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X 감탄 자아낼 카 체이싱만이 유일한 장점인가
연상호 감독의 전작 ‘부산행’과 ‘염력’에선 동일한 궤적이 보인다. 영화에서 사달을 일으키는 원인제공자에 대한 구체적인 서사나 응징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반도’ 역시 마찬가지다.
‘부산행’에선 남쪽인 부산이 피난처로 자리하지만 ‘반도’에선 남한 전체가 디스토피아가 돼버린다. 그럼에도 ‘염력’과 ‘부산행’처럼 ‘반도’ 또한 남한 전체를 디스토피아로 만들어버린 원인제공자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간과된다.
연상호 감독이 드라마에서 활약했을 때의 궤적은 달랐다. tvN ‘방법’에서 정지소는 모친을 제거한 조민수와 성동일을 응징한다. 시청자가 좋아하는 인과응보 사필귀정의 결말을 제공한다. 하지만 ‘반도’도 그렇고 연상호 감독은 영화에서만큼은 사달을 일으킨 원인제공자에 대한 단죄나 서사 묘사는 증발시키는 연출을 선호하는 중이다.
‘부산행’의 주인공 공유 및 ‘반도’의 주인공 강동원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정서적 회심’이라는 절차를 밟는다. ‘부산행’ 초반에서 공유는 KTX 탑승객과의 유대를 몰랐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공유는 ‘정서적 회심’을 겪으며 살아남은 탑승객과 유대를 맺어간다.
‘반도’에서 강동원이 연기하는 정석도 마찬가지다. 정석이 비즈니스 관계 외의 사람들과 유대를 맺는 건 생존을 위한 손잡음도 있지만 ‘정서적인 회심’에 따른 유대 관계도 있다는 점에서 공유와 강동원은 유사한 궤적을 걷는다.
‘반도’의 특징은 좀비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란 설정이다. ‘부산행’에서는 좀비의 공포도 무섭지만 김의성의 악행도 관객의 공분을 자아냈다. ‘반도’ 역시 좀비를 피해 살아남은 생존자끼리의 유대가 다가 아니다.
무기와 식량을 확보한 생존자가 다른 생존자 위에 올라서서 압박하는 ‘종속관계’를 보인다는 점으로 보면 ‘반도’에서 좀비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란 설정이 두드러진다. 다시 ‘부산행’을 회상해보면 종속관계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부산행’과 ‘반도’는 생존자가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유대’를 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정유미가 공유와 유대를 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던 것처럼 ‘반도’ 속 캐릭터들 역시 생존자와 유대를 맺지 않은 개별자는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런데 그 유대가 반드시 선한 사람과 선한 사람의 유대만이 있지 않다는 걸 ‘반도’는 보여준다. 선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유대도 존재하는데, 문제는 선하지 않은 사람들 간의 유대가 해외 드라마와 ‘기시감’을 보인다는 점에 있다.
드라마 ‘워킹 데드’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생존자 유대그룹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워킹 데드’ 시즌 4와 5에 등장하는 종착역 거주자 및 시즌 7과 8에 등장하는 구원자 그룹이 ‘반도’ 속 선하지 않은 사람들의 캐릭터 구축에 있어 기시감을 갖게 만든다.
‘반도’ 속 기시감은 이뿐만이 아니다. ‘반도’의 카 체이싱 장면을 4DX로 보면 영화가 제공 가능한 극상의 체감이 무엇인가를 오감으로 체험 가능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하나 이런 장점을 논외로 하고 분석적인 면으로만 보면 카 체이싱 장면은 독창적인 시퀀스가 아니라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기시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레가 연기하는 준이는 환상적인 운전 솜씨를 뽐낸다. 하지만 이마저도 ‘베이비 드라이버’의 주인공인 안셀 엘고트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반도’를 ‘워킹 데드’에 비유하면 카 체이싱 장면이 ‘워킹 데드’의 시즌 1부터 6까지 해당하는 수준이지만 그 이전까지의 전개는 ‘워킹 데드’ 시즌 7과 8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반도’의 유일한 장점인 카 체이싱 장면을 기다리기 위해 관객은 러닝타임의 3/4를 기다려야 하는 고충을 감내해야 한다.
침체된 극장가를 회생시킬 구원투수 역할로 ‘반도’를 바라보기엔 ‘백두산’처럼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온통 영화를 잠식하고 말았다. 드라마에선 번뜩이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구축하는 반면에 영화에선 온통 기시감의 범벅으로 점철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미디어스 (사진: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