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
- 오랜만입니다. 되게 오랜만에 저희가 거의 계절이 한두 번이 바뀌고 이걸 하네요.
- 떨리시나 보네요
- 네 아주 긴장이 되네요.
- 바로 시작하시죠.
[우용]
저희가 방학 동안 그래도 책을 한 권은 함께 읽었어요. 이거를 한동안 거의 쉬면서 다시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둘 다 너무 바빴으니까. 결국에는 이제 방학에 다시 하자고 말이 나와서 우리가 [스토너]라는 책을 읽었어요. 우리가 같이 고른 첫 번째 책인데, 원래 이 책을 알고 계셨었나요?
[우창]
원래 주변에서 좀 친구들도 재밌다고 했던 것 같고 이동진 평론가가 되게 추천한 책이었어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저희가 지난번에 [초조한 마음]이라는 소설을 되게 재미있게 같이 읽었었고 이번에 다시 시작한 [책읽삽] 4회 차에서 비문학보다 소설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소설을 읽는 게 우리 둘이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우용]
거의 뭐 앞으로는 비문학 고르지 말라고 거의 엄포를 하네요.
[우창]
왜냐하면 그러면 네가 경제 서적만 고를 거기 때문에ㅎㅎ
[우용]
첫 번째 질문입니다. 책 속에서 스토너는 거의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가는 인물로 나타나는데, 주인공인 스토너라는 인물의 삶이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나요? 책을 읽으면서 저는 주인공의 삶을 보고 저런 삶은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이 소설은 스토너의 어떤 비참한 삶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오히려 이러한 삶이야말로 실패한 삶이 아니라고 설득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별로 설득이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본인은 스토너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이 들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창]
저도 우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스토너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고 느꼈지만, 실패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의 삶이 분명 외로웠을 것 같기는 하다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받았던 것 같아요. 물론 스토너가 부모님, 연인, 자식 등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나오 기는 하지만, 그런 함께하는 순간들은 매우 짧았던 것 같고, 오히려 혼자서 고뇌하고, 어떤 선택이나 결정하는 모습이 비중 있게 다뤄졌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항상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과의 결혼생활, 동료 교수와의 마찰 때문에 학교에서도 거의 배제되다시피 밀려나는 삶을 보면 사실 사람의 인생에서 되게 중요한 두 부분인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소외되고 있던 사람인 것 같아서, 스토너가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스토너가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이 사람이 결국 선택했던 것들은 그 당시 그 사람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스토너가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부분까지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뭔가 계속 스스로 살아가려는 동력을 찾고 그것을 불태운 사람이 아닌가 싶기는 했던 것 같아요.
우용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용]
저는 그게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아내와의 불화를 생각해 보면, 이디스와 마찰이 있을 때마다 결국엔 자신의 서재나 자신이 연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숨어 들어갔잖아요. 자신에게 주어진 마찰을 주도적으로 해결하기보다 피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여전히 좀 들어요. 결국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 – 연구의 공간이나, 강의하는 수업의 종류나, 딸과의 관계 등 – 을 놓치게 되었잖아요. 그렇게 본인이 애정하는 것들을 주도적으로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 과연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나 생각이 들어요.
[우창]
뭔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이랬던 사람은 확실히 아니긴 하죠.
[우용]
실패자가 맞는 건가요?
[우창]
그런데 이 문제는 주변 인물의 특성도 충분히 고려해봐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우용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적극적인 대처 – 정면 돌파를 한다거나 문제 상황을 직시하고 거기서 생기는 고통을 받아들인다거나 – 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상대가 거기에 응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이디스(스토너의 아내)를 생각해 보면 스토너와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면 이때 스토너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에 나온 회피의 선택 밖에 없지 않았나 싶기는 한 것 같아요. 말로써 했을 때 해결이 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거니까요.
한편 가정의 문제 외에 학교에서의 문제는 스토너가 택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까 싶어요.
[우용]
그 상황은 어떤 상황이었죠?
