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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myhslee Oct 18. 2023

기업가의 경영이야기 : 이나모리 가즈오

경영자와 임직원의 관계 수립

연휴 전에 기업가들의 경영이야기 영상 링크를 정리해서 올렸었는데요, 영상을 쭉 보다 보니 물론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휘발성으로 지나가는듯하여 저도 기록을 통해 내용을 체화하고, 또 아카이빙으로 남겨둬 좀 더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 이 영상들을 아티클로 정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업으로 꽤 바쁘다 보니 첫 번째 시리즈를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앞으로도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영상들의 주요 내용을 텍스트로 정리해나가볼 예정입니다.


경영에는 정답이 없고, 어떤 방법도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런 작은 사례들을 통해 각 조직이 보다 적합한 경영 철학과 방식을 찾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의미있는 인사이트를 얻어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기존 글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https://brunch.co.kr/@tommyhslee/100


첫 번째 주인공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으로 교세라와 DDI(이후KDD, IDO와 합병해 현재는 KDDI)를 창업하고, 위기의 JAL을 인수해 성공적으로 정상화 시킨 업적을 갖고 있으며 지난해 8월 작고하였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은 작은 조직단위를 구성해 각자의 특성과 강점에 맡게 운영하는 '아메바 경영'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현재도 아메바 경영과 유사한 형태의 경영방식이 자주 활용됩니다. 스타트업들이 좋아하는 애자일 조직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아메바 경영은 워낙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인 만큼 금번 아티클에서 아메바 경영에 대한 내용은 걷어내고,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추구했던 회사(경영진)와 구성원의 관계에 대해 다뤘습니다. 본 영상은 이나모리 회장의 2010년 UC버클리 강연입니다. 당시를 회고해 보면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서구 중심의 성과주의 경영방식에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되던 시기입니다. 때문에 이나모리 회장의 파트너십 매니지먼트가 더욱 색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나모리 회장은 경영진의 과도한 성과급과 임직원 구조조정 같은 극단적인 경영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전체 영상 링크는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U5FRqyMEQUA?si=4Hcy_t9_WuYEbvRO



[Financial Crisis and Partnership management to employee - 경기침체와 파트너십 매니지먼트]

- 2008년 금융위기는 증권시장의 파생상품이 표면적 원인이나, 실제로는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장참여자들의 욕심이 고도로 정교한 공학 금융 상품을 만들어내며 벌어진 일

- 이는 Global standard가 된 미국의 과도한 주주이익과 단기 성과중심의 경영의 문제점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였음

-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추구하는 것은 이런 미국식 경영방식이 아닌 파트너십 경영(Partnership management that values employees)

- 1959년 교세라를 설립했을 때 엔지니어의 경험 외에 경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늘 좋은 경영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음

- 여러 고민은 결국 구성원의 마음(Human mind)이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깨닫게 해 주었음

- 일본의 근대화나 미국의 독립 역시 이런 Human mind의 결과물이라고 생각

- Human mind는 어떤 방향성을 갖는지에 따라 조직을 파멸에 이르기도 할 만큼 불확실하고 변덕스럽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믿기 시작하면 더없이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


- 교세라 초기에 10명의 직원이 단체로 임금인상, 성과급 지급, 근무조건 보장을 해왔음. 하지만 설립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회사는 이런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었음

- 이나모리 가즈오는 오직 교세라를 모든 직원이 기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며 이들에게 회사의 성장을 위해 함께 애써달라 요청. 하지만 직원들은 자본가들이 늘 달콤한 말로 노동자를 속인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음

- 이나모리 가즈오는 자신이 회사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것이고,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일하거나, 구성원들을 배신한다면 자기를 죽여도 좋다(?)고 까지 말하며 구성원 설득에 나섰음

