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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애넷맘 Nov 19. 2020

왜 치약을 그렇게 짜는 거야?





나는 치약을 제멋대로 짜서 사용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2 이후부터 나는  개인 화장실을 사용했고  누구도 내게 치약은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짜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 내키는 대로 눌러서 치약을 짰고 그게 불편한 적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치약은 잘만 나왔고 양치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으니 평생 충치도 거의 없이 건강한 치아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고 달콤한 신혼 생활이 한참일  남편이 내게 물었다.  치약을 중간부터 눌러서 짜고 치약 뚜껑은  번번이  닫는 거냐고.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런  문제인가? 사랑해서 하늘에 별이라도 따줄  같던 사람인데 이게 뭐라고……? 이런  묻기도 하는구나를 깨닫는 자체가 충격  자체였다. 내가 아무 의미 없이 눌러 짜던 치약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릴  있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후부터 나는 기억이 나는  남편의 바람대로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치약 뚜껑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매일 아침상을 차리라는 무리한 부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여전히 ‘그깟 치약 아무데서부터 짜든 무슨 상관인가 싶다. 끝에서부터 짜든, 중간에서부터 짜든 뭐가 그리 대수란 말인가? 알아서 알뜰하게 사용하면 되는 거지라고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남편이 텍사스에서 일하느라 떨어져 살았던 1년간 나는 다시 치약을 제멋대로 짜면서   없는 희열을 느끼기도 했었다. 도대체 치약이 뭐라고......

 

그런데 치약 따위는 정말 거의 시작에 불과했다. 치약을 짜는 방법, 화장실 휴지를 거는 방법, 빨래를 널고 개는 방법, 청소하는 스타일, 설거지 방법, 이불 덮는 방법, 음악 취향 등등 너무 많은 것이 달랐다. 그리고 평소에는 괜찮지만 내가 힘들고 짜증이  때는 서로 다른 점들이 꽤나 거슬리고 피곤했다.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정답이라고 자신할 수도 없으면서 같이 사는 사람이 나와 다르면 생각보다 꽤나 불편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대부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문화나 생활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피곤한  피곤한 거다. 라면은 수프부터 넣느냐 면부터 넣느냐, 탕수육 소스는 부어서 먹느냐 찍어서 먹느냐로 싸우다가 다시는 같이 밥을 먹지 않게 되었다는 친구들도 있고 남편의 물컵이 여기저기 쌓여가는 것을 보며 도저히 참을  없어 이혼을 결심했다는 사람도 있으니 이런 소소한 걸로 풍비박산이 나려면  수도 있겠구나 싶다.

 

꽤나  맞고 비슷하게 보여도 개인을 깊숙이 알게 되고 같이 오래 생활을 하다 보면 나랑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고 피곤한 순간들을 인내하고 맞추며 사는 것이야말로 정말 사랑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솔직히 사랑하지 않는 타인을 내가 참아주고 양보하며 맞춰  필요는 전혀 없다. 아니 아마 다시는 그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평생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내가 무표정으로 먼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다. 연애 때부터 그러더니 20년이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가끔은 나도  모르겠는  감정 상태를 설명해주는  피곤하고 귀찮게 느껴지지만  나를 세심히 바라보며 관심 가져주고 걱정해주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의 답례로 나는 오늘도 치약을 밑에서부터 꾹꾹 눌러 짜준다. 이것이 20 차의 찐사랑이고 나는  사랑이 너무 자랑스럽다.

 

근데 자기야,  맨날 양말은 뒤집어서 아무데나 던져놓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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