[우창]
한 학생이 박사과정을 계속 이어갈지를 심의하는 교수 회의체에서, 스토너는 그 학생의 지도교수인 로맥스와 의견이 대립합니다. 스토너는 그 학생의 기본적인 자질을 의심하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학생이 박사과정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로맥스는 스토너가 해당 학생이 족부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편견을 갖고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죠. 그런데 이제 그러한 대립 이후에 두 사람이 대화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보다는 아예 말을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버렸어요. 그 때문에 스토너가 말년에 학계에 발을 붙이기 어려워진 원인을 제공했다고도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나도 그렇게 노인이 되었을 때, 아니면 어쩌면 지금조차도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해보려고 하는가, 내 전제가 다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들은 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용]
지금 딱 우창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본인이 평소에 얼마나 대화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지, 그리고 문제 해결의 솔루션을 대부분 대화와 상대방과의 조화에서 찾으려고 하시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 하는데, 본인의 삶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되나요? 스토너의 삶의 우선순위는 영문학 연구에 있었던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스토너가 자신의 우선순위였던 연구 과제에만 매몰되어 가정이나 다른 후순위에 있는 것들은 조금 등한시한 측면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본인에게 있어서 지금 [일, 가정, 사랑, 행복 등] 이런 것들 중에 우선순위가 어떻게 되고, 또 그런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예를 들면 10년 후에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 것 같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창]
이 질문을 미리 받아 보고 제가 느꼈던 것은... 스토너라는 사람을 생각을 해 봤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수식어는 아빠나 남편보다는 학자인 것 같아요. 내가 나중에 스스로를 정의할 때 삶의 우선순위가 큰 영향을 미치겠구나 싶었고요.
저는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역할인 것 같고 두 번째는 책임의 크기인 것 같은데,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고 그 역할 속에서의 나의 책임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서 우선순위가 정해진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제가 이제 앞으로 밟아 나갈 인생의 단계마다 그 우선순위는 당연히 변화를 하게 되겠죠.
저는 [나, 일, 가정, 친구, 연인 등]으로 보았을 때, 지금 20대 중반의 저의 단계에서는 [나, 일, 연인, 가정 = 친구] 순서인 것 같아요. 아직 저는 스스로 제가 누군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것 같아서, 지금은 저를 찾아가는 데 가장 큰 책임을 느끼는 것 같아요. 10년 뒤에는 아마 결혼을 한다면 [일, 가정, 나, 친구] 이렇게 될 것 같아요.
[우용]
어찌 됐든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차이가 없는데, 그 안에서의 순위는 바뀔 것 같다는 말씀이시네요. 제가 예상했던 우선순위랑 조금 달라요. 저는 지금은 일이 우선이고, 나중에는 일이 뒤로 밀릴 것 같고, 가족이 가장 위에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왜 시간이 지난 미래에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은가요?
[우창]
10년 뒤라고 생각했을 때, 그때까지 저는 아직 사회초년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을 어느 정도의 궤도까지 올릴 때까지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40대가 되면 당연히 저도 가정이 제일 먼저 올라올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 우용님은 일이 엄청 중요한 사람인 것 같은데, 이 질문에 대해서 그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우용]
글쎄요, 지금 생각을 해 보면 저는 일단 1순위가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님인 것 같고 2순위가 일인 것 같아요. 근데 여기서 얘기하는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 진짜 피로 섞인 가족만이 아니라 친구들 중에서 우창님이나 정말 완전 가까운 친구들까지 제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주이고 그게 1순위에 있어요. 외부에서 제가 보이기에 가족에 많이 신경 쓰는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고, 연구나 공부에 신경 쓰는 모습이 많이 드러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약간 워커홀릭처럼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저희 부모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집회서 3장 4절인데,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것과 같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부모님을 뿌듯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있는 거죠.
군대 첫 휴가 나가기 전에 저희 인사과장님이 꼭 나가면 세족식을 하라고, 어머니 발을 씻겨 드리라고 해서 발을 씻겨 드린 적이 있었어요. 이제 발을 씻겨드리면 분명 느끼는 게 많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씻겨 드렸는데, 당시에는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어요ㅋㅋㅋ 그냥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오글거리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씻겨드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자취도 시작하고, 계속 떨어져 있으니까 부모님 하고 이렇게 살을 맞대고 있을 시간은 많이 없잖아요. 그때 생각이 좀 그렇게 한 번씩 나는 것 같아요.
