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기억하는 관찰 기록
스마트한 시대의 우리들은 수많은 이미지를 각자의 폰에 담는다. 쉽고 빠르게 SNS 업로드를 올리기도 하고. 바쁘게 여행할 때는 슥슥 찍어주는 스마트폰 스냅사진이 똑딱이 카메라를 대체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며 내 눈으로 봤던 감동의 여행 장면들은 스냅사진만으로 그때를 설명하기 어렵다. 과연 스냅사진만으로는 얼마나 오랫동안 여행지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여행을 할 때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해 여행지의 기억을 담기도 하지만 말이다.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준 또 다른 일거리 "이미지 채집"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지만 스마트 폰카메라로는 원하는 만큼의 이미지 채집이 가능해졌다. 사진으로 그 물건과 장소를 남길 수 있을지 몰라도 머릿속에는 기억하고 싶던 여행지의 명장면들이 오래도록 기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추억을 담는 사진만으로는 "아.. 그때 그랬던가?"라는 기억을 소환하는 정도일 뿐. 수업을 진행하며 여행 손그림 수업을 받으러 오시는 수강생분들께 신청을 사유를 물어보면, 대부분이 "내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요." , " 나의 컨탠츠를 만들고 싶어요."라는 나만의 그 무엇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딜 가도 다들 같은 여행 사진을 찍는데 나만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 라는 것. 이것은 어쩌면 스마트한 시대가 가져온 쉽고 빠름이 오히려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부정적 효과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편한 세상이지만 사실 사람들은 손이 가는 작업을 더 원하는지도 모른다.
삽화 작업을 하다가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쉽게 이미지를 찾아 작업하기 좋아진 세상이다. 하지만, 직접 보고 드로잉 하는 것만큼 좋은 자료 취득방법은 없다. 나무와 나뭇잎을 내가 아는 경험의 기억으로만 그리던 어느 날. 생각해 보았다. 나는 풀과 나무의 실제적 구조를 얼마나 알까? 하는 질문과 시작된 아침 드로잉.
벚꽃은 꽃받침이 있다. 나뭇잎은 뒤가 까칠하다. 나무는 물을 먹으면 색이 진해진다. 잎과 가지는 마디가 있다. 아침에도 개미는 돌아다닌다.
눈으로 사물을 오래 관찰하는 습관은 이제 까지 내가 일할 때 인터넷만 뒤지며 자료 사진을 찾던 습관을 조금은 줄이게 하였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 드로잉을 하는 것이 좋기는 한데, 좀 더 가볍게 드로잉 할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며 영국에서 배웠던 한 장의 종이로 만드는 가벼운 책이 떠올랐다.
동네의 작은 여행 서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시작된 여행 손그림 그리기 수업은 작은 여행 책방에서 처음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작업용 자료를 위해 그리던 나만의 드로잉 방법을 여행 손그림 수업으로 할 수 있게 커리큘럼을 만들자는 것이 그 책방 친구의 아이디어였다. 난 그 친구가 잔잔한 천재라고 믿고 싶다. 덕분에 많은 분들을 만났고, 창의 교육 행사 같은 일들에도 참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여행 손그림을 넌지시 보고 있으면, 나 역시 같은 여행 장소를 다녀온 기분이 들어서 슬며시 수업 전엔 여행 떠나기 전처럼 설렌다.
"그림은 처음인데 여행 손그림이 가능할까요?"
물론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필력이 있다. 이것이 손그림 그리기의 가장 큰 핵심. 이 생각을 믿고 수강생들의 독특한 손그림 라인을 끄집어내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수업 중 어떤 일러스트레이션의 스킬보다도 그 사람이 가장 잘하는 것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돕는 것. 그렇게 되면 그 힘으로 그림을 그릴 때 그 사람만의 드로잉 라인이 나오는 것이다. 그림을 처음 그리는 사람 사람일수록 더 자유스럽게 나오고, 생각의 표현도 다양하다.
수업 중 진행되는 여행 손그림은 나만의 여행 기록에 목적을 둔다. 하지만 재미나게도 사람들의 여행 손그림이 하나의 컨탠츠가 되고 이 컨탠츠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가 시작되는 좋은 매개체가 되는 건 나로선 즐거운 일이다. 이런 기록들을 차근차근 기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