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버리면 남겨진 이들은 어디에서든 그 사람의 자취를 찾으려고 한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하늘, 별, 구름, 해와 달, 나비와 들꽃 등등 모든 것이 그 사람이 되어 나를 찾아온다. 나도 3년 전 큰아들을 하늘로 보내고 한동안 끊임없이 이런 경험을 했는데 이럴 때마다 뭔가 아름답고 낭만적이기보다는 어쩐지 처연한 슬픔이 느껴졌다. 나는 환생을 믿지 않으니 더더욱 그랬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생일"은 세월호 사고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주인공 순남은 아들 수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홀로 슬픔 속에 갇혀 사는 인물로 나온다. 그녀는 죽은 아들 수호의 방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수호의 옷을 사 와서 마치 수호가 곁에 있는 것처럼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특히 현관 센서등이 저절로 켜질 때마다 아들이 집에 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 집 현관 센서등도 오작동 될 때가 많은데 딱히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딸이 언젠가 하늘에 있는 오빠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면 원하는 일이 잘 이루어진다며 좋아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 된 지금도 가끔 오빠에게 도움을 청하곤 하는지 궁금하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그렇게라도 오빠와 대화를 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 같다.
셋째는 형이 떠난 이후 종종 형이 우리 동네 우체부 아저씨로 환생한 것 같다는 소리를 했다. 왜 하필 우체부 아저씨냐고 물었더니 유독 그 아저씨를 자주 마주치기도 하고 아저씨가 우리집 주소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형이 우리와 가깝게 머물고 싶어서 환생한 것 같다고 꽤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셋째는 어쩌면 형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막내는 밤하늘에 가장 반짝이는 별을 보면 늘 손가락을 가리키며 "큰 형아다!"라고 외쳤다. 3학년이 되고부터는 부쩍 별을 보며 형이라고 하는 일이 줄긴 했지만 별을 바라보는 막내의 두 눈이 별보다 더 반짝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코끝이 찡해지곤 했다. 여섯 살 때 큰 형이 눈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목격해야 했던 막내가 가장 빛나는 별을 볼 때마다 오래오래 큰 형을 기억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남편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하늘이나 풍경을 보면 아들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선물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다. 파랗고 청명한 하늘을 보면 응원과 격려를 느끼고 노을이 저무는 주홍빛, 보랏빛, 분홍빛 하늘을 보면 위로와 평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14층 우리 집 베란다 창틀에서 피어난 개망초 꽃을 발견했을 때나 우리 집 앞에 날아든 작고 예쁜 새를 봤을 때 내 아들이 나에게 보내주는 메시지쯤으로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렇게라도 믿고 싶은 거다. 이 세상이 아닐 뿐 그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라고.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래빗 홀"은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의 상실과 치유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남편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아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자녀 잃은 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등 추억과 그리움을 안고 미래를 바라보려 한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그와 반대로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이사를 가고 싶어 하고 아들의 흔적을 지워내려고 한다.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 그마저도 안고 가려는 마음 모두 너무나 공감이 되어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결국 아들의 죽음마저 내가 인고해야 할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는 모습에서 우리 가족이 투영되어 보이는 듯했다.
아들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들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더 확고하게 그의 존재를 드러냈으며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