네, 다음 질문 드릴게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더 우선인가요, 아니면 하는 일 내지는 맡게 된 일을 좋아할 줄 아는 것이 더 우선인가요? 그러니까 두 가지 다 필요하겠지만, 스토너 같은 경우에는 맡게 된 일을 좋아한다기보단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되어 있는 삶을 살았었잖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본인이 맡은 일을 좋아할 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창]
저는 이 질문도 되게 좋았어요. 근데 이제 스토너의 상황이 우용님이 말씀하셨던 상황에 정확하게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긴 해요. 왜냐하면 저는 연구를 과연 그 사람이 좋아서 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긴 하거든요. 스토너가 영문학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도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건 맞는데, 애초에 영문학을 선택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가 삶에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연구밖에 없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즉,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질문을 생각해 보자면, 이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일을 돈벌이 수단 말고 자아실현의 목적, 아니면 다른 대의를 위한 것으로 여긴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일을 그렇게 대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비교적 빨리 찾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빨리 찾아낸 사람은 그것에 몰두하면 되는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찾아가려고 함과 동시에 지금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로서 하고 있는 것을 좋아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해도 결국 하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예전에는 직장인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던 것 같은데, 매일 같이 같은 일터에 출근하고 일하는 것이 되게 위대하다고 요즘에는 느끼는 것 같아요. 추가로, 스토너처럼 현재 불안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일이든, 다른 것이든 몰두할 수 있는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우용]
제가 사실 이 질문을 드렸던 계기 중 하나는 예전에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고 했던 인터뷰 때문이었어요. “사랑하는 일을 하고, 하는 일을 사랑하라(Do what you love, and love what you do)” 이거였거든요. 그러면 과연 그 구절 중에 어느 부분이 좀 더 중요한 걸까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 최근에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가 하는 강연 영상을 봤는데 거기서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요즘에는 다들 좋아하는 일을 '할(do)' 생각만 한다. 근데 좋아하는 일을 획득하는 것(acquire)이 중요한 것이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자체는 환상이다.” 좋아하는 것을 단순히 하는 게 아니라 그것 자체를 가지려면, 즉 관련된 자산을 획득하려면 좋아하지 않는 일들도 그 과정에서 해야 된다라는 얘기를 하고자 했던 것 같아요.
[우창]
저는 그 말에 너무 공감합니다.
[우용]
그래서 문득 요즘 사람들이 많이들 자아실현을 하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등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게 정말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인가? 하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기요사키의 말처럼 좋아하는 일에 대한 감정을 계속 가지고 가는 건 맞지만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건 알아서 하게 되니까 좋아하지 않는 일들도, 해야 할 때에는 좋아할 줄 아는 게 좀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유학 준비를 하다 보니까 느끼는 건데, 저는 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을 여덟 번 하면 싫어하는 일을 두 번 정도만 하면 되는 그런 일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은데, 확실히 그 싫어하는 일을 두 번 할 때가 진짜 괴롭긴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설거지를 안 할 수가 없듯이 결국에는 꾸역꾸역 해야 할 일이 항상 있잖아요. 지난 학기에 그런 걸 몰아서 하다가 정말 고생했거든요. 싫어하는 일을 몰아서 할 생각 말고 조금씩 나눠서 미리미리 해놓는 게 좀 중요하다는 걸 배우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우창]
맞는 것 같아요. 그게 또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우용]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우리가 첫 책을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그 책과 이 책이 좀 비교가 많이 됐는데, 저에게 세이노라는 작가는 강철과 같은 단단한 인물이었고 여기 나오는 스토너라는 인물은 되게 부드럽고 차분한 이미지였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세이노]를 읽던 시기에는 그러한 단단한 마음이 당시에 제게 필요했어서 너무 좋았고, 지금은 조금 시간이 흐르다 보니 스토너가 가진 차분함이나 침착함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스토너도 좋았거든요. 본인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라보면 어느 쪽에 더 마음이 끌리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창]
세이노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편한 건 확실히 '스토너처럼 살아도 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기는 해요, 저도. 근데 우용님이 왜 그런 감정을 느낄까, 왜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할까를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래도 소설은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공감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세이노] 같은 책들은 완전하게 머리로 읽어야 하는 책이니까 그런 생각을 더 하는 것 같고요. 두 삶의 마지막 순간에 지점을 딱 찍고 보았을 때, 스토너 같은 삶을 살래, 세이노 같은 삶을 살래라고 물어본다면, 우리의 이상향은 사실 세이노에 가깝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저도 세이노에 끌리는 게 사실이죠. 세이노의 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말이죠.
