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녀공학 기숙사 학교에 다녔습니다. 취침 점호가 끝난 뒤에는 사감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방을 옮겨 다니며 친구들과 잡담을 하는 게 하루 일과의 마무리였죠. 이야깃거리는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핫한 래퍼의 신곡, 선생님 뒷담화, 그리고, 가장 흥미진진했던, 좋아하는 여학생들 이야기.
제 친구는 짝사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과도해 보일 정도로, 오늘 있었던 그 여학생의 모든 행동과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는, 항상 '좋아 죽겠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며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 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봤을 땐, 그거 양성피드백이야."
양성 피드백(Positive feedback)이란, 시스템의 출력이 입력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피드백을 의미합니다. 마이크를 스피커 가까이 가져다 대면 '삐-'하는 아주 큰 소리가 나는 것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마이크에 들어간 조그만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몇 배로 증폭되어 나오고, 그 소리가 다시 마이크로 들어가 증폭되는 과정을 순간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스피커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죠. 이것이 양성 피드백입니다.
하울링 현상 또한, 임산부의 출산 시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분비 작용도 양성 피드백에 해당합니다. 분만 시기가 되면 옥시토신이 분비됨으로써 자궁의 수축을 촉진하고, 이것이 진통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 진통은 다시 옥시토신의 분비를 유도함으로써 더욱 강하게 자궁을 수축시킬 수 있도록 합니다. 분만을 성공시키기 위해 인체가 개발한 획기적인 시스템이죠. 일상생활에서 예시를 찾아본다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선순환과 악순환 모두가 양성 피드백에 해당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다시 좋은 원인이 되거나, 나쁜 결과가 다시 나쁜 원인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마음도 양성피드백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묶고 온 그 여자애의 머리가 내 마음속에 새겨진 다음에는, 그 '새김'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게 되는 것. 분명 사소한 일인데도, 그로부터 피어난 내 생각이 다시 내 생각을 먹으며 거대하게 자라나는 것. 저는 그 친구의 모습에서 양성 피드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 친구가 실제로 좋아했던 것은 그 여자애가 아니라, 그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의 생각이 빚어낸 이미지에 불과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조금은 삭막한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 선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형렬의 눈을 쳐다보고 그의 이마를 비비는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이모가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또 비벼대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연애감정이었다."
설령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내 안의 양성 피드백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저는 그것들이 마음에 듭니다. 아마도 저는 감정의 거짓말에 유쾌하게 속아 넘어 가 줄 수 있는 여유를 찾고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