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원천IP ②IP 부가가치와 2차판권 ③생성형 AI
영상 콘텐츠 시장이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웹소설, 웹툰과 같은 원천 IP의 부상, IP 부가가치 배분 효율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영상 제작 환경 전체가 향후 수년 내 크고 작은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이 그 배경이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해야 하고, 또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각자의 영역에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글을 적어봤다.
[확실한 주류로 자리 잡은 웹툰, 웹소설 원천 IP]
웹소설과 웹툰 산업이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콘텐츠들이 그 자체의 시장규모도 외 원천 IP를 활용한 부가사업 가치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화, 캐릭터 사업, 오프라인 공간 구축, MD판매 등이 그 예시다. 사실 해외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IP만 롱런할 수 있다면 통상 시장규모는 1차 보다 2차 판권사업 쪽이 훨씬 크다. 하지만 국내 콘텐츠 산업은 아직 깊고 단단한 뿌리를 갖지 못했다. 콘텐츠 직접 판매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근래 들어 한국 콘텐츠 산업 성장 배경에는 웹툰과 웹소설 콘텐츠 역할이 주요했다. 이런 원천 IP는 애니메이션보다 드라마, 영화를 통해 실사화에 집중되었고 장르는 실사화에 적합한 멜로, 로맨스, 일상물이 대분을 차지했다. 최근 들어 액션, 스릴러, 좀비물 등 다양한 장르의 실사화가 계속해서 시도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나 혼자만 레벨업>과 같이 메가히트 웹툰 IP의 경우 여전히 판타지 장르가 적지 않고, 이 경우 실사화보다는 애니메이션화가 적합하다. 하지만 <나 혼자만 레벨업>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애니메이션화는 여전히 일본이 강한 면모를 보인다(동 작품은 A-1 Pictures가 제작하였다).
한국의 경우 K-POP IDOL과 드라마 콘텐츠 IP에 강점이 있는데 이러한 IP들은 Life Cycle이 짧게는 1~2년(드라마)에서 10여 년(아이돌) 정도로 길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IP를 계속해서 제작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수익화할 수 있는 것은 우리 IP만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모두 상존하는 IP를 계속해서 제작해야 한다는 것은 사업적인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한다는 것과 같다. 국내 엔터사들이 동시에 IP를 제작하고 운영할 수 있는 멀티레이블 체제를 적극 도입하고, 드라마 제작사들 역시 합종연횡하여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 모두 이런 사업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시선을 돌려 일본의 IP 사례를 보자. 만화 강국인 일본은 일찍이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하여 만화의 상업적 성공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도 이어갔다. 덕분에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토에이(TOEI), 마파(MAPPA), 지브리(GHIBLI)와 같이 개성과 경쟁력을 갖춘 스튜디오들이 탄생하였다. 시리즈물의 특성상 한번 성공한 만화/애니메이션은 10년에서 50년 이상까지 긴 Life Cycle을 이어갈 만큼 IP로써 공고한 안정성을 갖고 있다. 이런 특성은 사업 안정성이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IP비즈니스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또한 일본 제작사들이 한국과 달리 IP홀더로써 비즈니스를 전개해 가는 점 역시 큰 차이 중 하나다.
