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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e Mar 27. 2021

아빠가 암환자가 됐다

식도암 4기, 기대 여명 1년 암환자의 기록

하루 아침에 아빠는 암환자가 됐다. 당신이 또는 당신의 가족이 암환자가 될 것이라고 누군가 예고해주지는 않는다.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뀐다. 우리 또한 그랬다.

 

 처음에 단순히 역류성 식도염인 줄 알았던 증상은 식도암이었다. 작년 10월부터 아빠는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졌다며 좋아하던 술을 끊고 각종 생활습관을 고쳐나갔다. 좀 괜찮아지나 싶더니 올해 1월 무렵 아빠에게는 다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하곤란'이었다. '삼킴곤란'이라는 뜻인데, 쌀이나 고기처럼 고형의 음식물을 넘기기가 어려워지는 거다. 식도암의 매우 전형적인 증상이다.  


  간이나 췌장과 마찬가지로 증상이 느껴질 정도면 식도암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것을 의미한다. 식도암 초기는 정기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것이지,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다면 초기일 가능성은 없다.


  두려웠던 건지 과신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연하곤란 증상에도 아빠는 한사코 내시경을 거부했다. 그러다 엄마가 해준 갈비찜을 먹다 목에 걸려 그 자리에서 게워낸 이후로 고집을 꺾었다. 동네 단골 내과에서 내시경을 한 결과는 '식도의 악성 신생물 의증'. 한마디로 식도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이었다.


 그 날이 아주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1월 30일 점심 즈음이었다. 나는 친한 대학동기의 결혼식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역삼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택시 안에서 이날 아빠가 내시경 검사를 한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리곤 검사가 끝났을 무렵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간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아빠 내시경 했어?"

"응."

"결과는 어떻대?"

"종양이 있어."

"종양이라고 무조건 암인가?"

"응. 거의."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언니의 카톡 메시지를 보자마자 일산으로 택시를 돌렸다.


 집에 온 나를 보고 아빠는 뭐하러 왔느냐며 애써 덤덤한 척 했다. 아빠는 언니에게 "내시경에 보인 종양이 암이 아닐 수도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언니는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식도란 기관에는 암이 아니면 저런 형태의 종양이 생기질 않고, 곧 내시경에 보인 그 종양은  암이라는 이야기였다. 침통했으나 모두가 애써 괜찮은척 했던 하루였다.


 현실감은 반박자 늦게 찾아오는지 하룻밤이 지나자 아빠도, 나도, 엄마도, 언니도 모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오전에 기사발제를 만들다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팀장에게 하루 연차를 내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연차를 냈다고 하니 엄마는 아빠가 많이 힘들어한다며 일산 집에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선 병원을 결정하는 게 급선무였다. 식도암은 위암이나 폐암처럼 케이스가 많지 않다. 우리나라 몇 안되는 대형병원 중 삼성서울, 서울아산에 식도암 명의들이 있다고 했다. 특히 삼성서울의 심영목, 조재일 교수가 식도암 수술로 유명하다는 게 각종 암 관련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알게 된 정보였다.


 삼성서울은 강남구 일원동에, 서울아산은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해 있다. 일산에 사는 우리에게는 다소 먼 거리였다. 통원하며 주 5회 해야하는 방사선 치료는 그렇다치더라도,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원래 치료하던 병원 응급실을 가야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국립암센터라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있었다.


 차로 15분 거리인데다, 암센터가 삼성서울병원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양성자 치료(새로운 방사선 치료법)를 한다는 장점도 있었다. 고심 끝에 암센터로 치료 병원을 정하고 외래를 잡았다.  가장 빠른 게 나흘 뒤인 2월 3일이었다. 첫 외래에서 소화기내과 교수는 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진단을 할수 있다는 것 외에는 말을 아꼈다. 그렇게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모든 대형병원이 그러하지만, 당장 내시경이며 CT며 검사해서 치료부터 받고 싶은 게 환자와 가족의 마음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첫 외래 후 12일이 지나고서야 최종 판정을 받았다. 3일 첫 외래, 4일 내시경 검사, 8일 CT 촬영. 15일 최종결과.


 15일 두번째 외래에서야 아빠가 식도암 3기며, 종양은 식도 중부부터 시작돼14cm가량 되는 크기고, 림프절에 전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네 병원에서 식도암 의심 소견을 받은 뒤 2주 만이었다. 아직도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한두케이스 내시경을 해본 게 아닐텐데, 14cm 종양을 보고도 왜 소화기내과 교수는 서두르지 않았는가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겠냐마는.


  어쩄든 소화기내과 외래를 본 뒤, 이제부터 항암치료를 담당해줄 종양내과 교수 진료를 잡아주겠다 했다. "오늘 볼 수 있는거냐"는 내 질문에 소화기내과교수는 내가 지나치게 조급하다는듯 피식 웃으며 "일단 좀 보시죠"라 했다. 이미 2주 동안 기다릴만큼 기다렸던 입장에서 뭘 더 지켜보자는 건지, 가슴이 꽉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대략 3시간 뒤에 종양내과 교수 외래가 잡혔다.

 

 종양내과 교수는 아빠의 CT와 내시경을 보더니 소화기내과 교수보다는 심각한 뉘앙스로 말했다. 종양의 크기가 상당히 크고, 이 정도면 3기 이상에 해당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고는 당장 오늘 응급실으로라도 입원을 하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속도를 내주니 감사한 마음이었다.  4기가 아닌 3기라면 해볼만하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입원을 하면 뭐든 괜찮아질 거란 생각이었다.


 입원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 앞엔 더 말도 안되는 상황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상태는 걷잡을수 없이 나빠져 식도암 3기는 4기가 되고, 아빠의 여명은 두 달이라는 이야길 듣게 되는 상황은 꼭 사흘 뒤 우리 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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