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T발놈의 프로포즈

70점짜리 남자, 70점짜리 여자, 70점짜리 프로포즈

by 토마토남

프로포즈 결심


나에게는 3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있다. 내 삶에 있어 그녀는 정말 큰 사랑과 활력을 준다. 하지만 정신없이 일만 하고 살다 보니 삶의 공허함이 종종 느껴졌고, 자연스레 결혼이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물론 상대는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다. 하지만 생각을 하는 것과 결심을 하는 건 분명 다른 문제다.


예전에 프로포즈 문화에 대해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결혼 날짜까지 다 잡아두고 프로포즈를 하는 게 순서가 이상하다는 얘기였다.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 물론 지금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말이 길었지만 결혼이 하고 싶으니, 프로포즈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결혼 준비와 관련해서 여기저기 주워들은 정보를 조합해 보면, 결혼 준비는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2년도 걸린다고 한다. 즉, 당장 준비를 시작해도 대충 1년은 걸릴 것이라는 것. 프로포즈를 빨리해야겠다는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그렇게 프로포즈를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나와 그녀는 삿포로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래! 프로포즈를 한다면, 삿포로 여행 도중에 해야겠다! 고민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프로포즈를 한다면? 언제 어디서 해야겠다는 고민만 대충 해결한 것이지, 아직 프로포즈 자체를 진정으로 결심한 건 아니었다.


나의 의식의 흐름은 이러했다.

-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

- 빨리 결혼하려면 프로포즈부터 빨리해야 할 텐데.

- 프로포즈를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해야 하지?

- 이번 삿포로 여행 때 하면 되겠구나!

- 근데... 결혼생활 잘해나갈 수 있을까?

- 프로포즈... 할까... 말까...


결국 결혼생활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부족한 자신감은 프로포즈를 망설이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아직 물질적인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도 있었고, 그녀와 내가 결혼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리게 될 다양한 문제와 가치관을 잘 맞출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있었다.


물질적인 이유야 다 나의 부족함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가치관이나 성향 차이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이혼 사유가 성격차이라고 하지 않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뻗어나가니 있지도 않은 상대방의 아쉬운 점을 계속해서 찾는 내가 있었다.


정말 한심했다. 내가 매일같이 외쳐대던 게 일이든 사람이든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는 말 아닌가. 50점이면 준수하고, 70점이면 이미 대박이다. 남은 건 실행하면서 맞춰가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늘 되뇌면서, 지금은 변명거리만 찾고 있었다.


그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완벽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그녀에게 완벽을 바란 적이 있던가? 전혀 아니다. 그녀도 나에게 완벽을 바라고 있을까? 단언컨대 아마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수 없이 많은 장점을 가진 사람이다. 흔들리는 건 그저 내 마음뿐이라는 걸 알았다. 망설이는 이유는 그냥 못난 나 자신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녀는 부족한 나 자신을 채워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싶은 사람이다. 70점과 70점이 만났지만 합해서 200점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우리는 함께 함으로 인해 비로소 완벽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서로인 것이다.


망설임이 사라졌기에 내 마음은 한없이 고요해졌다. 동시에 그녀를 향한 마음은 따뜻한 떨림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 다정이는 너무나도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 완벽이란 이런 것이구나. 진심으로 프로포즈를 결심한 순간이었다.



