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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애넷맘 Oct 11. 2023

Que Sera, Sera

지난 수요일 아침이었다. 등교하는 아이들 아침을 챙기려고 부엌으로 나왔는데 고요한 집안에 "윙~"하는 기계음 같은 것이 들렸다. 공기 청정기, 제습기, 냉장고, 전기밥솥, 정수기, 세탁기 등 부엌 쪽에 있는 기기가 왜 그리 많은지 하나하나 귀를 갖다 댔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소리의 근원을 찾지 못했는데 소리에 꽂히니 어찌나 그 소리만 들리는 것 같던지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 같았다. 중학생 딸은 정수기가 분명하다고 했고 남편은 냉장고를 의심하면서 전원 코드를 뽑아봐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부엌 벽면에서 유난히 더 크게 들리던 소리에 정체는 바로 아파트 스피커였다. 관리 사무소 안내 방송이 나오는 그 스피커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8시 조금 넘어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했더니 9시 지나 사람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통화를 마치고 이십 분쯤 지났을 때 스피커에서 몇 번 잉~ 삐~ 지직~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윙~ 하는 소리도 멈췄다. 그리고 또 이십여분이 지나고 초인종이 울렸다.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사람을 보낸 모양이었다.

"전화 주셨다고 해서...."

"네. 그런데 제가 전화드리고 얼마 안 가서 소리가 멈췄어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원인이 뭔가요?"

"아... 그 기기에 약간의 노이즈가 있어서 그게 맞지 않으면 그럴 수도..."

"그럼 저희 집만 그랬던 건가요?"

"아뇨. 다른 집도 다 그랬을 겁니다."

"아, 근데 저만 연락을....?" 나는 말을 잇지 못했고 관리사무소 직원은 묘한 미소를 지으셨다. 충격적이었다. 이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조용한 아침 시간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할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500세대가 넘는 아파트에서 이걸 문제 삼은 사람이 나뿐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꽤나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을 만나면 걱정 근심 좀 내려두라며 훈수를 두기도 했고 그들의 예민함을 웃음 포인트로 놀리기까지 했었다. 아무거나 잘 먹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남이 하는 소리에 전전긍긍하는 편도 아니니 이만하면 무난하고 털털한 거라 여겼던 것 같다. 누긋하고 털털한 성격은 내가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나의 장점이라 믿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가끔씩 어떤 사람들이 나를 은근히 까탈스러운 사람 취급하고 더 심한 경우에는 내 눈치를 보거나 조심하기까지 하는 걸 보며 내가 아주 쉽고 편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특히 MBTI가 대유행을 하면서 J (판단형)와 P (인식형)의 명확한 차이를 깨달으며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나는 J에 더 가까운 인간으로 계획에 없던 일이 갑자기 생겨나면 그게 설사 좋은 일이고 재미있는 일이여도 나에게는 돌발상황으로 접수된다. 사소한 일이라도 플랜 B까지 생각해두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편이고 즉흥적으로 벌리는 일들은 다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변수가 생겼을 때 의연해 보였던 것도 내가 미리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내가 20년 넘게 좋아했던 문구가 있는데 바로 "Que será, será"이다. 스페인어인 줄 알았는데 콩글리시처럼 영어식 스페인어 단어라고 한다. 왜곡된 의미로 포기나 체념하는 심정으로 ‘될 대로 되어라' 부정적인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보다는 'Whatever will be, will be'와 같이 '뭐가 되든지 될 것이다'와 같은 긍정의 의미로 응원구호나 응원가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실제 내 삶이나 성향과는 거리감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케세라세라는 삶의 불확실성에 희망을 잃지 말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통제할 수 없는 어려움과 도전들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맞서라는 응원이자 주문이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플랜B 아니라 플랜Z까지 만들어도 안되는 것들은 안된다. 반면 다 내려놓고 마음에 안드는 결과지만 받아들여야지 하고 있을때 전화위복으로 더 좋은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묵직하게 나를 지배하는 불안과 걱정 근심들을 조금 내려놓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케세라세라를 외쳐본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불안해하고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어떻게든 되겠지. 괜찮을 거야. 결국 잘 될 테니 걱정하지 마."하면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의연하고 평온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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