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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환 Apr 14. 2021

자유에너지 원칙과
마코프 블랭킷 모델 (3/4)

능동적 추론 과정으로서의 내면소통

자유에너지 원칙의 관점과 정밀정신의학 

예측 과정 (prediction process)을 뇌의 핵심적 작동 방식으로 파악하는 능동적 추론의 모델은 일반적인 뇌의 작동방식 뿐만아니라 조현병 등 정신 질환의 원인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능동적 추론 모델에 입각해서 정신질환의 원인과 치료 방법에 대해 설명하려는 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정신의학의 전통적인 관점은 인간의 뇌가 지각, 인지, 행위라는 세가지 정보처리의 과정을 순서대로 진행한다는 샌드위치 모델에 입각해 있었다. 이제 이 "낡은" 모델은 좀 더 구성주의적이고 행위주의적(enactivist)이면서도 재귀적인 상호작용과 역동적인 인과관계(dynamic causality)를 고려하는 새로운 예측 모델에 의해 급속히 대체되고 있다(Friston, 2017a). 

프리스턴의 능동적 추론 모델에 입각해서 조현병의 환각과 망상에 대한 설명이 처음 시도된 이래 (Fletcher & Frith, 2009), 다양한 정신질환을 뇌의 예측 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으로 파악하는 시도가 실제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정신질환은 결국 이미 지니고 있는 사전 믿음과 새로이 계속 유입되는 감각 정보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 것이라는 관점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뇌라면 감각 정보 중 무의미한 것이나 오류는 신속히 무시하고, 예측 오류에 따라 사전 믿음을 수정하여, 유의미하고 중요한 정보에 가중치를 두어 추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것이 바로 각종 정신질환이라는 것이다. 

예측 오류는 하향 예측과 상향되는 감각 정보 중에서 샘플된 유입 감각 사이의 차이다. 이 차이의 정보, 즉 예측 오류는 상위층으로 올라가서 최초 가설 (사전믿음)을 업데이트 시킨다. 추론하는 기계로서의 뇌는 상향 예측 오류와 하향 예측 간의 상호 교환을 통해서 환경과 세상에 대한 최선의 설명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한다. 이 때, 예측오류는 미처 설명이 되지않고 있는 가치있는 정보라 할 수 있다. 뇌에는 여러 감각 기관별로 다양한 종류의 감각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이 때 많은 종류의 예측 오류가 발생하게 되는데 뇌는 어떤 정보에 더 가중치를 두어 주의를 기울일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정확성"(precision)이다. 베이지안 브레인에서는 예측 오류는 보다 더 정확하고, 믿을만하고, 고품질의 정보다. 따라서 더 가중치가 주어지며 지각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Friston, 2017a). 

생리학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정확성 기반의 선택은 (즉 제대로 된 종류의 예측 오류를 선택하는 것은) 주의 이득 (attentional gain)과 관련된 시냅스의 이득 조절 기제에 의해서 매개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다양한 차원의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가장 단순하게는 고전적인 시냅스 기제에 관한 관점에서 논의할 수도 있고, 동시적 이득에 기반한 활성-억제의 균형 모델(억제 인터뉴론들에 의해 조절되어 재빨리 동기화하는 뉴런들에 의한 예측오류의 역동적 선택)로 설명할 수도 있다. 이는 계산신경학의 논리적 필요성과 뉴로바이올로지의 기제를 연결시켜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심리적 병리학과 병리적 생리학을 연결시켜주는 관점인 것이다 (Friston, 2017a).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자폐증은 한마디로 무의미하거나 노이즈에 불과한 감각 정보에 대해서 가중치를 줄이는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상태다. 그 결과 자폐증 환자는 중요하지 않거나 무의미한 온갖 감각정보에 대해서 모두 과도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Pellicano & Burr, 2012). 마찬가지 방식으로 감정과 관련된 예측 오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태가 곧 우울증을 유발시키고 (Chekroud, 2015; Schutter, 2016) 불안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Cornwell et al., 2017; Trapp & Kotz, 2016).  

