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매그니피센트7’ 백인 사회에 대한 스크린의 반동

할리우드 영화에서 황인종은 은연중에 ‘인종차별’을 받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정지훈)나 성룡이 아닌 이상, 무술 액션의 대가인 이연걸이나 장쯔이는 백인 주류 사회에 위협을 가하는 악당으로 할리우드라는 관문에 노크했어야만 했다.      


한국 영화배우 이병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및 <지.아이.조> 등에서 그는 빛의 사도와는 거리가 먼 어둠의 사도 역을 연기해야만 했다. 이랬던 이병헌이 이번에는 처음으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선한 배역을 맡앗다. <매그니피센트7>을 통해서 말이다. 에단 호크가 연기하는 굿나잇의 절친인 빌리 락스를 연기하는 이가 이병헌이다.     

<고스트 버스터즈>가 젠더 스와프를 통해 주인공의 성을 남자가 아닌 여자로 바꿔놓았듯 <매그니피센트7>은 주인공의 인종을 뒤바꿔놓는다. 율 브린너가 열연한 원작의 주인공을 이번에는 흑인인 덴젤 워싱턴이 연기함으로, 백인 주인공이 흑인 주인공으로 레이스 스와프(인종 뒤바꿈. Race swap)가 영화 안에서 일어난다.     


원작 <황야의 7인>을 보면 알다시피 원작 영화의 플롯은 이방인 용병 일곱 명이 한 마을을 구한다는 전개를 갖는다. 리메이크 영화가 백인 주인공이 아닌 레이프 스와프를 하다 보니 흑인 주인공이 백인 마을을 구한다는 전개, ‘블랙 메시아니즘(Black Messianism)’이 일어난다. 악당이 지배할 위기에 처한 백인 마을을 그 마을 사람도 아닌 이방인, 흑인이 구원하는 블랙 메시아니즘이 영화 안에서 태동함을 읽을 수 있다.     


사실 흑인이 구원자 역할을 하거나 주인공의 지적 각성을 일으키는 각성자 역할을 하는 건 새삼 이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혼자 각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이 있었기에 네오의 각성이 가능했는데 모피어스는 네오나 사이퍼와 같은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었다.      


짐 캐리가 주연한 <브루스 올마이티>에 등장하는 신은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가 고착화시킨 고정관념, 백인 신이 아닌 흑인 신(모건 프리먼)이었다. 흑인이 선각자 혹은 전지전능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었기에 <매그니피센트7> 속 블랙 메시아니즘 역시 이런 흑인 선각자 영화 계보의 바통을 변형해서 이어받은 셈이다.     

블랙 메시아니즘의 발현은 도서 <세상과 나 사이>가 지적한, 인종차별이 만연하는 미국의 현실에 대한 스크린의 반발로도 읽을 수 있다.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단지 검은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백인 피의자보다 경찰에게 체포되기 쉽고 총격을 받기 쉬운 이들이 흑인이다.      


백인 우월주의에 의해 차별받는 미국 내 흑인의 사회적인 지위를 스크린에서나마 위로받고자 하는, 아니 백인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블랙 메시아니즘은 흑인이 자주권을 갖는 것을 넘어서서 백인의 가디언, 보호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백인 주류 사회에 대한 스크린의 반동(反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스

매거진의 이전글 ‘도리안 그레이’ 창작뮤지컬의 흑역사, 대체 언제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