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기다림과 여정
지난주 금요일 저녁 6시쯤이다.
이직하고 처음 맞이하는 주말을 앞둔 회사 사무실에서 슬슬 업무를 마무리 하는 중이였다.
메일 하나가 날아들어왔다.
또 무슨 광고인지, 구독한 뉴스 메일인지
뭐지?
메일 제목이 이랬다.
초대-Apple과의 대화
음? 뭘 대화하자는 거지 갑자기?
보낸사람이 Apple Worldwide Recruiting?
아이 누가 장난하나하면서 메일을 열어봤다.
일순간 동공이 커졌다.
2014년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시드니로 날아가서 처음 만난 애플 채스우드 그리고 그곳의 직원들과의 강렬한 첫 만남 이후 앞뒤 안재고 리테일 직원으로 지원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피드백 없이 한인 회사의 인턴으로 입사했다.
첫 월급을 받고 애플 채스우드로 달려가서 평소 눈여겨봤던 닥터드레 이어폰을 샀다.
(아이폰4s를 사용하고 있었고 6이 곧 출시예정이였기에)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남은 학기를 마치고 호주 시드니에 취업의 기회가 생겨 다시 날아갔다.
이민을 생각하고 갔던 그곳에서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다시 한국행.
그렇게 4년이 흘렀고 2018년 돌아온 한국에 애플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래 일단 또 지원해보자고! 하지만 특별한 소식없이 고향에 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 3년을 조금 넘게 일했다.
퇴사 후 화장품/건기식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지만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잠깐 숨을 돌리면서 평소 눈여겨보던 카페에 매니저를 구한다는 얘기에 지원했고 인생 처음으로 카페에서 일을 해보게 되었다. 3개 지점을 정말 종횡무진했다.
다시 한 번 성장을 겪었다.
종횡무진하던 그 시기에 여자친구가 지금의 와이프가 되었다.
가장이 되었다. 꽤 큰 책임감이라는게 머릿속에 생겼다.
신혼여행을 호주 시드니로 향했다. 거기서 애플 시드니와 채스우드를 오랜만에 마주했다.
그래 참 좋았는데..하는 생각과 여러가지 추억들이 지나간다.
2023년 와이프가 다니던 직장보다 더 괜찮은 기회를 서울에서 얻게 되었다.
좀 더 큰 무대에서 많은 경험을 와이프가 했으면 하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지원했다.
그리고 나도 서울에서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서울에 제법 많아진 애플이라 지원해보자싶어 이력서를 제출했다.
와이프와 떨어져 살 수 없기도 하니 막연한 기다림과 함께 해오던 일을 하기 위해 지원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구해졌다.
서울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새 2024년이 되었고 첫번째 직장에서 나오고 다시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추려 애플에 지원했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또다른 곳에 도전했고 입사하게 됐다. 서울에서 두번째 직장.
그리고 그 메일이 왔다.
기회가 될때마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며 지원했었던게 10여년만에 답변이 온거다.
몇번을 다시 읽어봤는데 인터뷰 한 번 하자고 하는 내용이였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누군가에게는 메일이 몇일만에, 몇주만에, 몇개월만에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렇게 간절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준비했던 적이 없었다.
메일을 몇번이나 읽으며 정말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이 나이에? 결혼도 했는데? 쌓아온 경력과 연관성은?
와이프와 그리고 이런 순간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누나와의 대화를 했다.
그 누구보다 내가 기다려온 순간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였다.
이 과정의 최종결과와 상관없이 멈춰있던 10년의 기억을 움직여보기로 했다.
메일이 오기 전날 목요일부터 듣던 페퍼톤즈의 GIVE UP 가사가 떠올랐다.
때로 까마득한 어둠이, 수도 없이 쌓인 상처가
뜨지 않는 해처럼, 끝나지 않는 밤처럼
목을 조르는 지독한 절망의 순간
그때 또다시 널 불러줄 마음속의 누군가
이제는 떠오르지 않는 아주 오래 돼버린 어떤 약속
다시 달리고 또 달린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곳
지지 않는 별처럼, 끝나지 않는 꿈처럼
"오오, 절망이여, 나를 포기하여라"
나지막이 중얼거렸던
해가 비춘 어느 날, 그가 마침내 멈춘 곳
거기 남겨져있는
천 개의 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