프로포즈 준비


우선 반지가 필요했다. 사이즈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고민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바로 그녀가 평소 끼고 다니던 우정 반지를 통해 가늠해 보기로 한 것. 데이트를 할 때 아무렇지 않은 척 우정반지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냥 재미로 내 손에 껴보는 척 사이즈를 가늠했다. '내 왼손 약지의 이 정도 부근까지 들어가다 걸리는 구만?' 하는 식이었다. 가늠한 사이즈를 집에서 실측해 보고 5호를 주문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반지 디자인이 고민이었다. 그녀가 어떤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할지 몰라 디자인 보단 의미를 담는 쪽으로 컨셉을 잡았다. 삿포로 여행 때 눈 덮인 어딘가에서 프로포즈를 할 계획이니, 눈 결정 모양의 디자인을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최종적으로 2개의 후보를 두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삿포로 여행 1주일을 앞두고 디자인을 선택했다. 빨리 배송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주문한 지 1시간 만에 반지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이거 여성분 사이즈가 5호가 맞나요?" 5호는 어린애들 사이즈인데... 순간 멘붕에 빠졌다. 결국 사이즈를 다시 확인해 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반지는 주문 제작이기 때문에 시간도 5~10일이 걸린다는데, 삿포로 출발 전에 반지를 맞추긴 글러버린 상황이 되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반지는 사이즈를 정확하게 재고 나중에 구매하자! 일단 임시로 프로포즈용 반지를 사자! 그렇게 13,000원짜리 눈꽃 모양 프리사이즈 반지가 쇼핑몰 장바구니에 들어갔고, 70점? 아니 50점짜리 프로포즈 준비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프로포즈는 여행 3일 차에 삿포로 명물 크리스마스 나무 근처에서 하면 좋지 않을까? 하며 간단하게 계획을 세웠다.)



삿포로 여행 1일 차


반지는 내 가방 앞주머니 안에 잘 숨겨져 있다. 잘 사용하지 않는 주머니다. 그녀가 내 짐을 뒤져보진 않겠지만, 이래저래 조심하자는 의미다. 혹시나 비행기 수화물 검사 때 걸리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사실 은근 조마조마했다.)


프로포즈를 결심해서 그런지 그녀가 더 이뻐 보인다. 너무 귀엽고 완벽하다. 고맙고 벅차오른다. 진정한 의미의 콩깍지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여행 빨 이거나...


마침내 도착한 노보리베츠는 정말 아름다웠다. 계획과는 다르게 당장 프로포즈나 할까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아직 이르다. 분위기가 좀 더 무르익어야 한다. 보아하니 그녀는 이곳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바쁘다. 나도 우선 여행을 즐기자고 결심했다. 반지는 가방 안에 일단 모셔두자.

노보리베츠 숙소 근처 산책을 즐기며 찍은 사진



삿포로 여행 2일 차


우리의 본 목적지인 삿포로에 도착했다. 오늘은 삿포로의 분위기나 지형, 지물을 파악하는 날이다. 혹시 아는가? 이 근처에 더 좋은 프로포즈 장소가 있을지. 눈 덮인 풍경이 아름다운 곳, 게다가 인적도 드문 곳이 있으면 좋겠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을 갔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 삿포로 TV타워에 잠시 들렸다. 그리 높은 타워는 아니었지만, 눈 덮인 전망이 정말 멋졌다. 그녀는 감탄하며 이곳저곳 전망을 구경하기 바쁘고, 나는 프로포즈를 할만한 멋진 장소가 없는지 여기저기 내려다보느라 바빴다. 눈 내리는 도시 저녁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프로포즈를 크리스마스 나무가 아니라 다른 어딘가의 저녁때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TV타워에서 하기에는 별로였다.)


이런 고민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프로포즈 결심으로 인한 콩깍지와 여행의 분위기 버프 때문에 그녀가 더 더 귀여워 보인다. 상시 꿀밤이 마렵다.

삿포로 TV 타워와 TV타워에서 내려다본 야경



삿포로 여행 3일 차


오늘은 마음속으로 결심했던 프로포즈 당일이다. 크리스마스 나무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크리스마스 나무까지는 버스투어로 먼 길을 가야 하기에 혹시 몰라 챙길 짐이 많았다. 이것저것 짐을 챙기며 자연스레 반지도 투어에 동행하게 되었다.