프리스턴의 능동적 추론과 예측 모델은 이처럼 뇌과학자들 뿐만아니라 특히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다양한 정신질환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가능해졌을 뿐만아니라 진단과 치료에 관한 새로운 접근법도 열리게 된 것이다. 프리스턴 자신은 이를 "정밀정신의학(precision psychiatry)"이라 부른다 (Friston, 2017a). 그런데 이것은 일종의 중의법이다. 

정밀의료란 원래 진단과 치료에 있어 유전자, 환경, 생활 습관 등 개인의 특성과 이에 관련된 방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개인별로 정확히 진단하고 맞춤형 치료를 하는 새로운 의료 시스템을 의미한다. 2015년 미국 정부에 의해서 정밀의료추진계획 (precision medicine initiative)이 발표된 이후에 정밀의료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이에 따라 정신의학계에서도 정밀정신의학의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Gandal et al., 2016; Gratton et al., 2019; Sylvester et al., 2020). 

프리스턴은 "정밀(precision)"의 의미를 살짝 비틀어서 사용한다. 일종의 "말장난(wordplay)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Friston, 2017a). 정밀의료의 원래 의미는 개인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밀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프리스턴이 말하는 정밀정신의학은 뇌가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고도 정밀하게 처리하는가의 문제가 정신질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프리스턴은 자신이 말하는 정밀정신의학과 본래적 의미의 정밀의료 사이에는 사실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환자들은 개인별로 서로 다 다른 "사전 믿음"과 예측의 패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측의 패턴을 환자 개인별로 다 알아낼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어떠한 잘못된 추론을 환자가 뇌가 수행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측정하고 진단해낼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정밀정신의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유전자나 생활 패턴의 개인차만을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능동적 추론 과정에서의 개인적 특성을 파악해야 진정한 정밀정신의학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에너지 원칙에서 본 환각과 망상

자유에너지 원칙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안장애나 우울증 등 감정조절 장애는 물론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의 근본원인도 바로 능동적 추론 과정에서의 교란이다. 원래 조현병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정신과 의사답게 프리스턴은 조현병이 능동적 추론 과정의 이상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본다 (Friston, 2010). 이것이 조현병을 비롯해 여러 정신질환의 뚜렷한 생물학적 기전이 밝혀지지 않는 이유다. 실증적인 연구 결과들은 실제로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추론과정에 장애가 발견되고 있음을 보고 하고 있다(Jardri et al., 2017). 감각 정보와 사전 정보 (내부모델)사이에 순환적 추론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상향적 추론에서 순환이 발생하는 것은 양성증성과 관련이 깊고 하향적 추론에서 순환이 발생하는 것은 음성증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현병의 증상에는 음성증상과 양성증상 두가지 종류가 있다. 음성증상(negative symptoms)는 일반인에게는 존재하지만 환자에게서는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거나 결여되어 있는 증상으로 언어장애, 무동기증, 무욕증, 무감정증 등이 있다. 한편, 양성증상(positive symptoms)은 일반인에게는 나타나지 않지만 환자에게는 나타는 증상으로, 환각(halluciantion)과 망상(delusion)이 대표적이다. 

