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주방 불을 켜면 보이는 것들
아침에 주방 불을 켜면 전날 밤의 흔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뜯어놓은 과자 봉지, 피스타치오 껍질, 반쯤 남은 초콜릿들. 아직 식당 운영에 적응 중인 남편은 하루 종일 안절부절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정작 자기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날이 많다.
바빠서 못 먹는 게 아니라 정신없이 하루를 버티다 보면 먹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리는 사람.
그래서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어느새 1일 1식이 자연스러워져 버린 남편의 일상은, 집에 돌아와 과자 몇 입으로 하루를 넘기는 모습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흔적을 보면 “또 제대로 못 먹고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그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묵직한 무게처럼 가슴 한쪽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종교적인 이유로 먹을 수 있는 재료가 많지 않다. 돼지고기는 기본이고, 소고기나 닭고기도 아무거나 먹을 수 없으며, 알코올이 들어간 조미료도 조심해야 한다.
외식 메뉴는 자연스럽게 한정되었고, 그나마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먹으러 가도 만두나 고명부터 확인해야 했으며, 어느 날은 서비스로 들어 있던 작은 소시지 하나 때문에 아예 먹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10년을 살다 보니 성분을 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것과 못 사는 것’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분류될 만큼 익숙해져 갔지만, 이 익숙함조차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 가족의 식탁을 더 좁히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이 늦은 밤 배고픔을 과자 몇 개로 채우는 모습, 늦잠으로 인해 아이의 사원 도시락을 챙기지 못해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참치 삼각김밥마저 품절돼 결국 빵 하나 들고 학교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조여오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반복해서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가족의 그릇이 비어 있는데도 컴퓨터 앞에서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돈을 벌고 목표를 향해 달리며 ‘열심히 사는 중’이라고 믿으면서도, 엄마로서 아이들 끼니 한 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계속 나를 흔들었다.
배달 음식도, 편의점 도시락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이 스스로 버텨내는 모습은 내게 더 큰 자괴감을 주었고, 나는 점점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 즈음 시댁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까지 겹치며 삶을 대하는 자세,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과연 맞는가에 대해 깊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택하며 시간을 흘려보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에도 괴로움은 멈추지 않았고ㅗ 오히려 그 ‘멈춤’조차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지키고 싶은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이 조용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결국 아주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가족이 먹는 식탁부터 다시 정비해야겠다.
가장 기본적인 자리,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곳이 바로 여기라는 걸 뒤늦게야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코인 육수 대신 다시마를 사들였고, 아이들과 시어머니, 남편 모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3대가 함께 사는 이 집에 맞는 할랄 집밥을 다시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시작이지만, 이 집을 다시 세우는 방법은 어쩌면 늘 식탁 위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 내가 지키고 싶은 삶부터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