행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는 영화다. 용후는 격투기 챔피언이다. 영화를 기획할 당시 이 영화를 전통적인 퇴마물로 만들고자 했을 경우엔 주인공을 사제나 혹은 영적 권위를 가진 종교 지도자로 묘사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용후를 ‘검은 사제들’ 속 강동원처럼 신학생이나 종교 지도자가 아닌 격투기 선수로 설정했다는 건 이 영화가 구마(Exocism)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 정통 구마 방식보다 다른 과정에 보다 많은 관심이 있단 걸 보여준다.       


즉, 용후라는 격투기 선수 캐릭터를 통해 액션 카타르시스를 추구하고자 하는 야망이 영화 안에 담겨 있단 이야기다. 격투기 선수라는 캐릭터 덕에 ‘사자’는 기존의 퇴마 영화완 달리 구마 의식에 있어 액션이 상당수 가미된다.     


악을 몰아내는 데 있어 정통적 방식으로 구마 의식을 하는 안신부보다 격투기 선수인 용후가 한 몫 한다는 건 ‘사자’가 구마를 묘사함에 있어 전통적인 가톨릭의 구마 의식을 통한 퇴마보다 액션을 통한 구마에 보다 많은 흥미를 가진다는 걸 뜻한다.      

그럼에도 용후의 액션은 신선하거나 참신하기보단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용후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선 원빈이 옷을 갈아입으며 긴 머리칼을 깎는 ‘아저씨’의 장면이 연상됐다. 영화 후반부 들어 보여주는 액션 장면에선 니콜라스 케이지의 ‘고스트 라이더’와 웨슬리 스나입스의 ‘블레이드’가 오버랩할 정도였다.     


대배우 안성기는 왜 이 영화에 나왔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안성기의 명품 연기를 부식시키는 것도 모자라 참신함과 무서움 두 마리 토끼를 몽땅 놓친 ‘사자’는 관객에게 청량함과 신선함을 안기기보다 하품을 유도할 확률이 더 높다.


미디어스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엑스칼리버’는 뮤지컬의 ‘쉬리’로 자리매김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