저는 이 질문이 되게 좋았던 이유가, 우리가 [책읽삽]을 하는 이유가 이 질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었어요. 우리가 [초조한 마음]에서 호프밀러나 이 [스토너]의 스토너 같은 삶들을 계속 들여다보고,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냥 위로라는 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차피 우리는 세이노의 ‘가르침’이 없어도 우리만의 방식대로 열심히 삶을 살아갈 거 기도 하고요. 저는 이 두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냐면, [세이노] 같은 책은 나에게 주는 채찍이라고 생각하고, [스토너] 같은 책은 나와 타인에게 주는 당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우용님께서 주차별 모임에서 항상 “이게 좀 쉬는 것 같지”라는 말을 많이 하셨는데, 이 모임과 소설이 주는 가치가 거기에 있지 않나 싶네요.
그다음에 이 질문에서 또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우리가 항상 레전드로 뽑는 고등학교 인문학 특강 강의가 있잖아요. - 우창과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매달 외부 강사를 모셔 진행하는 인문학 특강이 있었다 - 구글에 재직 중이던 김OO 씨 특강의 질의응답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하나가 있어요. 어떤 학생이 강연 내용을 가지고 그런 질문을 했어요. 김OO씨가 ‘항상 자신의 시선을 가지고 사는 것이 되게 중요하다, 설령 그것이 틀렸을지라도’라는 말씀을 하셨었어요. 어떤 문제를 나만의 시선으로 보고, 내 생각을 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었는데, 그 학생이 ‘근데 그러면 내 시선이 틀렸으면 어떡하냐, 내가 잘못 바라보고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면 어떡하냐’는 질문을 한 거예요. 그때의 답변은, “그래서 주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중에는 내 생각이 틀렸을지라도 일단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생각을 쭉 전개해 나가는 삶을 살고, 주말에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반추하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라고 했거든요.
항상 물리적으로 주중과 주말이 매일 구분되지는 않더라도, 순간순간마다 주중과 주말은 반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세이노]는 주중 같은 책인 거고, [스토너]는 주말 같은 책이네요.
[우용]
인문학특강의 질의응답이 상당히 현문 현답이네요. 그런 질문을 하고 그런 답변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가끔은 이 책읽삽이 그런 연습을 하는 시간이라고도 생각해요ㅎㅎ 마지막으로, 사전에 제가 전달하지 않았던 질문인데요, 최근의 삶은 어떠신가요?
[우창]
힘들죠, 근데 힘들다고 할 만큼 내가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순간순간 되게 소소하게 재미있는 것들도 정말 많아요. 그리고 저는 제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 중에 하나가 앞으로의 제 모습에 대한 기대인 것 같아요.
사적인 대화 내용으로 중략
[우용]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요. 노를 열심히 젓는 것도 중요한데, 파도를 읽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역행하고 있을 때는, 파도를 거슬러 올라갈 때는 속도가 안 나는 게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럴 때는 좀 잘 안 돼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고요. 파도가 또 들어올 때가 있으니까 물 들어올 때는 또 확실하게 저어야 되는 거고 요새 좀 그걸 최근에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이제 한 달 반 동안 이 책 함께 읽느라 고생하셨고 오랜만에 같이 해서 좋았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우창]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