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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21. 2024

잃어보지 않은 자는 잃은 자를 이해할 수 없다

[전업 아빠 육아생존기] 13화

딱 두 번 장모님을 만나 뵈었다. 한 번은 연애 초기 인사동에서 무척이나 어설펐던 첫인사 자리에서, 마지막은 1년 뒤 소천하시기 바로 직전 임종의 순간. 마지막 만남 이후에 아내 파랑과 결혼을 했다. 결혼 준비부터 신혼생활, 임신부터 출산, 육아와 워킹맘으로의 생활까지 모든 것을 파랑은 혼자서 친정엄마의 빈자리를 비워둔 채 씩씩하게 해내 왔다. 요즘은 자주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예전에는 돌아가신 장모님 꿈을 꾸고 나서 눈물짓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지금은 새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함께 의지하며 잘 지내고 계신다. 혼자 계셨던 장인어른이 걱정되었을 딸은 마음을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여전히 아내에게 친정엄마의 빈자리는 쉽사리 채워질 수 없는 것 같았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남편 옆에서 결혼부터 지금까지 서럽고 아쉽고 속상한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어느 정도로 보고 싶었을지 나는 잘 모른다. 그저 옆에서 안아주고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다.


어려서부터 파랑은 요리에 관심이 많고 좋아했었다고 한다. 항상 어머님이 해주시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부터 주의 깊게 지켜보며 본인이 하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곧잘 해 먹기도 했다고. 덕분에 신혼 때부터 맛깔난 밥을 차려 주곤 했다. 여러 음식을 잘했지만 한식이 특별했다. 파랑의 설명에 의하면 기억 속의 어릴 적 어머님의 손맛을 더듬어가며 떠올려서 흉내를 내본다고 한다. 파랑의 음식도 훌륭한데 장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훨씬 더 맛있는 음식을 먹었겠다는 상상을 가끔 해본다. 돌아가신 엄마의 손맛을 따라가는 파랑의 음식을 먹는 건 때때로 내게 짠한 맛으로 다가왔다.


파랑이 좋아하는데 쉽사리 시도하지 못하는 음식이 하나 있다. 어지간한 것은 비슷하게 만들어 먹으면서 해소를 해왔는데 특히 이것은 시도도 못 했다. 배추김치, 깍두기, 파김치, 오이소박이, 여러 장아찌 등 어려운 담가 먹는 음식들도 이제는 척척 쉽게 하는 파랑이었지만 어쩐지 어려워했다. 아내의 풀지 못한 메뉴인 '집에서 만든 김치만두’는 밖에서 무엇을 사 먹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치가 넘칠 만큼 들어있어서 맛과 향이 풍성한 만두는 밖에서 먹을 수가 없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릴 수 없는,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그 맛이라고 설명해야 할 테다. 파랑이 어릴 적에 해 먹었을 때 워낙 번거로웠던 기억에 전혀 엄두를 내지 못 내겠다고.


사 먹기도 힘들고 만들어 먹기도 힘든 ‘집 김치만두’는 다행히 내 어머니가 종종 만드는 음식이었다. 내 고향 집에 내려가서 먹어본 파랑은 이 만두가 맞는다고 했다. 파랑은 시어머니께 같이 만들어보자고 자주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직장 생활하면서 양가 도움 없이 손자 키우느라 고생하는 며느리에게 시댁에 와서까지 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 어머니는 늘 미리 만들어두고 싸주시곤 했다. 그렇게 여러 해 반복이 되다가, 우리가 먼 타지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날에 맞춰서 드디어 김치만두를 다 같이 만드는 판을 벌여주셨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친척들이 총동원된 김치만두판은 시끌벅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 이모, 손자, 손녀 할 것 없이 모두 모여서 김치만두를 만들었다. 기진맥진하도록 엄청나게 많은 만두를 빚어낸 시간이 끝나자 어머니는 파랑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봐야 다시는 하자고 안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여러 감정과 생각으로 판을 벌이신 어머니이자 시어머니의 마음을 나와 파랑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소원을 풀고 난 파랑의 집 김치만두 노래는 한동안 사라졌다. 멀지 않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벌어졌고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이 어려워졌다. 점점 집밥이 다양해지고 질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파랑이 선언했다 "나 이제 김치만두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먹고 싶었던 것인지 집밥 실력에 자신이 붙어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한다면 하는 아내가 결정을 내렸다. 파랑이 준비해 둔 만두소로 나와 아들까지 합세해 함께 빚었다. 고향과 떨어진 먼 곳에서 만두를 빚고 있으니 묘하게 흥분되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경험해 본 아들은 제법 익숙하게 모양을 만들었다. 대망의 찜 시간. 먼저 만든 김치만두 한판을 한 솥 가득 찌어냈다. 푸짐한 냄새가 부엌과 주방을 가득 채우면서 우리의 기대를 높였다. 첫판이 완성되었고 찌어진 모양은 그럴듯했다. 맛을 보았더니 딱 이거였다. 몇십 년을 먹어왔던 어머니의 집 김치만두와 똑같았다. 파랑도 아주 만족했고 우리는 한 끼를 부족함 없이 만두로 채웠다.