환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거나 듣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자꾸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든지 귀에 도청장치가 있어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것이 환청이고,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 환시다. 마코프 블랭킷 모델에 따르자면 감각상태에서의 능동적 추론 과정에서 이상이 생겨 예측오류에 대한 수정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경우에 이러한 장애가 발생한다. 감각상태는 유입되는 감각정보를 바탕으로 가추법적인 추론을 통해 지각편린을 생산해내고, 생산된 지각편린에 대해서는 새로이 유입되는 감각정보를 통해 에러들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러한 에러-수정 추측 모델에 이상이 생기게 되면 실재하지 않거나 왜곡된 지각편린을 생산하게 되며 이것이 환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Fletcher & Frith, 2009). 과거 정보를 바탕으로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생성모델은 유입되는 감각정보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업데이트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예측오류 정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보거나 듣는 것은 조현병 환자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건강한 일반인들도 늘 환각을 경험한다. 바로 꿈을 꾸고 있을 때다. 일반인의 뇌가 렘수면으로 전환될 때의 작동 방식은 조현병 환자의 뇌 작동 방식과 놀랄만큼 유사하다(Fletcher & Frith, 2009). 우리가 꿈속에서 경험하는 온갖 일들이 비논리적이고 환상적인 이유는 우리의 뇌가 깨어있을 때와는 달리 잠 잘 때에는 감각상태에서의 능동적 추론의 오류를 제어할 수 있는 감각정보가 몸으로부터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능동적 추론에 대한 오류 수정의 메카니즘이 작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꿈속에서는 마치 조현병 환자처럼 비논리적인 환각들을 경험하게 된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보통 눈을 통해 시각정보가 계속 유입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능동적 추론과 예측 오류의 최소화과정을 통해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그런데 깨어 있으면서도 눈을 감고 한참을 있으면 뇌의 생성모델은 계속 이러 저러한 이미지들을 늘 하던대로 계속 만들어내는데 이를 통제하거나 수정할 시각정보의 유입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즉 탑-다운으로 생성되는 이미지들은 바텀-업으로 유입되는 시각정보에 의해서 실시간으로 예측 오류의 수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새로운 시각정보가 유입되지 않으므로 뇌의 생성모델이 자유롭게(그야말로 자유에너지가 충만한 상황이다) 만들어내는 온갖 이미지들이 생생하게 "보이게" 된다. 눈을 계속 더 오래 감고 있을 수 있을수록 온갖 이미지가 보이게 마련이다. 

시험 삼아 눈을 감은 상태에서 졸지말고 집중해서 눈 앞에 무엇인가를 보려고 해보라. 무엇인가를 보려고 해야 마코브 블랭킷의 감각상태의 생성모델이 활발하게 작동한다. 보통 사람 얼굴이나 동물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기도 하고 화려한 색깔이나 다양한 종류의 빛이 보이기도 한다. 눈을 뜨고 있어도 한곳만 계속 바라보고 있어도 보는 대상물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움직이기도 하고 마루 바닥이 평면이 아니라 입체로 보이기도 한다. 이 때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눈동자를 움직이면 새로운 종류의 시각정보가 유입되어서 즉각적으로 예측오류의 수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지 말고 그저 마루바닥 한곳만 지긋이 집중해서 한참을 보면 전혀 달라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명상 수행을 하는 곳에서는 명상 수행시 눈 앞에 무언가 보이는 것이 "마구리가 끓는 것"이라 해서 안좋게 보기도 하고 혹은 "니미따가 뜨는 것"이라 해서 수행이 한단계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지표로 여기기도 한다. 니미따에 대해서는 뒤에서 수행에 대해 다루는 부분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눈 앞에 무언가가 보이는 것은 명상 수행의 효과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점만 우선 밝혀두려 한다. 명상 안하고 그냥 눈만 감고 있거나 완전히 깜깜한 곳에서 그냥 한참을 앉아 있으면 누군든지 이러저러한 이미지나 빛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상 자체와는 관련이 없고 다만 시각중추와 관련된 뇌의 능동적 추론 시스템과 생성모델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확률적 추론의 과정에 따른 생성모델의 결과라는 점에서 보자면 환각이나 니미따 뿐만아니라 상상, 꿈, 나아가 일반적인 지각도 모두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일반적인 지각과 차이가 있다면 꿈은 예측 오류에 관한 업데이트를 유입되는 감각 정보로부터 받지 않는 상태인 것이고, 명상 중에 이상한 것이 보이는 것은 유입되는 시각정보가 제한된 것이며, 환각은 이러한 예측 오류 업데이트 과정에 오류가 생긴 것이라는 정도일 뿐이다. 상상, 꿈, 니미따, 환각, 일반적인 지각은 모두 뇌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겨나는 확률적 추론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Clark, 2012). 이것을 달리 표현한 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다. 