첫 번째 장소인 흰 수염 폭포에 도착했고, 이번 투어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대충 분위기를 알게 되었다. 핵심만 요약하자면 장소마다 사람도 너무 많고, 구경할 시간도 짧았다. 풍경이 이쁘긴 하지만 프로포즈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바로 다음으로 원래 계획했던 크리스마스 나무에 도착했다. 가방에서 삼각대를 꺼내며 반지도 같이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고민은 짧았고 반지는 가방 속에 남았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 판단이 옳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크리스마스 나무 근처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리고 전혀 몰랐는데 크리스마스 나무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게 다였다. 관광이라고 생각하면 넘치도록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프로포즈를 할 장소는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냥 관광을 즐겼다.


마지막 관광지는 요정의 마을이라 불리는 곳, 닝구르 테라스다. 사진을 통해 미리 확인한 닝구르 테라스는 앞선 관광지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해도 넘어가고, 어둑어둑한 분위기에 이쁜 조명까지. 프로포즈를 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기대에서 끝났다. 이미 닝구르 테라스의 초입부터 미어터지는 사람들... 그 작은 마을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줄 서서 종종걸음으로 걸어 다니며 구경하는 곳이었다. 역시 현실은 쉽지 않구나... 가방 속의 반지는 바깥의 찬 공기 구경도 못한 채 그렇게 잠들었다.

수백명의 관광객과 함께 즐기는 아름다운 풍경, 사람이 안나오게 사진을 찍었다면 성공!




삿포로 여행 4일 차


어제 못한 프로포즈를 오늘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4일 차의 길을 나섰다. 하지만 과연 어디서 할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다. 반지는 가방 속에서 외투 안주머니로 위치 이동을 했다. 혹시나 흘리지 않도록 지퍼를 단단히 잠근 채 오타루로 출발했다.


오타루 관광은 즐거웠다. 그리고 대망의 오타루 운하에 도착했다. 처음 도착한 장소엔 관광객이 많아서 별로다 싶었지만, 조금만 걸으니 한적한 곳이 나왔다. 날도 어두워지고, 조명도 이쁘고, 사람도 없고, 새하얀 눈이 가득하고, 잔잔한 물결도 있는 곳. 이 이상의 장소는 없다 싶을 정도였다.


내 손은 계속해서 외투 안주머니를 오갔다. 언제 줄까, 뭐라고 말하면서 줄까, 지금인가?, 앗 저기 멀리 사람이 걸어오네 조금만 있다가 말하자. 운하를 걸으며 그녀와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프로포즈 생각으로 가득했다. 모든 말이 한 귀로 들어오고 한 귀로 나갔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지금인가?' '어떻게 주지?'라는 고민은 '고백을 받아줄까?', '혹시 거절하는 건 아닐까?'의 고민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결국 프로포즈를 성공해서 결혼을 하더라도 우리가 잘 맞춰 갈 수 있을까라는 태초의 고민으로까지 되돌아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심함의 반복이었다. 그만큼 떨렸다곤 하지만 이미 예전에 끝낸 고민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은 한심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결국 타이밍을 놓치고 프로포즈를 하지 못했다. 반지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내 손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대로 끝낼 순 없다며 마음을 다시 잡았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구글 지도에서 근처에 훗카이도청 공원이 있는 걸 발견했다. 일단 자연스레 거기로 가서 생각해 봐야겠다.


(중략)


결국 훗카이도청에서도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못했다. 숙소 안에서라도 해야 하나? 진정하자. 내일이 지나고 나면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배수의 진을 치고 내일은 꼭 프로포즈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며 잠이 들었다.

왜 프로포즈 하지를 못하니..




삿포로 여행 5일 차. 프로포즈.


오늘은 삿포로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전망대에 올라 프로포즈를 해야겠다고 계획도 다 세웠다. 원래 이번 여행에서 전망대는 일정에 없었다. 여행 전에 미리 인지했던 장소이긴 하지만, 꼭 가보자! 정도의 장소는 아니었다. 마지막날은 뚜렷한 여행 계획이 없었다. "오늘 딱히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데 한번 가보자~"라는 말로 전망대에 오르는 일정을 만들었다.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구경하며 프로포즈해야지! 다행히 그녀는 별생각이 없는 듯하다.