[IP의 부가가치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한국은 (특히 드라마) 제작사가 IP를 소유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 제작비를 OTT에서 받든, 방송국에서 받고 PPL을 붙이든 어떤 형태로든 자금을 끌어와 제작한 뒤 일정 마진을 받고 채널에 판매 또는 납품하는 형태다. 국내 드라마 한 편 제작비가 10억 원에서 많게는 30~40억에 달하는 상황에서 제작사가 이를 100% 부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20부작이면 제작비가 200억에서 최대 800억에 이른다). 제작사의 규모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영원히 외주 형태로 머물 수밖에 없는데, 현재 같이 채널이 강력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환경에서는 제작사의 규모화가 쉽지 않고, 이는 결국 생태계 종사자들에게 좋은 업무환경을 제공하는데 어려움이 되어 전반적인 콘텐츠 퀄리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일본은 조금 다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제작위원회 형태로 이뤄져 있는데 제작위원회에는 출판사, 광고 대행사, 완구회사, 방송국 등 IP 판권과 관련된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이 회당 3~5억 원 수준(드라마 보다 훨씬 낮기도 하다)인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투자하고, 이로 발생하는 콘텐츠 매출과 2차 판권사업에 대한 이익도 가져갈 수 있도록 구조를 짠다. 함께 투자하고 함께 이익을 공유해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제작위원회를 통하지 않고 리스크와 이익을 모두 한 기업이 가져가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제작비를 지불하고 수입도 독식하는 구조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이 이런 케이스다.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IP부가가치를 배분하는데 있어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2차 판권사업의 활성화 여부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2차 판권사업은 1차 사업에 속하는 콘텐츠 판매 외에 IP 라이센싱을 통한 2차 콘텐츠 제작 및 창작, MD판매, 캐릭터 사업 등을 말하는데, 일본은 2차 판권사업이 1차 사업을 능가할 만큼 시장규모가 크고 제작 역량, 유통채널 모두 성숙해 있다. 반면 한국은 IP비즈니스 자체가 콘텐츠 본연인 1차 사업에 집중되어 있어 채널의 힘이 강력하다 보니 일본과 같이 IP의 부가가치를 각 이해관계자에 배분하기 어려운 형태다. 이 내용은 뒤에서 좀 더 상세하게 이야기 나눠보자.
물론 제작위원회 방식에도 많은 문제점이 지적된다. 폐쇄적인 형태인 제작위원회가 일본 콘텐츠 산업을 갈라파고스로 만든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고, 일본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기르는데 장벽이 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시장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서 IP헤게모니를 각 이해관계자들이 셰어하고 수익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분명 참고할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2차 판권사업에 주목해야 한다]
콘텐츠 사업은 설득력 있고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2차 판사업에 속하는 판권 및 부가사업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 애니메이션 기업 토에이애니메이션은 영상판매와 판권사업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2%, 48% 수준이나,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영상판매가 33%, 판권사업이 65%로 판권사업이 훨씬 높다. IP 콘텐츠 사업의 단기 성과는 시청률/조회수/관객수와 같은 콘텐츠 판매가 결정하지만, 2차 판권사업은 1차 사업을 기반으로 회사의 중장기 성과와 안정성을 결정한다. 콘텐츠 사업이 단순히 영상 콘텐츠에서만 끝나면 안 되는 것이고 팬덤을 확보해 부가사업을 펼치고 사업 안정성을 확보해 가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개는 오랜 시간 시리즈로 제작되는 작품들이 이런 강점을 갖고 있는데, 일본이 잘하는 만화, 애니메이션은 이에 부합해 2차 판권사업이 크게 성공한 경우다. 훌륭한 원천 IP를 갖고 있는 한국 역시 좋은 환경과 자양분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AI서비스 등장과 제작환경 변화]
시장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생성형 AI시장을 보면 제작사의 역할은 더욱 줄어들 것처럼만 보인다. 현재 실제 사용할 수 있는 AI서비스들의 영상길이는 3~4초 수준인데 간단한 커머셜이나 인서트 컷 등은 바로 활용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는 광고영상업계, 이미지/영상 스톡업체들이다. 일부는 빠르게 대체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스톡업체들은 AI업체와 손잡고 사이트 내 생성형 이미지들을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영상길이가 20초~60초 수준까지 늘어나면 숏폼 콘텐츠까지 영향을 받는다. 어떤 콘텐츠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느낄 거다. 