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든 순간
“뭐 하고 있어?
잘 있어?
밥은 먹었어?”
우즈벡 남편은 하루에도 여러 번 전화를 걸어 이렇게 안부를 묻는다.
일이 끝날 때도, 이동 중에도, 잠시 쉬는 틈에도 먼저 상대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람.
10년 가까이 함께 살았지만 그의 예의와 다정함은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고, 언어는 조금 서툴러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따뜻해 그런 전화는 늘 내 일상에 잔잔한 평온처럼 머무른다.
그런데 아주 가끔, 정말 드물게 남편이 중간에 말을 멈추고 약간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자기… 안 좋은 소식이 있어”라고 말하면, 나는 그제야 심장이 멈추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순간이지만 가슴 아래로 ‘덜컥’ 하고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기분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고, ‘이번엔 또 누구의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말은 단 한 번도 가볍게 들린 적이 없다.
결혼하고 처음 맞았던 가족의 죽음, 시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고는 타국에서의 삶이 가진 현실을 단숨에 밀어붙였다. 임종조차 지켜드리지 못한 며느리로서 한없이 부족하고 죄송한 마음만 남았고, 그런 나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 시간을 남편은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가끔 마음 한쪽을 아리게 한다.
그 뒤로 할아버지, 사촌 형,
그리고 나를 끔찍이 예뻐해주던 막내 이모까지, 아직 젊고 건강해 보였던 사람들마저 잇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올해는 결국 이모부까지 우리 곁을 떠났다.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단숨에 갈라놓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즈벡이라는 나라의 시간은 한국과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잦은 이별, 너무 빠른 생의 끝, 너무 자주 울리는 부고 소식. 왜 저들은 그렇게 갑자기 떠나는 것일까, 단순한 의료의 문제인지, 환경 때문인지, 혹은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두 세계의 온도 차이가 내 마음 어딘가를 깊고 묵직하게 흔들었다.
친정아버지는 심장병과 고혈압, 당뇨를 안고 살아가시며 큰 수술을 버텨내신 뒤에도 꾸준히 약을 드시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전화라도 더 자주 드리고 작은 용돈을 더 챙겨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우즈벡 가족들은 건강해 보였던 분들마저 예고 없이 떠나가고 있으니, 두 세계의 결이 너무 달라 때때로 혼란과 허무함까지 밀려왔다.
그런 대비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무섭다’는 의미보다는 죽음이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 있고 별것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사실이 오히려 삶을 더 또렷하고 선명하게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왜 이렇게 바쁘게 달려왔는가,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이 방향은 진짜 내가 원하는 삶과 맞닿아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어느 순간부터 틈만 나면 떠올라 나를 끝없이 붙잡았다.
사실 요즘 나는 꽤 오랜 슬럼프 속에 있었다.
작은 목표들을 하나씩 이루며 안정된 일상을 살아가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 길이 맞나?’ 하는 의문이 자꾸 고개를 들었고, 생각은 많아지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부고 소식을 듣기 직전까지도 나는 공기가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힘이 없었고, 책을 억지로 읽거나 일을 억지로 하며 하루를 겨우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또 그 말로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 안 좋은 소식이 있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장은 쿵 하고 떨어졌고, 남편의 이모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슬픔보다 먼저 찾아온 건 ‘정지’의 감각이었다.
그동안 내가 붙잡고 있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의미를 잃어버린 듯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고, 돈, 집, 이민, 아이들 교육—지금까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중요하다고 믿어온 것들이 이날만큼은 모두 너무 멀고 흐릿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때 당장 중요한 건 그 어떤 목표도 아니었고, 그냥 ‘삶’이라는 감각 그 자체였다.
그날 이후 나는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처럼 지내고 있다.
바람이 불고 있어도 돛을 올릴 힘이 나지 않는 배, 물결이 흐르고 있지만 나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배. 예전 같았으면 ‘다시 정신 차리자, 이건 슬럼프일 뿐이야’ 하고 억지로라도 무언가를 하며 방향을 잡으려 했겠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멈춘 시간이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동안 남편을 보며 종교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미뤄왔던 내가, 이 멈춤의 순간에 처음으로 기도하는 법을 찾아 적어보았다. 어쩌면 이것이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움직임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에는 때때로 방향을 잃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결국 또 다른 방향을 열어주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아직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동반자가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지금 겪는 이 멈춤 역시 내 삶을 이루는 자연스러운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용히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 나는 바다 위에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조용한 물결 위에서 내 마음이 다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알려줄 때까지, 성급하게 방향을 정하려 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려보려 한다. 그리고 멈춰 있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던 순간들도 이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죽음을 매일 떠올리게 만드는 요즘,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가치가 결국 ‘가족’이라는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달으며 그 평범한 하루에 조용히 감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