즉흥적으로 여기저기 빡빡하게 구경한 하루였다. 돈키호테부터 나카지마 공원까지 알차게 돌아다니고 드디어 전망대에 오르고 있다. 배수의 진, 오늘이 지나면 이제 끝이다. 머릿속은 뭐라고 말을 꺼내나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전략은 이미 정해뒀었다. 그냥 내 진심을 말하자는 것. 하지만 그 진심을 꺼내기 전, 뭐라고 운을 떼야할지 그게 고민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데 전망대에 오르던 도중 그녀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어? 저 사람들 뭔가 프로포즈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그 얘기를 듣고 속으로 웃음이 났다. 어쨌든 내가 오늘 프로포즈하는 건 전혀 모르고 있구나 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그리고 뭔가 저 사람들을 소재로 화두를 던져도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전망대. 이미 매표소에서부터 경고를 듣긴 했지만 그 어떤 야경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차게 눈만 휘날릴 뿐이었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공기도 차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오래 있을만한 곳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난 오래 있어야 했다. 주머니에서 반지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전망을 배경으로 사진 삼매경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웃기단다. 그런데 이러다간 사진만 찍고 흐름 따라 그냥 내려갈 판이다. 이젠 정말 뒤가 없다. 여기저기 구경하는 그녀를 데리고 다시 전망대 중앙으로 갔다. 타이밍에 맞춰 눈은 더 세차게 휘날렸다.


그렇게 몇 개월을 고민했던 내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프로포즈했다. "나랑 결혼해 주라! 거절은 거절한다!" 그녀에게 말을 내뱉는데 나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차올랐다. 프로포즈할 때 그녀의 반응이 어떨지만 생각해 봤지, 설마 내가 이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미 진심이었지만, 나도 정말 진심이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 역시 프로포즈는 상상도 못 했는지 정말 깜짝 놀란 반응이었다. 그녀의 수락과 함께 프로포즈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기분 좋다.

전망대 향해 높이 올라갈수록 점점 사라지는 시야. 야경이 없어도 프로포즈 해야한다.



짧은 후기


우린 진정으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었다. 프로포즈를 한건 불과 5분 전인데, 달라진 건 말 한마디 말곤 없는데, 우리 사이에 전과 다른 결속력이 생긴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신기하다. 프로포즈를 하기 전까지 했던 수많은 고민들, 돌이켜 보면 왜 그런 고민을 했나 싶다. 지금은 그저 그녀에게 더 든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생각뿐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아직 내가 프로포즈의 여운에 빠져있는 사이, 그녀는 벌써 현실적인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양가 인사부터, 결혼식 준비 등 머릿속에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프로포즈에 대한 감상보다 당장 현실적인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약간 서운하기도 했다. 어린애 같은 생각이니 정신 차리자고 생각했다. 분명 T발놈은 나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서운한 생각은 금세 사라지고 그녀의 꼼꼼함과 추진력이 든든해졌다. 내가 프로포즈만 안 했다 뿐이지, 그녀도 이미 이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봤던 것일까? 뭔가 벌써 저 멀리까지 앞서가는 느낌이다.


막상 프로포즈를 지르긴 했지만, 현실적인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불안감이 커지기도 하지만, 역시 답은 더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구나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내 눈치를 알게 된 것일까. 그녀가 한마디 했다.


"난 오빠랑 함께하면 아무 걱정 없어."


'응 나도 너만 있으면 아무 걱정 없어.'


뼈가 깎이도록 일해도 아무 고통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몇 번이고 더 듣고 싶었다. 그렇게 충만한 마음을 유지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말 열심히 살 거다.





힘든 세상이지만 행복합니다. 행복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T발놈은 사랑도 학습이 필요합니다. 아내를 통해 배운 따뜻함과 사랑을 기록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