- 이 논의는 사흘간 지속되었으며, 사무실에서 끝이 나지 않아 이나모리 가즈오의 집까지 가서 논의를 이어갈 정도였다고

- 결국 직원들은 의견을 철회. 그리고 이토록 어렵게 믿음을 가진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회사와 이나모리를 믿고 열심히 일해주었음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과 임직원들, Source : Kyocera

-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이나모리는 일과 회사의 목적을 가족을 부양하는 것, 그리고 엔지니어로써 기술을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에만 몰두

- 하지만 이 사건이 있은 후, 경영자는 가족뿐만 아니라 회사의 구성원인 직원들을 부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는 것을 깨달았음

- 즉 회사를 경영하는 목적은 리더로서의 이기적인 motivation을 버리고 '개인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모든 직원, 구성원과 그들 가족의 행복과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 직원의 물질적, 지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 기업이 사회에 책임 있는 구성원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 교세라의 경영이념

- 결국 경영자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회사의 구성원들을 이해시키고, 이들이 같은 철학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직원이 회사를 신뢰할 때 가장 큰 성과가 만들어진다.

- 이나모리 가즈오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과 소통하고, 경영자로써 회사를 어떻게 발전해나가고 싶은지 철학과 생각을 공유했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들과도 가능한 오랜 시간 소통하며 그들이 이런 방향과 철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

- 어떤 사람들은 이나모리가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직원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그냥 두는 것이 낫다고 말했지만 이나모리는 이런 노력을 멈추지 않았음

- 만약 이런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과 회사가 함께한다면 회사와 직원모두 불행해지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라고 요청할 수 있어야 함

- 이런 노력으로 교세라는 직원과 경영인이 강한 관계를 구축하고 많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음


[서방의 성과중심 경영스타일과 비교]

- 교세라의 이런 경영 스타일은 ROE를 중요시하는 일부 미국투자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음(미국 투자자들은 이익을 축적하지 않고 주주들에게 돌려주거나 M&A등 자본지출을 통해 ROE를 높이는 전략을 요구)

- 하지만 이나모리 가즈오는 기업이 장기적인 불확실성 안에서 직면할 수 있는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며,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

- 이는 견고한 재무건전성에서 나오는 것

- 이나모리 가즈오는 단기에 회사 이익을 좇고 배당을 하는 방식의 주주가치 환원보다, 직원 중심의 경영을 통해 직원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결국 장기적으로 이를 주주가치로 환원하는 것이 더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함


Inamori Kazuo

[Episode : 경기침체를 극복해 나가다]

- 직원과 회사의 관계는 특히 경기가 어려울 때 그 취약점을 드러냄(Litmus test와 같음)

- 1974년 오일쇼크 당시 교세라의 월 주문량은 크게 줄어 1/10 수준으로 하락

- 하지만 교세라는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고 일부 직원들은 생산에 투입하고 나머지 직원들은 공장부지를 청소하거나 정원을 관리하거나 교육훈련 등에 참여

- 이때 매니지먼트의 연봉은 30% 삭감, 관리자의 급여도 7%가량 삭감했음

- 일반 직원들의 급여 역시 인상이 아닌 동결로 결정되어야 했는데 당시 일본은 빠른 경제 성장으로 매년 큰 폭의 연봉 인상을 겪어왔기 때문에 직원들이 임금 동결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려운 분위기였음

- 하지만 교세라 노조는 노사가 결국 한 마음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어 임금 동결에 합의

  (당시 교세라의 상급 노조에서 이런 결정에 반박하고 철회하라는 압박을 가하기도 했음. 의견차이가 이어지다 교세라 노조는 결국 해당 연합에서 탈퇴하고 임금 동결을 고수)

- 1976년 회사가 정상화된 후 교세라는 직원들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연봉을 22% 인상(2년 치)하고 반기 보너스, 특별보너스 등을 제공. 또한 1975년 교세라는 당시 소니를 제치고 일본 내 기업가치 1위에 오르기도 했음.

- 경기침체 국면에서 파트너십 매니지먼트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줬던 일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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