환각이 없는 것을 보거나 듣는 것이라면, 망상은 헛것을 믿는 것이다. 부적절한 근거를 바탕으로한 굳은 신념을 지닌 상태가 곧 망상이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황당한 신념을 확고부동하게 갖고 있는 상태다. 망상을 지닌 환자들에게는 아무리 이성적인 논증이나 분명한 반박 증거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절대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이러한 망상은 거짓 정보나 잘못된 정보, 지어낸 이야기, 도그마, 착각, 환상 등에서 비롯된 잘못된 믿음과는 다르다. 

조현병 환자가 아닌 정상인들도 환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망상도 경험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황당한 "믿음"을 지녔다고 해서 곧 조현병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자신이 외계인에게 납치되었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도 있고 죽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도 있다. 수면과 각성 사이의 전이에 문제가 생겨서 이러한 환상적인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가설도 있지만 이들은 "환자"가 아니다. 이러한 황당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얼핏보기에 조현병의 양성 증상과 매우 비슷해보이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Fletcher & Frith, 2009). 

첫째는 이러한 믿음이 이들을 불행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경험"에 대해 자부심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외계인에 납치 되었던 사실을 주변에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즐거워하거나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믿음이 사회생활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지지하고 응원함으로써 오히려 더 활발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보통 조현병 환자들의 경우는 환각이나 망상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사회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 인간관계의 단절이나 심각한 갈등은 망상을 지닌 환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첫번째 특징은 두번째 특징의 결과에 불과하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이 있기에 자신의 경험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대가 아니다. 따라서 두가지 특징이라기보다는 한가지 특징이라 해야한다. 

양상증상을 보이는 환자들과 단순한 망상을 지닌 정상인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즉 정신질환 환자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판단기준은 망상이라는 증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망상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있다. 감정적으로 별로 괴롭지 않고 인간관계도 별문제 없이 유지하고 나아가 비슷한 망상을 지닌 사람들끼리 동호회를 만든다든지 해서 사회적 지지까지 받을 수 있다면 아무리 이상한 망상을 갖고 있어도 적어도 환자는 아닌 것이다. 즉 주변사람들의 수용여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타인들의 내부상태(X6)와 현저하게 다른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 경우가 곧 망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현저하게 다른 스토리텔링이 망상이냐 아니냐를 하는 것은 그 스토리텔링의 허황됨 자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가능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나의 스토리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정상인"이 된다. 주변사람들의 이런 지지 덕분에 자신이 지닌 이상한 망상을 자랑스럽고 신기한 귀한 경험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망상에 대해 자부심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공감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추론(스토리텔링)이 다른 사람의 추론에 얼마나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두 사람이 같은 망상에 사로잡히는 현상, 즉 감응성 정신병(‘folie a deux’)이다. 이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망상에 사로잡힌 환자의 망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공유하게 되는 현상이다. 보통 정신질환자와 가깝고 친밀하게 지내는 정상인에게서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망상 증상은 그 원인이 되는 환자의 망상이 치료되거나 혹은 두 사람이 서로 갈라서게 되면 사라진다. 한 사람의 추론이 다른 사람의 추론에 얼마나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망상의 확산은 집단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사실과 다른 비현실적 믿음이나 부적절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확고한 믿음을 망상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망상"을 지니고 살고 있다. 인류가 수천년동안 굳게 믿었던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믿음"은 과연 망상인가 아닌가. 긴장하거나 두려우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통해서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인류는 오랫동안 믿어 왔다. 이는 망상인가 아닌가? 영혼이 있다는 믿음이나 내세가 있다는 믿음은 또 어떠한가? 손금이나 사주나 궁합을 믿는 것은? 혈액형이 그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은? 참고로 그러한 황당한 믿음은 주로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만 널리 퍼져있다고 한다.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는 텅빈 공간이 있다. 원자는 아주 작은 핵과 더 작은 전자 외에는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한 원자로 이루어진 사물들을 보고 딱딱하고 고정된 "실체"라고 확고하게 믿는 것은 망상인가 아닌가? 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오는 직관적인 판단을 어느 정도 믿어야 하는가? 지구가 평평하다는 "관찰 결과"에 따른 믿음은 어떠한가? 땅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어디를 봐도 지구가 둥근 구형이라는 경험은 할 수가 없다. 끝없이 넓게 한없이 펼쳐진 들판 위에 서면 지구는 한없이 평평해 보인다. 사실과 다른 모든 믿음을 모두 다 망상이라고 한다면 인류는 수천년동안 망상에 뺘져있었던 것이 된다. 여전히 구형 지구가 거짓이고 평평한 지구가 진실이라고 확고부동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이 곧 과학적 사실과 부합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지구는 평평해보이지만 사실 구형이며, 태양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고, 엄마 아빠로부터 공평하게 반반씩 유전자 정보를 물려 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엄마에게서 훨씬 더 많은 유전정보를 물려받으며 (내 몸 세포 속의 수많은 미토콘리아의 유전자 정보는 100% 엄마의 난자 속에 있던 미토콘드리아로부터 온 것이다), 내 몸은 고정된 실체같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 숨 한번 쉴때 마다 많은 세포가 죽고 타시 태어나길 반복하면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존재고, 나 자신이 하나의 지속적인 실체같지만 사실 나에게는 여러 개의 셀프가 존재하고, 외부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보는 이미지들은 사실 내부모델을 투영해서 예측한 것의 결과인 것 등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의 감각시스템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한 진짜 모습을 지각하도록 진화되어 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왜곡해서 지각하도록 진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 몸의 생존을 위해서 이 지구라는 환경 속에서 움직이고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해다녀야 한다.우리의 감각상태는 그러한 목적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우주의 비밀이나 실체을 아는데 있어서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실체와는 다른 지각정보를 우리는 대부분 얻게된다. 땅은 평평하고, 해는 동쪽에서 뜨고, 사물은 고정된 실체로 이루어져 있고, 나와 사물은 분리되어 있고, 나와 다른 사람은 구분되고, 내가 인식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서의 "나"라는 단일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생존을 위해서는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효율성을 위해서 진화해온 지각과 추론의 과정에서 예측 오류를 최소화하는 메카니즘에 이상이 생긴 경우에 비정상적인 지각(환각)이나 비정상적인 신념(망상)을 갖게되는 것이다(Fletcher & Frith, 2009). 

