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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an 19. 2021

이제 나의 시간을 갖겠소.

너도 너의 시간이 있으니...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집안일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겠어요.




나의 하루는 참 길었다. 잠이 없는 6살 아이는 7시면 칼같이 일어났고 남편은 정시 퇴근해봤자 밤 9시에나 집에 왔다. 때문에 나의 집안일은 밤 10시가 지나서야 끝이 났다. 내가 두 눈 뜨고 있는 시간은 그렇게나 길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 시간은 없었다.

오전에는 아이를 보느라 정신없고 등원 후에는 아이가 아침부터 어지른 집을 치우느라 바빴다. 그리고 정오부터는 저녁거리를 만들었다. 밑반찬을 하고 국을 끓이고 메인 반찬을 만들고...

그리고 소파에 앉아 몇 분 정도가 지나면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향했다.


아이가 온 후부터는... 더 이상 집은 내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집안일을 하느라 일찍이 방전된 몸으로 아이의 말을 듣고, 아이의 행동을 보고, 아이의 울음을 달래 주었다. 이미 집은... 철저하게 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시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오전에도 힘들었는데... 오후에도 힘드네... 근데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네. 돌겠네...'



 

어느 날 단체 카톡방에 모여있는 친구들에게 푸념을 해댔다.

"오전에 집안일하느라 바쁜데 좀 쉴만하면 애 델러 가야 해. 너무 힘들지 않아? 우리 이런 삶 언제 끝나?"

이런 나의 얘기를 들은 한 친구가 얘기했다.

"난 그래서 애 등원시키고 집안일 안 해. 그 시간엔 내가 하고 싶은 일 해. 생각해둔 공부도 하고 스터디 모임도 가고 책도 보고. 그리고 애들 오면 그때부터 집안일 해. 내가 집안일하고 있으면 애들은 알아서 노니까~ 괜찮아. 너도 애 없을 때는 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어때? 지금은 너한테 그게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아~~ 애 없을 때 집안일을 안 할 수도 있는 거구나!

나는 애가 집에 올 때는 모든 게 완벽하게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하~~


평소 우리 집은 깔끔하다는 인식이 되어있는 집이었다. 주변 엄마들도 "이 집은 언제 와도 깨끗하다"라고 했고 아이의 친구들도 신발을 벗으며 "우와. 현이네 집 진짜 깨끗하다. 우리 집이랑 달라!"라고 외쳐서 엄마들의 웃음이 터질 정도였다.

그 깨끗함은 내 일상이었고 오전에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암수술 후에도 배를 움켜잡고 청소기를 밀던 나였다.


그런데 청소를 오후에 하라니... 음...




아이가 유치원에 간 사이 오전 내내 쉬었다. 친구가 오늘은 청소를 해보지 말라고 조언했다. 

'청소기를 돌리지 말자. 바닥에 보이는 건 장난감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결국 그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이를 하원 시키며 근처 반찬가게에 들러 밑반찬을 샀다. 그리고 아이를 씻긴 후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내가 청소기를 돌리고 바쁘게 움직이니 아이는 놀아달라 떼쓰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장난감을 찾고 심심하면 TV를 켰다. 중간중간 징징거리기는 했지만 내가 워낙 바빠 보였는지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았다.


오전에 쉬고 오후에 청소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꽤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대부분은 오전에 청소를 끝냈다. 그러나 단 하나 바꾼 것이 있다면... 바로 밑반찬.


나는 먹거리는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MSG든 설탕이든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나 솜씨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요리하는데 워낙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 사이 내 에너지는 방전이 됐다. 게다가 남편과 아이는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내가 열심히 한들... 잘 먹지도 않았다. 때문에 반이상은 버려졌다. 떡갈비나 갈비찜을 먹여도 남길 정도니... 밑반찬은 오죽할까.

그러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비효율적인 노동,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한 그것. 밑반찬 만들기.


허나 생각을 조금 바꾸고 나니, 편해졌다. 종종 반찬가게에서 밑반찬을 사도 더 이상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좀 사다 먹으면 어때~ 반찬 만들 시간에 난 좀 쉬고 에너지 아꼈다가 애랑 잘 놀아주면 되지!'




밑반찬 만드는 시간을 없애고 나니 조금의 내 시간이 생겼다. 덕분에 보고 싶은 영화도 보고 밀려있던 책도 뒤적였다. 아주 가끔은 꿀 같은 낮잠도 잘 수 있었다. 마치 회사를 다니다 주말을 맞이한 기분이랄까.


여유 있는 내 시간.. 아이가 깰까 봐 조마조마한 밤 10시 이후의 시간이 아닌... 온전한 나의 환한 시간.

'그동안 참 바쁘게 살았구나. 나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지금의 시간이 결코 사치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리 내려놓으니, 이것도 저것도 참 편하구나.


후에 어떤 언니가 나를 꾸짖으며 말했다. "그래도 먹을 건 니가 해. 가족 먹을 건데 잘 챙겨야지! 밖에서 하는 음식 사 먹지 말고 니가 해야 건강한 음식인거야~"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어~~ 이제 안 그러려고. 내가 하면 맨날 똑같은 음식이라서 밑반찬이라도 골고루 먹이려고. 반찬가게 가니까 종류가 그렇게 많더라~ 보지도 못한 나물들이 어쩜 그리 많은지 신세계야 신세계"


그렇게 말하고 나니 다음 말을 외치고 싶어 졌다. 


그래! 뭣이 중헌디? 

밑반찬이 중해?

나는 내가 더 중해!




그래서 나를 위한 무언가를 또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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