파랑의 집 김치만두에 대한 간절함을 옆에서 보아왔기에 그 순간은 내게도 기쁜 감동이었다. 그날 파랑은 따로 하늘에 계신 어머님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 전보다 강해지고 세월에 무뎌져 괜찮았을까. 엄마를 여의어보지 못한 나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작 잃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는 자연스럽게 만든 집 김치만두를 여러 다른 집에 나눠 주었다. 파랑이 자주 전했던 장모님의 행적이 남과 함께 나누는 일이었다. 어렵고 힘든 주변 사람을 살폈고, 특히 음식을 많이 해서 전했다고 들었다. 당신의 따님이 당신을 닮아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을 하늘에서 보시면서 흐뭇해하시지 않을까. 한걸음 떨어져 어설프게 이 정도로 짐작할 따름이다.


우리 아들은 엄마를 닮아 요리에 관심이 많다. 엄마가 할머니의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것처럼. 내가 두 번이나 만나 뵌 것에 비하면 아들은 할머니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다만 나와 아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그분의 음식을 맛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는 직접 먹어보지 못한 장모님의 음식을 아내의 음식 속에서 만나고, 아들은 직접 보지 못한 할머니를 엄마의 음식 속에서 만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분의 집 김치만두를 빚어 먹으며 함께 만나고 있다. 아직도 내 아내 파랑의 마음이 어떤지 정확히 모른다.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들어주고 안아줄 뿐이다. 잃어보지 않은 자는 잃은 자를 이해할 수 없다.



홍석준 작가의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옛날에는 아빠도 육아를 함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대."라며 마치 여성도 투표할 수 있게 해 달라 주장하던 옛사람처럼 잊히길 바란다. 내 바람이 지금 읽고 있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되길 바라며 글을 보낸다.

아빠도 함께하는 육아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저자 홍석준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원고료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전업 아빠 육아 생존기] 13화



<연재 배경>

네이버 연애 결혼 <썸랩>으로부터 원고를 요청받았다. <썸랩>은 네이버와 문화일보의 합작 회사로 네이버의  '연애 결혼' 주제판을 운영했었고, 현재는 연애 결혼과 관련된 컨텐츠를 네이버 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에디터님께서 우연히 내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읽고 내용이 정말 좋아 연재를 부탁한다고 했다. 보내주신 칭찬을 괜히 덧붙이자면 '쉽게 읽히면서도 중심이 잡힌 글'이 참 좋다고 했다. 세상에 필요한 육아하는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며 꼭 같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제안에 감동했다. 이 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교보문고 https://bit.ly/3u91eg1 (해외 배송 가능)

예스24 https://bit.ly/3kBYZyT (해외 배송 가능)

알라딘 https://bit.ly/39w8xVt

인터파크 https://bit.ly/2XLYA3T

카톡 선물하기 https://bit.ly/2ZJLF3s (필요한 분이 떠올랐다면 바로 선물해 보세요!)

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 책의 탄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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