역사상 존재해왔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온갖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신념은 망상과 어떻게 다른가? 다르지 않다. 인간에게 망상과 환각을 객관적으로 구분해낼 기준이나 방법이 있는가? 전혀 없다. 우주적 진리의 기준에서 보자면 인간의 뇌는 다만 살아남기 위해서 망상과 환각을 생산해내는 정교한 시스템에 불과하다. 그러한 망상과 환각을 다수가 공유하게 되면 그 다수는 정상인이 취급을 받게 되는 것 뿐이다. 

정치나 종교적 신념은 어떠한가?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학적 진리에 대한 믿음은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앙과 직결되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정치적 신념이든 과학적 신념이든 구분하지 않고 사람들은 자신의 망상이나 환각을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뇌가 하는 기본적 임무다. 이러한 신념이 상충될 때 인간의 뇌는 상대방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제거해야 할 "미친 사람"이나 "악마" 혹은 "마귀" 취급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진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늘 폭력을 가져온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다. 

망상은 항상 "진리"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확고한 신념을 돌이켜보고 그것의 본질이 망상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우리 삶에 등장하는 모든 실체와 진리의 본 모습이 사실은 거꾸로 뒤집어진 헛된 꿈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전도몽상(顚倒夢想)이다.

나아가 무엇인가가 "진리"라고 확실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폭력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자기 자신마저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를 준비를 완료한 사람들이다. 민주주의 반대는 독재라기보다는 폭력이다. 모든 정치 과정에서 폭력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민주화의 진정한 의미다. 그것이 진정한 정치 발전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신념의 본질이 궁극적으로는 망상임을 깨닫고 겸허해져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말미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제자 아드소에게 이런 당부를 남긴다. 

"진리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을 두려워하라. 그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혹은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기 마련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일인듯 하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한 미친듯한 집착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진정한 진리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Eco, 1986, p. 287).


(부탁의 말씀: 이 글은 곧 출간될 예정인 책 원고의 일부이며, 아직 교정 전 원고이니 인용은 하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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