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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 Apr 26. 2021

아토피라서 다행인 줄 알아

질병은 메리트라네


  아토피는 나의 개성. 질병은 메리트.


  나이가 한자릿수인 어릴 때의 나는 내성적이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모두 합쳐도 덩치가 큰 편에 속하고 힘이 셌다. 친구도 많고 주도적인 역할도 곧잘 도맡았기 때문에 어디서나 눈에 띄는 씩씩한 여자애였다. 운동도 공부도 무난하게 잘했으므로 ‘피부병’ 하나쯤 있다고 주눅 들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피부질환으로 학교에서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라는 엄마의 걱정은 보기 좋게 비켜갔다).


  그야말로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내 아토피 증상으로 가장 힘든 사람은 엄마였다. 물론 실질적으로 생활이 불편한 건 아토피를 앓는 바로 나였지만 말이다. 엄마가 가슴 아파하고 자책하는 만큼 내 증상이 줄어들었다면, 아마 난 최고의 탄력과 미백을 자랑하는 천하제일 피부미인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아토피’라는 병명을 알게 된 후 나의 정체성은 ‘아토피 있는 애’가 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반팔 티셔츠 아래 드러난 팔뚝의 울긋불긋한 아토피 상처를 보고 어김없이 그것이 무어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례한 질문인데 그때는 헤헤 웃으며 일일이 잘도 다 답해줬다. 내 친절한 설명을 들은 어떤 사람들은 그 뒤로 날 만날 때마다 ‘어? 아토피!’ 하며 알은체를 했다. 물론 그게 좋았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아토피라는 것이 남과 구별되는 나의 개성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손해 볼 것도 없었다.


  내가 다닌 여자 중학교는 거대한 사립재단 소속이었다. 인문계 여고가 한 건물, 실업계 여고가 두 건물, 여자 중학교는 인원이 가장 많아서 커다란 두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지역에 사는 거의 모든 여자 중고등학생은 이 사립재단에 속한 학생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독보적으로 큰 규모였다. 심도 깊은 학문을 강력하게 추구하거나 그 반대인 학생들은 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다른 지역 학교로 진학을 했다. 여하튼, 도시 속의 또 다른 왕국 같은 이 공간 안에서 나는 ‘쇼트커트를 한, 뿔테 안경을 쓴, 아토피를 가진 여자애’로써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아이덴티티를 확립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이런 엄청난 미인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난 그냥 머리 짧고 눈 나쁜 여자애였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쩌다 이런 누추한 경상도 어딘가 변두리 지역 중학교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한 서울 말씨를 사용하는 젊은 여자 미술 선생님 한분이 계셨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미술 성적이 형편없는 것을 알게 된 선생님은 학생 모두가 미술과목 오답노트를 작성하여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 본인을 방문, 면전에서 틀린 문제와 정답을 암송하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아이들을 괴롭혔는데, 미술 문제가 어렵기도 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문제를 외우던 아이들이 어쩌다 더듬거리기라도 하면 선생님이 예의 그 톡 쏘아붙이는 서울 말씨로 면박을 주기 때문이었다.  


“빛의 3요소. 직선, 반사, 굴절. 콩테의 특징. 목탄보다 진하며 어 그리고......”

“목탄보다 진하고 또 뭐?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아직 못 외웠니? 너희 집 전화번호는 외우니?”


  예 쌤. 저희 집 번호는 당근 외우는데요. 살면서 콩텐가 뭔가를 은제 함 볼 일이 있습니꺼? 그러면 선생님은 이마에 꿀밤을 꽁 때리며(꿀밤을 때리는 것마저 서울스럽다. 경상도에서는 뒤통수를 치거나 촛대 뼈를 까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술이 뭔지 늬들은 모르지? 다시 완벽하게 외워 와. 아이들은 꿀밤 맞은 이마를 싹싹 비비며 치, 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사실 우등생이거나 나처럼 심약한 학생들이나 선생님과의 오답 외우기 과제에 장단을 맞출 뿐,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의 미션을 수행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쭈뼛쭈뼛 교무실 문 앞에 서서 선생님, 오답노트 검사받으러 왔는데요,라고 말하면 오호 그래? 반색하며 감동적이라는 듯 눈을 빛내시던 선생님을 보며 ‘이거, 모두가 해야 하는 숙제 아니었나? 공연히 나만 하는 건가?’라는 불안감과 함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얼렁뚱땅 넘어갔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 반에 사십 명은 족히 넘는 아이들이 학년마다 열 반 이상 있었으니, 각 학년에 사백 명이라고 적게 잡아봐도 우리 학교에만 중학생이 천 이백 명이나 있는 셈이었으니까. 미술 선생님이 담당한 학생이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2학년은 두 분 미술 선생님께서 다섯 반씩 나눠 맡아 수업하셨으니, 적어도 이백 명은 넘지 않았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암기력과 대담함 모두 결여된 나는 선생님 앞에서 정해진 수순대로 버벅거리고 얼굴이 빨개지고 평정심을 잃었다.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저, 그...... 이 구도에서는 소실점이......’ 틀린 미술 문제처럼 내 존재가 교무실 구석에 한 점으로 모여 소실되는 경험을 했다.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듯, 한편으로는 노력이 가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강한 ‘표준어’로 말씀하셨다.


“대체 왜 왔니 너는?”

“저, 죄송해요. 다시 할게요. 이 풍경에서 소실점은 두 개다. 왜냐하면......”

“너 팔에 이거 뭐니?”

“네? 이거요? 아토피요. 소실점은 물체를 투시하여 어..... 까먹었어요.”

“아토피가 뭔데?”

“피부병 비슷한 건데요. 모기 백 방 물린 것처럼 엄청 가렵고 아프고 그래요.”

“어머 불쌍해라. 되게 고생하겠다. 긁다가 피까지 났네?”

“......”

“너는 오답노트 통과시켜줄게. 아토피라니까 특별히 봐준 거야? 그거 있어서 다행인 줄 알아. 가 봐.”

“와! 감사합니다!”


  내가 너무 큰소리로 대답했기 때문에 교무실에 몇몇 선생님과 내 뒤에 ‘오답노트’ 검사를 받으려고 대기 중이던 다른 아이들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어려운 고개 하나를 넘었다는 사실에  순간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말을 듣느니 몇 번이고 버벅거리고 괄시당한다고 해도 제대로 과제를 해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그 반대이기도 하고.


교무실에서 교실로 돌아올 때 즈음, 들뜬 기분은 어느새 바닥으로 가라 앉았다.


  아토피 덕을 본 것은 인생을 통틀어 딱 이때뿐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꼭 한 번 더 있다. 골목길에서 불량학생, 소위 ‘일진’이라 말하는, 앞머리를 깻잎모양으로 붙이고 교복 치마도 다리에 쫙 달라붙게 입고 껌을 소리 나게 씹는 언니 무리(그들은 절대 개인으로 있지 않는다. 반드시 다수가 모여있다)가 말을 붙였을 때다.


"야, 야! 다리에 뭐 난 애. 니 몇 학년인데?"

"중 일인데요."

"와이고야, 니 다리에 뭐꼬? 담배빵이가?"

"아닌데요. 아토핀데요."

"야, 윽쑤 더럽네? 뭐꼬, 버짐 핀거가? 이거 옮는 기가?"

"옮기는 거 아닌데요. 이거 아토피......"

"마 됐다, 가라 가! 저런 아 삥 뜯어 뭐할 기고. 불쌍타 불쌍해."



  야호, 불쌍해 보인 덕에 두 번의 행운이 있었다. 하지만 아토피가 있다고 불행하지는 않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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