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아. 나 애 데리고 미국 갈까 봐... 언니가 오라는데? 지금 비수기라 항공권도 저렴하고 병원 검진도 끝났으니까 다음 검진 때까지 미국에 있을까 해. 애랑 가있을 테니까 당신은 휴가 내서 와~ 한국 올 때 같이 들어오게..
나는 지금 수술받은 병원이랑 같은 하늘에 있는 것도 싫고, 이 집에 있는 것도 답답해. 상담받는 것도 다 싫고... 내가 아프다는 걸 잊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해. 아팠던 기억에서 아주 멀리멀리멀리멀리 떨어진 곳. 그러니까 그냥 갈래.. 다른 거 생각 안 하고... 가서 아프면 비행기 타고 돌아오지머! 그런데 날짜가... 지금 가면... 가있는 동안 제사도 있고 명절도 있고... 부모님들 생신도 있는데.. 이렇게 가도 되나? 괜찮을까... 집안 행사 빠지는 거 처음인데.."
"걱정도 팔자다. 그냥 가! 며느리가 셋이나 있는데 너 하나 없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뭘 그런 것까지 걱정해? 어차피 갈 거면서."
"뭔소리야.. 나 수술한 직후에도 제사상 차린 거 기억 안 나? 당신 집에서 그랬다고~~ 당신 집에서~~ 다리 퉁퉁 부어가면서~ 니 말대로 자식이 몇인데 암수술한 내가 혼자 제사상 도왔는데 뭔소리야. 아! 몰라!!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더 짜증나. 이번엔 그냥 쉴래. 어머님께는 죄송하지만 나도 살아야겠어. 부모님껜 오빠가 말씀드려. 난 그냥 떠날 거야. 앞으로는 나만 생각할래. 어차피 나 죽어봤자 아무도 책임 안질 텐데 내 몸 내가 챙겨야지.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거야! 암튼 비행기표 끊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상담이 7회차에 접어들고... 지쳐있던 나는 슬슬 아이와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는 상담을 끊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가 자꾸 내 상담실에 들락거리며 자신의 치료에 집중하지 못했고 3회차 이후로 센터에 가는 것을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연 효과가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생님은 아이에 대한 피드백을 내게 주지 않았다. 아이 선생님은 센터에 소속되지 않은 출장 선생님이었는데 항상 예약이 꽉 차 있었다. 그래서 상담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상담에 들어갔다. 때문에 나는 한 달이 돼가는 동안 아이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선생님은 상담 후 굳이 내게 전화를 한다거나 시간을 따로 내어 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나는 아이의 상담을 중단했다.
아이의 선생님은 전화로 내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정중하게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사과의 말을 주고받았고 아이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후 선생님은 "현이는 어머님께서 좋아지시면 얼마든지 같이 좋아질 수 있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어머님께서 치료를 잘 받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그 일은 선생님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내가 작정하고 핑계를 댄 것뿐, 애초에 아이의 상태를 먼저 물어봤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지켜만 봤다. 아이의 상담을 중단할 적당한 이유를 가질 생각으로.
나는 내가 하는 상담들이 너무 버거웠다. 매주 억지로 상담을 하며, 언제든 이곳을 끊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러나 아이가 걸렸다. 아이의 상담이 길어질수록 선생님과 유대감이 생길 텐데... 그렇게 되면 내 마음대로 상담을 끊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래서 아이가 아직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을 때 미리 끊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렇게나 비겁했다.
독감에 걸린 이후 몸이 좋지 않았다. 하루빨리 상담을 끊고 싶었다. 몸도 안 좋은데 계속해서 나쁜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상담이 끝나면 형편없는 엄마라는 죄책감을 안고 집으로 향해야 했다. 지긋지긋했다. 그 반복되는 힘듦이.
그럼에도 상담을 끊지 않았던 것은 가족 때문이었다.
언젠가 남편에게 상담을 끊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남편은 '아픈 걸 꺼내야 봉합도 되는 거야'라는 말로 조금만 더 다녀볼 것을 권했고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나를 보며 집안이 평화롭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몇 회를 더 신청했고, 그렇게 상담은 나의 확신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여행은 내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도망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여행을 가기 이주일 전, 나는 원장님에게 말했다.
"급하게 미국에 가게 되었어요. 가서 조금 쉬려고요. 준비할 것도 많고 해서 남은 상담은 다녀와서 하겠습니다. 3개월 후쯤 하게 될 것 같아요. 짧게는 두 달, 길게는 세 달 정도 있을 예정이라서요. 다녀오면 연락드릴게요. 원장님 건강히 잘 계시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나는 비겁하게, 그것도 갑작스럽게 상담을 중단했다. 쉬겠다는 명목으로, 마음을 다잡겠다는 명목으로...
사실 나는 어릴 적 기억을 꺼내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았다. 기꺼이 나쁜 엄마가 되겠다는 각오도 하지 못했다.
자꾸 내 마음을 공격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치고만 싶었다. 멀리, 아주 멀리 나를 건들 수 없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