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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오네긴’ 발연기 배우 찜쪄먹을 놀라운 표정연기

한국에선 마지막으로 접할 수 있는 고별 공연

“자는 건 무덤에 거서 실컷 자면 된다”는 예술감독이자 현역 발레리나가 있다. 그의 이름은 강수진. 기쁠 때는 어제 연습한 것보다 오늘 연습할 때 보다 나은 기량이 나왔을 때라는 강수진의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답변은 그가 발레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달려왔는가를 충분히 짐작하게 만들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에게 붙여진 ‘강철나비’란 별명은 괜히 붙여진 별명이 아니다.     


국립발레단 단원의 기량은 강수진 예술감독이 부임하기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강수진 예술감독이 부임하기 전에는 국립발레단에서 공연할 때 여러 명이 아라베스크를 할 때 정렬된 느낌을 갖고 관람하기 어려웠다. 단원 중 누군가의 다리는 파르르 떨리거나 일직선으로 아라베스크가 맞춰지지 못한 상태에서 무대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수진 예술감독이 부임한 다음부터는 국립발레단의 공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무대에서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술감독이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현역 무용수이자 종신단원이다 보니, 국립발레단 단원들도 이에 자극받아 열심히 하는 게 무대에서의 일사불란함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데 이런 ‘강철나비’ 강수진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공연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오네긴>이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지고 있다. 마지막 고별 무대는 내년 7월이지만 한국에서의 마지막 무대는 6~8일이라는 단 사흘 사이에만 열리기에 표는 일찌감치 매진된 상태.      


표를 구하기 위해 몇 백만 원을 싸들고 예술의전당을 찾아가도 못 보는 ‘하늘의 별 따기’ 공연이다. 하지만 하늘의 별을 딸 수 있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예매사이트에서 목이 빠져라 하고 기다리다가 취소 표가 나올 때 예매하면 된다.     

<오네긴>은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공연이다. 요즘 표현되는 ‘나쁜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는 차갑지만 자기 여자에게는 심장이라도 내어줄 것만 같은 남자를 지칭한다. 하지만 <오네긴>의 주인공인 오네긴은 ‘정말 나쁜 남자’다. 오네긴에게 사랑을 고백한 수줍은 아가씨 타티아나의 러브레터를 찢어버릴 때는 언제고, 반대로 타티아나가 유부녀가 되어서야 사랑을 고백하다가 거절당하는 ‘정말 나쁜 남자’ 말이다.     


<오네긴>에서 타티아나를 연기하는 강수진은 발레리나의 기교와 테크닉에 한 가지를 더 갖추고 있었다. 그건 바로 ‘표정 연기’다. 필자는 강수진의 생생한 표정 연기를 마지막이나마 생생하게 감상하기 위해 앞에서 두 번째 줄에서 감상했다.      


한데 강수진의 표정 연기는 발레 동작을 하는 숨찬 호흡을 소화하면서도 TV나 스크린에서 ‘발 연기’로 손꼽히는 몇몇 배우를 ‘찜 쪄 먹고도 남을’ 표정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랑 파 드 되’를 소화하는 숨 가쁜 순간에도 사랑을 표현하거나 반대로 사랑을 거부할 때의 표정 연기는, 발 연기를 하는 연기자들이 울고 갈 정도로 압권 중의 압권이 아닐 수 없었다.     

1막에서 타티아나가 오네긴을 얼마나 사모했나 하는 심정은 두 장면에서 강렬하게 표현되었다. 하나는 막이 내려진 후 강수진이 오네긴이 있는 쪽을 향해 손을 뻗치면서도 몸은 손과는 정반대로 ‘파 드 부레’로 뒷걸음질 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상상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오네긴과 ‘그랑 파 드 되’를 아름다운 몸짓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이었다. 발레리노와 발레리나의 찰나의 아름다움이 표정 연기와 일치하는 가운데 숨을 멎게 할 정도의 완벽함이 있었다.     


3막에서 오네긴의 연애편지를 박박 찢는 오네긴의 연기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과 차이가 있었다. 유니버설발레단 버전이 몸을 고정한 상태에서 손과 팔 동작만으로 러브 레터를 찢는다면, 강수진은 자연스러운 연기 가운데서 오네긴의 편지를 찢는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 때는 사랑했던 남자가 오네긴이었기에, 사랑하는 남자의 고백을 거절했다는 죄책감을 강수진은 온 몸과 마음, 표정 연기를 다해 구구절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제는 독일에서 열릴 내년 7월 발레 티켓을 구매하지 않는 한 강수진의 멋들어진 발레를 보는 건 영영 불가능해졌다. 강수진이라는 거장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영영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발레 팬들에게 있어서는 한 쪽 팔을 잃는 것만큼의 상처만큼 크겠지만, 발레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걸 바쳐온 강수진의 외길 인생에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공연이 강수진 &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오네긴>이다.


(사진제공=크레디아)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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