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의 지침서를 알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나에겐 힘이 되더라
2020년부터 2021년.
회사 일로 힘들 때. 코로나 시기를 맞으며 갑자기 이직을 두 번이나 했음에도 회사가 힘들었던 암흑기.
모임에서 만난 대학친구 A가 얼마 전 다녀온 철학관이 그렇게 사주를 잘 본다며 꼭 가보라고.
원래 사주명리학을 믿기도 했거니와 내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에 친구 B와 방문했다.
이게 벌써 3년도 더 된 일이니,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21년도 10월 즈음인가 방문한 그 철학관에서는 일이 너무 많고 힘들다는 나의 불만에 지금은 그런 시기라며, 아직은 나의 때가 오지 않았으니 기다리란 답이 돌아왔다. 이직은 어떻냐는 말에, 지금 옮길 수는 있지만 내년 상반기에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니 6개월만 기다렸다가 움직이냐는 것이 어떻냐고 했다.
매일 밤 출근을 생각하며 괴로운 시기에 6개월이라니, 미칠 것 같은 마음이 울컥 솟았다.
끝내 나는 선생님의 조언을 듣지 않고 직장을 때려쳤다. 선퇴사 후입사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데는... 매일같이 갈리는 내 자신을 구할 길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생활이란 것이 늘 그렇듯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는 어쩌면 가장 많이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성숙이므로. 자아가 건강한 어른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렇게 나는 뒤도 안 보고 퇴사를 '때렸다'.
그간 버려진 몸 상태를 소생하려 PT도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 3개월에 200만 원이란 거금 앞에서도 나는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합리화로 과감히 소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종 업계 대기업 계열사로부터 오퍼레터를 받을 수 있었다. 퇴사해서 다시 입사하기까지 약 1달 여의 시간이 있었고 간절했지만 긴장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무모한 자신감일 수도, 사주 선생님이 심어준 용기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될 것 같은 구석이 있었나 보다. 그렇게 2021년 11월, 나는 세 번째 이직을 단행한다.
A대행사에서 2년 3개월, 옮겨간 인하우스 호텔 지주사에서 1년 6개월, 그리고 건설사에서 1년...,
점점 짧아지는 주기에도 다시 한 번 이직을 했으니 주변에서 나에게 '프로이직러'라고 부르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행사가 첫 회사인 많은 선후배들을 지켜보면 점프업을 위해 여러 번의 이직은 대수가 아니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이직한 곳에서, 나는 어땠을까? 대기업이라는 환경과 나쁘지 않은 연봉, 대리급임에도 주어지는 많은 역할과 책임은 충분히 나를 만족케 했다. 그러다 갑자기 사수가 일을 그만두고 3천여 명이 넘는 회사에서 브랜드 일을 혼자 맡게 되고, 나에게 자꾸 술자리를 권하는 상무님에게 질리기까지 정말 선생님의 말씀대로 '6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시기 우연히 발견한 IT 대기업 공고는 나에게 운명적이기까지 했다. 선생님이 말한 2022년 상반기, 좋은 자리! 그래 이거야 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직 5개월만에 지원서를 작성했다. 미친 거 아니냐고? 거의 반 미쳐가긴 했다. 그리고 나는 IT 기업에 다시 한번 붙었다. 합격 통보까지 정확히 6개월.
간절했고 오랜 기간 기다렸다. 그리고 진심으로 잘하겠다고 이번엔 더 잘 참아보겠다고 다짐했다. 근데 문득 궁금해졌다. 사주 선생님은 내가 6개월 후에 이직할 거란 걸 어떻게 아셨을까? 한치 앞도 모르겠는 나의 망망대해를 어떻게 선생님은 정확히 다음 목적지를 짚어내셨을까. 그때였다, 사주 그리고 명리학이란 공부가 궁금해진 것이.
그렇게 뜬금없이 나는 명리학을 배우게 된다. 호기심을 핑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