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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콘크리트 유토피아, 명암이 공존하는 아포칼립스

선한 사마리아인과 타자의 악마화 사이의 기로

*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영화의 일부 내용이 담겼습니다.


여름 영화가를 주름잡을 한국 텐트폴 영화 빅 4 ‘비공식작전’과 ‘밀수’, ‘더 문’에 이어 마지막으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평단과 언론관계자들에게 공개됐다. 이중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현대판 카스트가 아파트 공화국이라 일컬어지는 21세기 한국과 조우할 때 야기되는 인간 군상의 적나라함을 영화 초반에 보여준다.  

    

천재지변으로 황궁 아파트 외의 지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파괴되지 않은 황궁 아파트로 몰려드는데, 이들 가운데엔 평소 황궁 아파트 거주민을 얕잡아보던 드림팰리스 거주민이 대다수다. 황궁 아파트의 구조를 살펴보면 대번에 복도식 아파트임을 알 수 있는데, 복도식으로 만들어진 아파트가 특정 지역의 구옥 아파트가 아닌 이상 최고가 아파트로 자리매김하긴 어렵다. 카스트로 치면 바이샤 거주지에 브라만 또는 크샤트리아 계급의 사람들이, 또는 크샤트리아 계급 거주지에 브라만이 대거 피난 온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황궁 아파트 거주민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둘 중 하나다. 이타심을 발휘해 황궁 아파트 거주민을 업신여기던 피난민이라 하더라도 인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들을 품어주던가, 아니면 이기심에 입각해 피난민과의 동거를 거부하던가 하는 둘 중 하나의 선택에서 황궁 아파트 거주민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말이다.    

  

전자를 택한다면 황궁 아파트 거주민은 21세기판 ‘선한 사마리아인’의 궤적을 밟는다. 비록 재난 이전에는 황궁 아파트 거주민보다 경제적으로 낫다는 이유만으로 얕잡아보던 드림팰리스 거주민이라 할지라도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한다는 인도주의적인 가치관을 실현함으로 도덕적 우월성을 피력할 수 있다. 이외에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선 출애굽기의 흔적을 유추할 법한 상징이 담겨 있다.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에서 유태인과 이집트인을 구별하기 위해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는 유월절 의식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영화에선 비틀어진 방식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황궁 아파트 거주민이 후자의 선택, 평소 자신들을 업신여겨오던 드림팰리스 거주민을 내쫓는 선택을 한다면 이기적인 선택, 살아남기 위해 타자를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타자의 악마화’가 정당화해야 한다. ‘타자의 악마화’는 일찍이 할리우드 영화가 애용하던 공식이다. PC주의가 서구에 만연하기 이전에는 동양의 액션 영웅 이연걸이 할리우드에 눈도장을 찍기 위해 주인공인 멜 깁슨을 괴롭히던 악당 역할을 연기해야만 했다. 장쯔이 역시 마찬가지다. ‘러시아워 2’에서 장쯔이 또한 할리우드가 구가하던 ‘타자의 악마화’라는 공식을 피하진 못했다.     

황궁 아파트 거주민이 타자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 전자, 타자를 품어주는 선택을 한다면 박보영이 연기하는 명화의 인도주의적인 가치관과 부합한다. 반대로 후자, 타자를 악마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해도 아파트 주민들이 이기주의적인 사고관에 고착됐다고 마냥 폄하할 수만은 없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표현처럼 아파트 주민이 가지고 있는 식료품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초반 전개, 그러니까 앞에서 상술한 황궁 아파트 거주민들의 선택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의 이기주의적이냐 이타주의적인 선택에 대한 물음이다. 이들이 설사 이기주의적인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황궁 아파트 거주민의 생존과 맞닿는 실존적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중후반부 드러나는 전개는, 현재 전세 사기꾼에 의해 피눈물을 흘리는 부동산 사기 피해자의 아픔에 대한 현실적 접점이란 점에 있어 적절한 시의성을 갖추기도 한다.  


스포일러라 구체적인 상술은 현재 시점에서 피력하기 어려우나 '대중적 파시즘'이란 관점으로 분석해 보더라도 시의적절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대중적 파시즘에 의해 박서준 배우가 연기하는 민성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어떤 캐릭터로 변모하는가를 바라보노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마냥 장점만 갖추었다고 보긴 어렵다. 몇몇 설정이나 인물 전개에 있어선 고개를 갸우뚱하게끔 만드는데, 김도윤 배우가 연기하는 도윤이란 캐릭터에 대한 묘사를 보다 면밀하게 공들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엄태화 감독의 친동생인 엄태구 배우의 활용에 있어서도 의문부호를 갖게끔 만들었다. 연기력에 있어서 아쉬움이 없는 배우임에도 엄태구 배우의 비중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개연성에 있어 의구심이 드는 설정 오류가 몇몇 있었는데 그중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법한 부분으로만 지적한다면, 영화 속 황궁 아파트는 천재지변 가운데 놓였기 때문에 전기가 들어올 수 없다.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 등의 대규모 전원을 공급받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명화가 사용하는 무전기, 마이크 등은 자가 발전으로 이용 가능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영화 후반부 전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전자기기는 엄연히 전기가 충분히 들어오는 환경에서만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음에도, 영화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설정에만 치중한 나머지 전기가 통하는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시피 하는 오류가 보인다.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해당 전자기기는 무용지물이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해당 층 입주민 누구나 모두, 일찍 알아차렸을 법한 설정 오류다. 지금 지적하지 않은,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연출적 단점마저 추가로 지적한다면 후반부의 영화 전개는 납득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고 만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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