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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내가 지키고 싶은 삶부터 다시 시작한다

by kelin

식탁을 다시 세우겠다고 마음먹은 날, 나는 조용히 주방 불을 켰다.

시간도 많지 않았고 갑자기 요리가 좋아진 것도 아니었지만,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단순한 마음 하나가 나를 움직였다. 마음이 한 번 기울자 육수 하나도 대충 만들고 싶지 않아졌고, 다시마와 표고버섯, 무를 넣어 반나절 불려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 부드러워진 재료들을 하나씩 손질해 냄비에 담았다.

재료를 자르고 정리하고, 반찬을 하나씩 차려내는 동안 하루는 예전보다 훨씬 바빠졌고 몸도 더 피곤해졌지만, 손을 움직이는 그 시간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걱정들이 조용히 풀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냄비에서 올라오는 김 사이로 불안이 조금씩 흩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 무렵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집안에 퍼진 요리 냄새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건 늘 아이들이었다. 큰아이는 “엄마가 해준 게 제일 맛있어”라며 밥을 두 그릇 비웠고, 계란프라이만 찾던 둘째도 내가 만든 고기요리와 국을 먹으며 뚝딱 두 그릇을 비웠다. 오랫동안 저체중이던 아이의 표정이 전보다 밝아진 걸 보는 순간, 이 작은 변화가 내 마음을 얼마나 크게 움직였는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돌이켜보니 나는 늘 요리가 자신 없고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에 가까웠고, 레시피가 넘쳐나는 시대에 부족했던 건 정보가 아니라 정성이었다는 걸 아이들이 먼저 알려준 셈이었다.

남편의 얼굴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살짝 묻어나는 기대감, 식탁 앞에 앉아 말없이 짓는 표정, 반찬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우는 모습까지. 평생 밥 차리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 늦게야 마음을 내준 것이 미안해지기도 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가 스스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오래 비워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이게 됐다. 누군가 늦게 들어오고 누군가 먼저 잠들어도, 이 집에는 다시 ‘기다리는 식탁’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든든해졌다.

그래서 나는 일을 놓지 않으면서도 육아를 포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리고 그 사이에 집밥을 어디에 어떻게 놓을 수 있을지 나만의 리듬을 천천히 찾아가는 중이다. 아직은 솔직히 쉽지 않고, 하루를 마칠 때면 버거워서 잠시 멈추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 속도대로 천천히, 지금의 이 작은 시도가 결국 우리 가족의 하루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주길 바라며 한 걸음씩 배워가고 있다.

운동과 비타민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매일 우리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는 따뜻한 밥 한 끼라는 걸 요즘 들어 더 자주 느낀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가족의 건강한 얼굴이고, 그들을 돌보는 일은 어쩌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또 한번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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