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에서 에리히 프롬까지
영화《컨택트》(원제: Arrival)는 테드 창의《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통해 언어와 시간, 존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지구 곳곳에 나타난 12개의 외계 우주선에 대응하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스는 외계 존재인 헵타포드와의 소통에 나서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선형이 아닌 원형 구조로, 개념과 시간을 동시에 담고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이 언어를 습득하면서 점차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영화는 처음에 딸의 죽음을 과거로 보여주지만, 그것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임을 알려주면서 영화 전체의 구조는 뒤집힙니다. 외계인들이 준 ‘무기’라는 메시지는 오해였고, 그것은 오히려 인류에게 필요한 협력과 이해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루이스는 이 미래를 알면서도 딸을 낳고, 사랑하고, 떠나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영화는 시간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 그리고 진정한 소통이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변화라는 점을 말합니다. 고통이 있는 미래라도 있는 그대로 살아내겠다는 선택은,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과도 같죠.
한편, 에리히 프롬의 철학서 《소유냐 존재냐》(원제: To have or to be)는 현대 사회의 병리와 인간 존재 방식을 분석하며, 소유 중심의 삶에서 존재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현대인은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며, 집, 명예, 지식, 심지어 사랑조차 소유의 대상이 된다면서요. 이러한 삶의 방식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불안을 키운다고 경고합니다.
《컨택트》와 《소유냐 존재냐》, 이 두 작품은 전혀 다른 형식(영화와 철학서)으로 제시되었지만, 인간 존재의 본질과 인식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 사이의 깊은 철학적 연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시간: 운명과 존재를 받아들이는 태도
《컨택트》의 가장 독창적인 장치는 비선형적 시간 인식입니다. 외계 언어를 습득한 주인공 루이스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적으로 인식하게 되며, 결국 다가올 고통을 알고서도 그 길을 선택합니다. 이는 단순한 운명 수용이 아니라, 깊이 있는, 존재의 수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유냐 존재냐》역시 시간 개념에서 존재 방식의 전환을 강조하는데요, 그는 현대인이 시간을 소유(관리하고 지배)하려 한다고 비판하며, 바로 지금, 여기의 존재야말로 인간 본연의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시간을 '지배의 대상'이 아닌 '존재의 조건'으로 바라보며, 시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곧 삶의 태도 변화를 이끈다고 말합니다.
2. 언어: 인식과 존재를 바꾸는 열쇠
《컨택트》에서 외계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전환시키는 힘입니다. 언어를 습득하면서 루이스는 세상과 자신을 다르게 인식하게 되고, 이는 결국 그녀의 존재 방식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소유냐 존재냐》역시 언어를 중요한 철학적 지점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다'는 말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이는 인간의 사고를 소유 중심으로 고정시킨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I have time’ 등의 소유격 표현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이 어떤 존재 방식을 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두 작품 모두 언어가 단지 말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틀을 결정하는 구조임을 강조합니다.
3. 관계: 타자를 향한 태도
《컨택트》의 핵심은 낯선 외계의 존재(헵타포드)와의 이해와 공감입니다. 인간은 두려움에서 출발하지만, 루이스는 언어를 통해 그들과 소통하며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소유냐 존재냐》는 사랑이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진정한 관계는 상대방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도 두 작품은 관계의 본질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임을 역설하며, 진정한 인간성과 윤리는 타자와의 관계 방식에서 드러난다고 봅니다.
《컨택트》는 과학소설의 틀 안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를 탐구하며, 시간, 언어, 관계를 통해 루이스의 존재적 전환을 보여줍니다. 《소유냐 존재냐》는 그러한 전환이 현대인의 삶에 얼마나 절실한지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며, ‘존재 중심의 삶’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둘은 형식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