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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12. 2021

책임자가 아닌 조력자가 된다는 것.

그 평화로움의 발견

처음에 아이는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마당에서 놀다가도 내가 거실에 있는지 확인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아이는 변했다. 이모와 엄마가 장을 보러 간다 해도 따라나서지 않았다. 이모부가 있으니 괜찮다고, 자기는 누나 형과 놀겠다고 집에 남았다. 그 후 서서히 아이는 나와 떨어졌다. 조카들이 없어도 아이는 이모와 집에 남았다. 덕분에 나는 가벼운 몸으로 산책을 하거나 마트에 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입을 삐죽 대며 내게 말했다. "현이가 점점... 나한테 반항해. 얘 사실은 되게 개구쟁이인 거 아니야? 내성적인 성격 아닌 것 같은데... 나한테 요즘 엄청 개기던데..."

그런 언니의 말에 나는 "애가 이 집만 오면 강해지는 것 같아. 역시 언니네 집은 훈련소야, 애를 강하게 만들어."라고 했다.


웃고 넘긴 대화였지만 언니와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아이는 점점 밝아지고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빛을 내고 있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기 스스로.




우리의 일상은 평온했다. 평일은 조용한 산책을 즐기거나 조카들의 학교 행사를 구경했다. 아주 가끔씩은 조카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신나는 경험을 하고 때로는 큰 조카의 살벌한 농구대회를 참관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종종 언니네와 여행을 다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증기기관차를 타러, 혹은 햇빛이 내리쬐는 바닷가로, 그도 안되면 돗자리를 들고 근처 대학교로 피크닉을 갔다.


평화로웠다. 그 모든 것들이. 물 흐르듯 진행되는 그 모든 일상들이...

나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계획은 언니가 세우고 계산은 형부가 했다. 나는 그저 아이 옷을 챙기고 신발을 신길뿐이었다.

고민할 것이 없었다. 노력할 것도 없었다. 잘못될까 걱정할 것도 없었다. 나는 단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잘 살면 되는 거였다. 내가 할 건 그것뿐이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덕분인지 한결 여유 있어진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아이가 마당에 나가 물을 뿌려대거나 옷에 흙을 잔뜩 묻혀도 그냥 웃었다. '괜찮아~ 어차피 물은 땅에 흡수될 테고 옷은 갈아입으면 되니까~'

거실 한복판이 난장판이 되어도 화가 나지 않았다. '괜찮아. 거실은 두 개니까... 다른 거실로 피신 가지 뭐'

그러다 남은 거실까지 난장판이 되면 난 그냥 정원으로 나가버렸다. '괜찮아... 이따 같이 치우지 뭐'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이런 나의 느긋한 마음을 아는지 아이도 더 이상 보채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평화로운 창 밖의 풍경
아침이면 뛰어다니던 뒷마당
한가하기 그지없는 끝없는 공원


미국에서 생활한 지 기어이 두 달이 넘어갔다. 그리고... 남편이 미국에 들어왔다.

저녁시간. 남편은 마중 나갔던 언니네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아빠를 본 아이는 신나서 남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아빠에게서 떨어져 형과 텐트가 있는 뒷마당으로 놀러 나갔다.

사실 그동안 아이는 아빠를 많이 찾지 않았다. 가끔 아빠가 언제 오냐며 묻기는 했지만 막상 아빠의 전화가 걸려오면 바쁘다며 끊었다. 누나, 형과 놀 시간이 빠듯한데 아빠 통화가 대수랴... 하지만 남편은 그걸 모르니까...

남편은 아이를 보고 "현아~~ 인사만 하고 바로 가는 거야? 아빠 힘들게 왔는데..." 하며 서운해했다.


그 후 일주일간 우리 가족은 완전체가 되어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아이는 여전히 뛰어다녔고 바다를 보며, 2층 버스를 타며 여전히 많이 웃고 여전히 행복해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우울해져 갔다. 남편이 미국에 왔다는 건 이제 곧 나도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에 있는 것이 좋았다. 책임질 일 없는 이곳이... 아늑했다.

오늘 당장 먹거리가 떨어져도, 누군가가 찾아와도, 어디서 어떤 행사가 있어도 나는 그저 한 발자국 떨어져 구경만 하면 되었다. 이 곳에서는 아이의 교육을 걱정할 필요도, 내일 뭘 해야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아침에 눈 뜨면 아이는 누나 형과 마당에 나갈 것이고 나는 언니와 함께 설렁설렁 청소를 하면 되었다.


한국에서 항상 무언가에 쫓겨다니던 내가, 이제는 책임자가 아닌 조력자가 되어 느긋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인가.


그러나 이제 그럴 수 없음이.. 너무 아쉬웠다..




미국의 생활은 마치 육아와 같았다.

나는 비양육자라도 된 듯 마음이 편했다. 발생되는 모든 사건이 이해되고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아마도 주양육자의 마음이었다면 이 곳의 생활이 조금은 버거웠을 것이다. 아이의 행동과 모든 갈등이 내 책임이었을 테니까...


과연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마치 비양육자가 된 것처럼 모든 일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을까.

이곳의 황금빛 삶처럼 한국에 가서도 여전히 황금빛을 내며 생활할 수 있을까.


그동안 나는, 얼마나 무겁게 살았던 걸까.

앞으로 조금은... 책임감을 내려놔도 되지 않을까. 앞으로 조금은... 나를 위해 살아도 되지 않을까.


때로는 이방인으로, 때로는 조력자로, 때로는 방관자로 살면서 깨달은 것들을 한국에 가기 전 다시 한번 다짐해보았다.


조금은 가볍게 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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