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쩌다애넷맘 Sep 15. 2021

이럴 줄 알았어!

엄마 파업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 원래  3 아침 일찍 러닝을 해왔는데 이번 주는 매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낚여서 아예 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근데 얼어 죽을 일기예보는 맞는 꼴을  본다. 오전 6시에   확률 90%라고 했으면 비슷하게라도 와야지.  온다고 해놓고   오는 것은 둘째치고 실시간 기상정보에   온다고 해서 나갔더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 적도 있어서 정말  말을 잃었다. 일기예보가 이렇게  완전히 다르면 대체  일기예보를 보나? 그냥 내가 혼자 대충 하늘 올려다보면서 '…... 오늘은 구름이  어둡고 공기 중에 습기가 많으니   확률이 높겠군. 우산 챙기고 빨래 걷어야겠구나…...' 하는 거랑 뭐가 다른 거야?


 


차라리 일기 예보에서 비 올 확률 90%라고 했어도 그때 뛰러 나갔어야만 했다. 안 가고 침대에 웅크리고 있으니 정말 만사가 귀찮다. 날이 흐려서 그런 건지 허리도 아픈 것 같고 며칠 전 운동을 무리했는지 근육통도 남아있고 기운이 쭉 빠진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그래, 이번 주 코로나 백신 2차 접종도 해야 하니 컨디션 조절 좀 하는 게 좋겠어. 오늘은 애들 밥만 챙겨주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아이들한테도 "오늘은 엄마 그냥 놔둬."라고 엄마 파업을 선언한 후 침대에 누웠다. 넷플릭스나 실컷 볼 심산으로. 요즘 "지정 생존자"를 보고 있는데 시리즈마다 정말 쉴 새 없는 테러에 음모와 배신으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런데 넷플릭스 앱을 아직 켜지도 못했는데 잠시 후 막내가 눈앞에 나타났다.


"엄마, 나 코피 나."


코피를 닦아주고 휴지를 잘 말아 (애 넷 코를 틀어막아주다 보니 이런 기술만 발달함) 코에 사뿐히 안착시켜주고 10분 후 알아서 휴지를 빼라고 알려준 후 애를 내보냈다.


 


넷플릭스 앱을 켜고 반가운 주인공 얼굴이 화면에 따악 들어왔는데 식탁에 앉아 원격 수업하던 셋째가 "엄마! 엄마!" 나를 부른다.


"엄마, 와이파이가 안 되나 봐. 수업 중에 자꾸 튕겨져 나와."


어휴…... 이 망할 놈의 코로나…... 대체 학교는 언제 갈 수 있는 건지…... 과연 이렇게도 학습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원격 수업만 주구장창 해대는데 아주 답답하다 답답해. 온라인 수업이라며 EBS 방송으로 때우던 작년보다야 훨씬 나아졌지만 무슨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9시에 시작해서 12시면 모든 수업이 다 끝나니 아무리 급식시간과 중간놀이 시간이 제외되었더라도 수업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나도 온라인 강의를 들어봐서 알지만 이거 정말 제대로 집중하기 너무 힘들다. 성인도 이러니 한시도 가만히 못 있는 초등학생들은 오죽하랴......


 


애 랩탑 좀 대충 들여다봐주고 (내가 본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냥 자꾸 말하니깐 시늉이라도 하는 거지) 뒤돌아 오려는데 어디선가 쾌쾌한 냄새가 코로 흘러 들어온다. 아무래도 빨래통에 젖은 빨래가 있는지 쉰내가 나는 것 같다. 아…... 오늘은 빨래하기 싫은데…... 두 눈 질끈 감고 싶지만…... 쌓여있는 빨래는 모른 척해도 코로 흘러 들어오는 쉰내는 도저히 못 참겠다. 빨래를 세탁기에 쑤셔 넣고 나오는데 고양이 화장실 모래에 묘분이 들쑥날쑥 올라와있다. 아니 고양이들은 볼일 보고 모래로 잘 덮어놓는다고 그러지 않았어? 적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배설물을 덮는 것은 본능 같은 것이라고 했건만 우리 집 애들은 날이 갈수록 왜 이리 뒤처리를 허술하게 하는지…...  암튼 오늘 하루는 스킵하고 싶었던 고양이 화장실 청소였지만 결국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아…... 오늘 점심 애들 밥 뭐 주지? 쉽게 쉽게 가자. 햄버거든 피자든 간단하게 배달 음식 시켜서 먹이자. 그런데 갑자기 유통기한이 임박한 채 냉장고에 틀어박혀 있던 훈제 오리가 뇌리를 스친다. 그리고 하는 수 없이 쌀을 씻고 밥을 안친다. 그럼 또 애들 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고양이 모래며 털이 휘날리니 베큠도 좀 돌리고 빨래 다 되면 빨래 개고 아이들 학원 라이드 해주고 돌아오면 또 저녁 먹여야 하네?


 


이럴  알았어. 정말 아무것도  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네. 옛날에 엄마들이 "엄마는  집에서 노는  아냐?"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면 그게  소리인가 그랬는데…... 그런 거다. 눕자마자 일어나야 하고 앉을 만하면 서야 하고 하루 종일 움직였지만 뭐했는지 아무 티도  나고 "엄마, 엄마" 하루에도 골백번 죄다 나만 찾지만 나는 정작 찾을 사람이 없는 엄마의 운명. 파업은 무슨…... 허구한  틀리는 일기예보처럼 오늘 나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모든 것들을 결국 하고야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