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이식스(DAY6)의 노래 중에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라는 곡이 있다. 곡은 처음 나왔을 때도 잘되었지만 중간중간 역주행을 했고, 최근에도 많이 들린다. 여름과 잘 어울리는 청량한 곡이다.
2. 이 곡의 가사 중에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라는 부분이 있다.
3. 나는 이 한 줄의 가사가 진정한 의미의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4. K-POP은 산업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문화 현상이다.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팬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훨씬 크다.
5. 대부분 팬들은 젊고 어리다. 아이돌도 젊고 어리다. 양쪽 모두 감정이 가장 극적이고 열정적인 상태에 있다. 이때 만난 아이돌과 팬이라는 인연은 서로에게 청춘이고 추억이다.
6. 결국 아이돌과 팬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다. 물론 이게 엄연한 산업이기 때문에 팬은 돈을 써야 하고, 가끔은 호구다, 돈낭비다, ATM이다 그런 조롱도 듣지만 그 기저에는 감정적으로 매우 강력한 라포가 형성된다. 이걸 무시할 수는 없다.
7. 그래서 서사가 깊은 아이돌들이 단순히 상업적으로 완성된 아이돌보다 팬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만들어내고 롱런한다. 함께 아픔과 슬픔을 겪고 좌절하고 응원하고 이겨내고 이런 과정에서 형성된 관계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가끔 이걸 억지로 만들어내려는 아이돌이나 팬들도 있을 정도다)
8. 설령 나이가 들고 인기가 전성기 때보다 낮아져도 자기들 만의 서사와 음악적 역량, 색깔을 갖춘 그룹이라면 더욱 그렇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9. god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god의 경우 처음부터 완성형 아이돌은 아니었다. 하지만 활동 과정에서 많은 일을 겪고 팬들은 그 과정을 모두 지켜봤고 함께 이겨냈다(가장 중요한 건 멤버 누구도 그 경계선을 넘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상업적으로 god보다 성공한 그룹이 더 있겠지만 god가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사람들에게 전달한 음악적 가치들은 쉽게 넘어설 수 없는 것들이다. 전례 없는 성공사례로 꼽히는 BTS 마찬가지다. 결국은 서사다.
10. 아이돌 멤버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 팬들이 느끼는 허탈감과 분노는 여기에 기인한다. 유사연애나 애착 그런 것보다는 내가 소비했던 돈, 시간, 감정, 그리고 함께한 추억들까지 훼손되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11. 때문에 아이돌과 팬은 서로의 청춘과 추억을 소중히 보호해줘야 할 일종의 '도의' 같은 것이 있다. 추억은 누구든 아름다운 상태로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12. 엔터산업이 이런저런 풍파를 겪고 있는데 결국 장기 성장을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음악색깔이 있고, 팬들과 함께 본인들만의 서사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그룹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완성형 아이돌들도 필요하지만 오히려 이런 그룹일수록 7년 계약을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멤버 각자의 길을 간다.
13. 아이돌은 시작점이 회사의 수요와 시스템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는 결국 회사가 길을 터줘야 한다. 아이돌이 진정한 의미의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팬들과 함께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는.. 그런 사고와 역량들 말이다. K-pop이 지금보다 문화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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