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제작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 고민해본다
통상 경제 발전이 일어나면, 제조업의 흐름은 인건비가 높은 선진국에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한다. 인건비는 매입가만큼이나 중요한 원가이므로 제조업에서는 제조 원가에 해당하는 인건비 효율화가 매우 중요하다. 원재료는 통상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Q를 조절하긴 어렵기에, 대량 구매로 P를 낮추거나 기술 발전을 통해 더욱 저렴한 제품을 개발하는 등 방법을 찾는다. 인건비는 사람을 줄여 Q를 조절할 수도 있고 생산기지를 저임금 개발도상국으로 옮겨 P를 낮출 수도 있다. 판가를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제조업에서 원가를 통제하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한 일이며, 원가 관리는 사실상 제조업의 꽃이자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제조업이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하면 선진국은 서비스업이 주를 이룬다. 선진국은 대부분 70%가 넘고 한국은 60% 수준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글로벌 경제가 일원화되면서 산업구조는 그렇게 변해왔다.
문제는 제조업이 개발도상국으로 넘어가도 서비스업은 선진국에 남아 GDP에 기여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최근 들어 이런 서비스업 공급망도 제조업과 동일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인건비다. 높아진 선진국 인건비에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 일자리들이 개발도상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미국 식당에 종업원 대신 스크린을 띄워두고 필리핀 직원이 카메라 너머로 응대를 한다든가, 소비자 상담업무를 인도로 아웃소싱 한다든가 하는 일들은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서비스업에도 이런 형태의 업종 말고 제조업과 같은 성격을 가진 업종이 있으니 바로 콘텐츠업이다. 콘텐츠 산업은 서비스업으로 분류하지만 제조업과 같은 공급망 구조를 갖고 있다.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음악산업 모두 마찬가지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더해진 뒤 콘텐츠 제작이 국가와 지역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이런 공급망의 구조는 오히려 제조업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빠르게 발전했다. 그래서 나는 이걸 일종의 디지털 제조업이라고 부르는데, 예컨대 3D 애니메이션 제작의 파이프라인을 보면 이게 왜 디지털 제조업인지 아마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D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작품을 기획하고 스토리보드 구축, 디자인 등이 진행되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실제 캐릭터를 모델링하고 라이팅, 애니메틱스, 연출 작업이 포함되는 메인 프로덕션, 합성, VFX, 색보정 등이 포함되는 포스트 프로덕션으로 구분되는데 작품이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간 것처럼 철저한 분업에 의해 이뤄진다. 제조업의 방식과 동일한 것이다. 이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올라오는 수많은 크레딧을 보면 또 한번 명확하게 느껴진다.
때문에 결국 콘텐츠 산업도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원가를 관리하고 효과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이 된다. 공정을 어떻게 효율화 할것이며, 제작 원가는 어떻게 관리할 것이고, 어떤 기술혁신을 활용할 수 있는지 등에 고민하게 된다.
이런 사실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디지털 제조 역량을 키운게 바로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이미 글로벌 프로덕션 시스템을 갖췄다. 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넷플릭스가 각국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만큼, 원하는 속도에 맞춰 수급할 수 있다는 버티컬적인 의미와, 전 세계 밸류체인을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을 분업화하는 호리존탈적 의미다. 아무튼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파워풀한 능력을 갖춘 회사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글로벌 콘텐츠 제조 역량을 갖춘 회사다. 이는 점차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의 표준이 되어가고도 있다. 게임회사들 중에서도 대륙별로 제작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A국가가 개발하다 퇴근시간이 되면 그걸 B국가로 토스하고, B국가가 다시 C국가로, C국가가 다시 A국가로 토스하는 일종의 교대개발 시스템을 갖춘 곳들도 있다. 콘텐츠 산업이 무형의 제품을 제조하다 보니 제조업보다 공급망이 더욱 고도화된 셈이다.
(지역에 특화된 제작 역량을 키우기도 하는 넷플릭스.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https://about.netflix.com/ko/news/teaming-with-wit-studio-to-support-the-craftsmanship-of-anime
한국의 경우 대표적으로는 다수의 웹툰이 베트남 등 해외에서 제작되고 있으며 VFX 같은 작업도 해외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기술적으로도 동남아나 중국 등의 수준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충분히 가능한 사업이 되었고 원가 절감 효과도 있다.
여기까지는 과거 이야기다. 콘텐츠 산업을 영속성 있고 규모화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제조업으로 이를 바라보고 효율화해나가야 하며, 이미 그 행동을 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공급망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정도의 거대한 변수, 생성형 AI가 등장한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