하지만 이쪽은 대부분이 개인 크리에이터 영역이라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손쉽게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 잘만 활용하면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고 1인 크리에이터의 활동 반경이 넓어져 기업형 콘텐츠 제작사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시간이 수십 분 단위로 늘어나게 되면 종래에는 AI기술이 드라마와 영화까지 침투하게 된다. 물론 AI가 인간이 만드는 영상을 모조리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콘텐츠는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점도 있지만 인간의 철학과 사회를 표현하는 예술적인 부분도 크게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전통적인 방식과 사람의 손맛을 그리워하고 또 소비할 것이다. 하지만 퀄리티나 제작비를 기준으로 Low to middle 포지션에 위치한 집단은 상당한 변화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여기서 1인 창작의 기회가 크게 열릴 텐데, 원천 IP 창작자들에게 주요한 전환점이 된다. 웹소설과 웹툰은 오래전부터 1인 창작이 가능한 영역이었다. 웹소설과 웹툰은 몇 가지 도구들만 있으면 기술적인 것보다는 창작과의 싸움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영상은 아니다. 영상을 제작하려면 장비가 있어야 하고 촬영, 녹음, 편집, 보정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며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 로케이션, 미술도 필요하다. 시간도 수개월, 수년에 걸친 작업이다. 2D, 3D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실사작업 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AI기술로 1인 영상제작 시대가 본격화되면 그동안 먹방, 댄스, 겜방, 토크쇼 등에 국한되어 있던 콘텐츠 카테고리가 각 장르면 드라마, 영화까지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점도 많다. 현존하는 서비스들은 영상을 제작하는 결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 기술로 뭘 할 수 있을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그렇다. 현재의 AI서비스는 예술보다 기술이 앞서있고 스토리텔링보다는 소라가 보여준 실제와 같은 놀라운 그래픽처럼 당장 보이는 몇몇 Wow point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이런 서비스에서 영상을 편집하고 연출할 수 있는 기능은 대부분 무시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각 서비스들은 각자의 영역과 콘셉트를 찾아갈 것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 역시 기술이 아닌 예술이기 때문이다(기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내용은 굳이 겉으로 드러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용자들은 더 이상 기술에 감탄하지 않는다. 익숙해질 뿐이다).
[경쟁이 아닌 상호보완으로]
예컨대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편집과 연출이 필수적이다. 카메라 구도부터 캐릭터의 표정, 액션, 라이팅, 장소와 날씨까지 변경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pixel 단위로 학습하고 이를 재배치하는 현재의 생성형 AI 서비스는 영상 내에서 물리적 시뮬레이터를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고, 이는 일관성이 무너지는 오류로 연결된다. 많은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했지만 영상이 현재보다 조금만 길어져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다시 배수 이상 늘어난다. 업계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혁신하기 위한 기술 개발과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아직은 불완전한 생성형 AI 영상 생태계는 현재 경쟁이 아닌 상호보완의 구간에 있다. A서비스에서 부족한 기능은 B서비스로 이동해 채우고, 다시 C서비스로 가서 마무리한다. 영상은 A서비스에서 제작, TTS와 같은 AI음성은 B서비스를 통해 작업하고, 스타일이나 디퓨전은 C서비스에서 작업하는 식이다. AI서비스마다 갖고 있는 강점을 파악한 유저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골라 활용한다. 여러 서비스를 구독해야 하지만 기존 영상제작비와 비교하면 획기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자체적으로 API나 협업을 통해 이런 외부 기능을 조금씩 끌어오는 서비스들도 등장한다.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는 각 서비스 기능이 겹치고 경쟁하는 구도로 들어갈 수 있겠지만 상당기간은 이런 상호보완의 생태계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이렇게 보면 현재는 초기도 아닌 극극초기 단계다). 이용자와 기업에게도 그것이 더욱 효율적인 방향이기 때문이다.
결국 각 서비스는 기술만큼이나 시장 포지셔닝에 대해 깊게 고민하여 유효한 마켓과 수요를 공략하는 것이 주요해졌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기술 기업들이 간과하는 점이,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면 누구든지 쓰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장에 우리 프로덕트가 어떻게 각인되고, 또 어떤 고객에게 다가갈 것이며 고객들의 입장에서 우리 프로덕트가 어떻게 느껴질지 누군가 계속해서 고민하고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플랫폼이더라도 사용성과 명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기술은 잠깐의 화려함과 자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