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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그 무엇이 송강호를 변하게 했나

‘군함도’와 함께 올 여름 개봉하는 한국영화 빅2 가운데 하나인 ‘택시운전사’가 언론에 공개됐다. 대개의 언론시사는 영화가 개봉하기 일주일 전이나 열흘 전에 진행된다. 이에 비해 ‘택시운전사’는 8월 2일 개봉예정작임에도 일찌감치 언론과 일반에게 공개함으로 입소문을 타는 전략을 택한 작품이다. ‘택시운전사’와 ‘군함도’ 두 작품 모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기에 재미와 오락성만 추구하기보다는 역사적 진중함을 관객에게 묻는다.     


‘꽃잎’이나 ‘화려한 휴가’ 등 기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사건 ‘안(內)’에 있는 당사자가 이야기를 진행했다. 이에 반해 ‘택시운전사’는 독일인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와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분)이라는, 광주민주화운동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건 ‘밖(外)’ 외부인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이끈다.      

만섭이 광주 시민이 아닌 서울 사람이라는 외부인인 만큼 주인공이 역사적인 격동에 휘말리는 동기에서도 기존의 5.18을 다룬 영화 속 주인공과는 차이점이 있다. 광주민주화운동과는 상관없는 만섭이 5.18이라는 격동의 현장에 개입하는 계기는 ‘먹고사니즘’이다. 월세를 4개월 차 밀린 택시운전사에게 서울에서 광주까지 왕복 운전만 하면 당시로서는 거금인 10만원을 지불하겠다는 독일인은 호구 고객이자 밀린 월세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만섭은 평소 대학생에게 불만이 많던 캐릭터다. 대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한다고, 배가 불러 데모를 한다고 믿던 기성 세대였다. 동시에 의리라고는 조금도 없는 기회줘의자였다. 힌츠페터가 광주 대학생 재식(류준열 분)을 트럭에서 인터뷰할 때 만섭이 힌츠페터를 떼어놓기 위해 꽁무니를 빼는 시퀀스는 그 한 사례에 불과하다.      


젊은 세대를 못마땅해 하는 꼰대이자 기회주의자 만섭이라는 타자가 기존에 갖고 있던 삶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계기는 광주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비극을 직접 목도하면서부터다. 만석이 서울에만 있었다면 당시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은 폭도들이 일으킨 폭동을 정당한 공권력이 진압하는 줄로만 알았을 거다.   

   

하지만 힌츠페터라는 고객 덕에 5.18이라는 역사적인 상흔을 직접 목격한 만석은 ‘먼저’ 데모를 해서 진압당하는 게 아니라 그릇되고 몹쓸 공권력의 폭압이 민주화항쟁 ‘이전’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보도통제에 의해 조작당한 전(前)이 서울에 있을 때의 만섭이라면, 이와 반대로 후(後)는 광주에서 본 것이 실은 공권력의 만행에 의해 저질러진 참상이라는 걸 깨닫는 만섭의 인식의 변환을 야기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게 있다. 만섭이 광주에서 보고 경험한 일련의 항쟁으로 인해 전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전의 만섭이라면, 이기심에 경도된 만섭이었다면 고장 난 택시를 수리하고 나서 힌츠페터를 나 몰라라 한 채 서울로 내뺏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광주의 진실을 경험한 후의 만섭은 서울에서 살던 대로의 이런 이기주의적인 삶의 양태를 버린다. 타인의 아픔을 경원시하지 않고 신변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광주로 다시금 운전대를 돌린다.      


서울에서의 삶의 태도와는 확연히 달라진 만섭의 이런 태도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풍크툼(punctum)’으로 분석 가능하다. 풍크툼은 롤랑 바르트가 창안한 개념으로 라틴어 ‘푼크티오넴’에서 유래한 용어이자 바늘이나 창처럼 날카로운 것에 찔린 상처를 의미한다. 풍크툼이라는 상처는 일상적인 경험에서 얻는 평범한 상처가 아니다. 풍크툼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강렬하면서도 예리한 상흔이다.  

 

만섭이 광주에서 겪은 5.18이라는 상흔은 무자비한 공권력이 무고한 시민에게 가한 국가적인 풍크툼이었다. 동시에 이 풍크툼은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상흔으로 자리매김한다. 만섭이 서울에서는 약삭빠르게 기회주의적인 측면으로 처세했다면, 5.18이라는 풍크툼을 겪은 이후의 만섭은 서울에서의 기회주의적인 처세를 포기할 만큼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생의 태도가 전인격적(whole personal)으로 달라졌다.      


월세를 걱정하던 평범한 소시민적 자세에서 벗어나 힌츠피테를 위해 달려가는 만석의 질주는 5.18이라는 풍크툼에 의해 야기된 만섭의 자의식의 변화, 전인격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힌츠페터는 광주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저널리즘에 충실한 캐릭터기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변함없는 신조의 캐릭터다.     


이에 비해 영화 초반부에는 먹고사니즘을 걱정하던 소시민이자 기회주의자적인 캐릭터이던 만섭은 5.18이라는 풍크툼을 통해 이타주의적이자 범시민적인 시야를 갖는 전인격적인 변화를 겪기에-힌츠페터보다 심리적 변화를 보여주는 스펙트럼이 다양한 캐릭터라고 평가할 만하다. ‘밀정’에서 송강호와 공유를 괴롭히던 인상적인 악역을 연기한 엄태구가 이번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찾아내는 것은 ‘택시운전사’ 속 이스터 에그와도 같은 숨겨진 재미다.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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