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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 허 플레이스’ 길해연-윤다경

선이라고 베푼 것, 자칫 폭력성 잠재될 수 있어

다른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리 <인 허 플레이스>에는 주인공의 인명, 고유명사가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여자’와 ‘엄마’, 엄마의 딸인 ‘소녀’라는 세 명의 여자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불임에 시달린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여자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은 아이를 입양하는 일.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여자의 반대편에는 아이를 가졌지만 키울 수 없는 소녀와 엄마가 있다. 소녀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만일 아이를 낳고 키운다면 소녀와 엄마는 ‘미혼모’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주변을 의식하며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여자와, 아이를 낳고 나서는 결혼 전에 아이를 가졌다는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하는 엄마와 소녀의 이해관계는 이렇게 맞아떨어진다. 과연 이 세 명의 이해관계가 영화 속에서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에 대해 관객은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인 허 플레이스>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처럼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관심을 가진 영화에 속한다. 다양한 해외영화제가 <인 허 플레이스>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물론이려니와, 여자를 연기한 윤다경이 작년 아부다비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영화가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리기도 했다. <인 허 플레이스>에서 엄마를 연기한 길해연과 여자를 연기한 윤다경을 충무로에서 만났다.      


-<인 허 플레이스>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길해연: “해외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 영화를 만든 알버트 신 감독이 독특한 시각으로 영화를 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흔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미스터리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절제된 연출을 보여준다. 관객으로 하여금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통제력도 다른 영화와 차별화된 연출이라고 본다.      


알버트 신 감독은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졌음에도 서구적인 방식을 합칠 줄 아는 재능을 가진 배우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분명히 한국 영화이면서도 외국 영화의 뉘앙스를 풍긴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런 시각의 다양성 때문에 외국의 영화제들이 주목하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다.”     

-해외 관객의 반응은 어땠나.

길해연: “<인 허 플레이스>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갔기에 분명히 외국 관객에게는 외국 영화로 보인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상영했을 때 관객이 자국인 스페인 영화처럼 같이 호흡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스페인 관객이 받아들이는 호흡이 외국 영화를 감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노인 관객도 스토리와 내용을 ‘아름답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한국 같으면  ‘감동받았어’ 할 표현을 그들은 ‘울었다’고 표현하더라. 숨겨진 이야기를 영화가 들춰냄으로 외국 관객이 영화 속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윤다경 씨는 아부다비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윤다경: “수상 후보로 낙점되었을 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고 믿기질 않았다. 영화를 찍을 때만 해도 외국에서 수상하는 건 고사하고 같이 찍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찍었는데 토론토 영화제가 이 영화를 주목하면서부터 다양한 해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주목하는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딸을 보기에는 ‘쟤는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아직도 고생하는 거 아닌가’ 하고 염려하신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님에게 선물을 드린 것만 같아서 감사했다. 여우주연상이 결정되었을 때에는 한국에서 드라마를 촬영하던 중이었다. 출국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던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저를 대신하여 상을 받았다.     


제가 길해연 언니랑 작업했다 하면 상을 받는 복이 있다. 전에 서울연극제에서도 해연 언니랑 함께 작업한 적이 있는데 연기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이번 영화도 함께 작업했는데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거다. 함께 작업했다 하면 상을 가져다주는 언니라 해연 언니는 저의 ‘뮤즈’다.”     

-캐릭터들이 다른 영화와는 달리 이름이 없다.

길해연: “알버트 신 감독은 캐릭터에 붙이는 이름 대신 ‘걸’과 ‘우먼’, ‘마더’라는 호칭을 붙였다. 특정한 인명을 붙이는 게 아니라 소녀와 여자, 엄마라는 보편성을 갖고 역할에 접근하게 만든 것이다.”       


-극 중 길해연 씨의 딸은 결혼하기 전에 임신을 했다. 딸이 낳은 아이를 입양시켜야 하는 엄마의 심정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길해연: “딸이 낳은 아이를 엄마 마음대로 입양시킨다는 건 분명한 월권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만일 제가 그 입장이라면 극 중 엄마처럼 마음대로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영화 속 캐릭터는 만들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엄마의 행동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쉽게 울거나 분노할 수 없었다. 연기하면서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연기를 했지만 울 수조차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만 같다.      


인간은 최선을 다해 선택하지만 선택과는 다른 최악의 결과가 나타날 때가 있는데 그게 영화 속 엄마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다했다고 본다.”     


-<인 허 플레이스> 당시 몸이 좋지 않았다.

윤다경: “온몸이 가려워 하루 종일 긁어야만 했다. 얼굴은 빨간 사과처럼 혈관이 솟아있었다. 어디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병원을 가도 ‘면역력이 떨어졌나 봐요’만 하고 구체적인 병명조차 내리지 못했다. 외부인이 보면 단순한 피부병일 수 있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병명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앓았던 피부병을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연기한 극 중 여자와도 닮은 점이 있다. 영화 속 여자는 최선을 다해 모든 걸 추구했지만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건 여자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가 아이를 입양한다는 선택을 가진다는 영화 속 설정이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상황과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최선을 다해 무언가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불행이 닥쳤을 때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인 허 플레이스>를 연기한 배우의 입장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를 본다면.

길해연: “미숙한 대상에게 자신들이 선의를 베푼다고 생각하는 캐릭터가 엄마와 여자다. 여자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엄마와 소녀에게 돈도 주고 선의를 베푼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입장에서도 딸에게 ‘결혼도 하지 않은 네가 어떻게 아이를 키우니? 나중에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잘 키워줄게’ 하고 부추긴다.      


영화는 이들의 선택이 옳은 결과를 낳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서로가 선이라고 베푼 것 속에는 캐릭터의 은근한 폭력성이 잠재되었다. 관계 가운데서 갑과 을이 만들어지고, 내 딸임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여자에게 빼앗기는 관계가 보이지 않게 형성된다.      

시나리오를 보며 느낀 게 있었다. 그건 인간이 얼마나 선의의 포장을 하고 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관객으로 하여금 내가 선택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가 <인 허 플레이스>의 미덕이다.”     


윤다경: “세 명의 캐릭터의 시선에 따라 관계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 시나리오를 맨 처음 보았을 때의 매력이었다. 누군가를 판단함에 있어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에 대한 가치 기준에 대한 통찰이 영화에 담겨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양육이라고 본다.      


<인 허 플레이스>가 아름다운 점은 사람들이 누가 옳고 그른 판단을 하는 가운데서도 자연은 이런 인간들의 모든 행동을 묵묵히 품어준다는 점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낳고 키운다는 혈연 중심의 관계보다 확장된 관계도 인상적인 대목이다.      


자신 안에 있는 절대적인 선함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지만 관계 가운데 숨어있는 진실을 직면할 때, 우리 안의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사진: 홀리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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